예술과 인생/반 고흐 그림이야기(선집)

빈센트 반 고흐 49화(고독한 존재여, 우리 모두는 고흐다!)

박찬운 교수 2015. 9. 27. 18:10

고흐 그림이야기 제49화(최종)

<고독한 존재여, 우리 모두는 고흐다!>
ㅡ나의 이야기를 끝내며ㅡ


오늘 드디어 마지막 회다. 지금 시각 새벽 4시. 나는 이 글을 온 정성을 다해 쓴다. 가족들 모두 곤히 잠을 자고 있는 이 신새벽에, 소리 없이 일어나, 고흐의 그림과 씨름을 한 지 어느덧 세 달이다. 이렇게까지 글을 쓰려고 계획한 건 아니었는데, 여기까지 왔다.


지난 8월 페북에서 우연히 <Van Gogh: the Life>ㅡ이것은 제48화에서 쓴 네이퍼와 그레고리가 쓴 고흐에 관한 새 전기 <Van Gogh>의 페이지였다ㅡ를 발견했다. 무심결에 <좋아요>를 눌렀더니 일주일이면 두세 번 고흐 그림을 볼 수 있었다. 그 그림 중에는 내가 이제껏 보지 못했던 작품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볼 때마다 탄성을 질렀다. 고흐가 이런 그림도 그렸단 말인가? 그림에 감동하였고, 한편으론, 평소 고흐 그림에 대해 좀 안다고 했던 내 실력의 초라함도 함께 느끼는 순간이었다.


처음 몇 번은 내가 느낀 감동을 간단히 적어 그림과 함께 공유했다. 그런 것을 거듭하면서 나는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결심했다. 2014년 가을, 새롭게 고흐를 연구하고, 그것을 성실하게 글로 옮겨, 페친들과 공유하자! 이렇게 해서 나의 고흐 그림이야기는 새로운 궤도로 진입했다. 초반에는 한 점의 그림만을 설명하는 방식이었지만 곧 주제별로 다수의 그림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고흐가 남긴 그 많은 그림 중 극히 일부만 다루다가 제 풀에 주저앉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나는 가급적 많은 그림을 독자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었다.


회당 200자 원고지 5-6매 정도의 간단한 설명이 금 새 10매 이상으로 바뀌었고, 고흐 관련 자료가 책상에 쌓여짐에 따라 20매로, 20화 이후에는 30매에 육박하는 수준으로 바뀌었다. 주제에 맞는 고흐 그림을 찾아냈고, 그림 이해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 경우에는, 그의 그림이 아닌 다른 자료도 찾아 내 그것을 함께 포스팅했다. 나는 기존의 고흐 관련 책을 참고하고, 때론 내 글에 인용도 했지만, 기본적으로 내 시각에 따라 그림 설명을 하려 노력했다. 어쩜 사설(辭說)은 길고, 정작 그림 설명은 부족했을 지도 모른다.


이렇게 해서 나는 오늘까지 대략 원고지 800매에 가까운 고흐 그림이야기를 쏟아냈다. 만일 그림과 함께 편집을 한다면 너끈히 책 한 권 분량이다. 전혀 예상 못했던 일이 일어난 것이다. 마치 고흐가 마지막 70일을 보낸 오베르의 여정을 내가 반복했다는 기분이 들 정도다. 그 짧은 기간을 살면서 그는 매일 한 점 이상의 그림을 그렸다. 그것도 작품 활동 중 가장 큰 그림을 거기에서 그렸다. 신들린 듯한 붓 칠이었다. 그 기가 나에게도 전달된 것은 아닐까? 지난 3달간 날짜로 계산하면 평균 이틀에 한 번 포스팅했지만 나는 매일 새벽 4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글을 써 왔으니 말이다.


오베르 공동묘지에는 고흐와 동생 테오가 나란히 묻혀있다. 고흐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반드시 여기를 들려 그가 좋아한 꽃 한 다발을 놓고 간다. 나 또한 이곳을 들려 잠시 묵념했다.


이제 마지막 회를 맞이하면서 내 이야기를 조금 정리해 보고 싶다. 우리에게 빈센트 반 고흐와 그의 그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그의 그림은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가?


어떤 사람이 글을 쓴다고 할 때, 아무리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글을 쓴다고 해도, 글 전체가 남의 이야기일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것은 어쩜 나의 성장배경과 현재의 삶의 반영일지도 모른다. 고흐의 그림이야기를 하면서, 한 편으론 내 이야기를 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고흐가 고독한 사람이었다면, 나 또한 고독한 또 한 사람의 고흐ㅡ고흐 아닌 고호? 호랑이 띠인 나의 다른 이름은 고호(孤虎)다ㅡ다. 그렇기에 그의 그림을 보면 남의 그림이 아닌 내 그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이것은 이 글을 읽어 온 독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고흐다!


삶의 고독, 이것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문제로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는 하나의 숙명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현대의 고독은 과거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현대는 이 고독이 구조적으로 심화되는 게 특징이다. 산업혁명이 일어나 공장노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자 노동의 소외 현상이 일어났다. 내가 물건을 생산하지만 그것은 나와 관계없다.


노동의 소외가 한 세기 이상 계속되더니 이제는 정신의 소외 현상까지 일어나고 있다. 세상은 인터넷으로 연결되어 모든 의사는 네트워크 속에서 소통된다. 사람과 사람이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고, 살을 맞대며 상대의 체온을 느끼는 일은 희귀한 현상이 되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전기가 끊어지는 순간 모든 것을 잃는다는 두려움 속에서 산다. 이것은 우리의 정신에 심각한 소외감을 안겨준다.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은 이제 일과 정신에서 소외되면서, 여기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일상의 고독감을 느끼며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고흐는 그런 우리에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에게서 동병상련을 느낀다. 37년을 살면서 그가 세상으로 부터 당한 멸시와 능멸, 그로부터 나온 좌절과 분노, 절대적인 고독감은 우리가 느끼고 살아갈 운명의 축소판이다. 우리도 얼마나 세상과의 관계에서 멸시와 능멸을 당하는가. 우리는 그런 세상에 대해 얼마나 좌절하고 분노하는가. 가족과 친구가 옆에 있다 해도 그것을 바꾸지 못한다. 우리는 매일, 매순간 고독한 존재이다.


고흐가 마지막 70일을 살았던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 있는 반 고흐 공원 내의 고흐 동상. 고흐는 저런 복장으로 이젤을 지고 오베르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그림을 그렸다. 2년 전 11월 내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고흐의 그림은 고독한 그의 내면세계, 아니 크게 다를 것도 없는 우리의 내면세계를 시각화한 것이다. 그런 이유로 우린 그림에 대해서 잘 몰라도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직관적으로 감동한다. 우울함, 적막함, 분노, 슬픔... 이런 감정들이 그의 그림에 배어 있는 것을 우리는 바로 안다. 우리는 그의 그림을 통해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울어준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고흐의 그림을 좋아하는 이유일 것이다.


예술은 직관적으로 느끼는 것이 중요하지만, 그래도 알면 많이 보이고, 보이는 만큼 더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고흐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의 그림은 아무 것도 모르고 보아도 감동적이지만 그 배경을 이해하면 더욱 감동적이다. 내가 지난 세달 간 그의 그림에 의미를 붙인 작업을 해 온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고흐 그림에서 더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까. 고흐 그림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의 삶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의 37년의 삶이 어땠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그의 그림을 이해하는 데 핵심이다. 그의 삶은 번민과 투쟁의 연속이었다. 가족과 불화했고, 주변과 다투었으며, 몸과 마음은 병들었고, 가난에 시달렸다. 이런 삶은 고스란히 그의 그림에 나타났다. 고흐의 삶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자료는 그의 편지이다. 동생 테오와의 사이에서, 때론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오고간 900여 통의 편지에는 그의 삶의 여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이들 편지를 읽다보면 우리는 그의 삶을 영화처럼 볼 수 있다.


고흐 그림을 이해하는데 두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가 세상을 어떤 눈으로 보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이것은 철학의 문제인데, 예컨대 그가 그린 노동화를 생각해 보자. 그 노동화는 그의 철학의 반영이다. 노동과 사회에 대한 그의 철학을 이해할 때 그들 그림의 의미가 명확해진다. 여기에서 한 가지 분명히 알 것은 그가 수많은 책을 읽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의 학력은 별 볼일 없지만 그는 독학으로 누구보다 많은 책을 읽어 인간의 삶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넓혔다는 사실이다.


그의 편지에는 150여 명의 작가와 200여 권의 책이 천여 번에 걸쳐 등장한다. 그가 읽은 책을 보면 그가 어디에 관심을 두었는지를 알 수 있다. 사실주의 작가 에밀 졸라를 특별히 좋아한 것은 그의 철학이 사실에 기초를 두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보이지 않는 것에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비록 신에게서 멀어져갔다는 비난을 받는 한이 있어도 그에겐 그것이 중요했다.


세 번째로 중요한 것은 그가 어디에서 그림을 그렸는지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의 화풍은 그가 장소를 옮길 때마다 변했다. 어두운 색에서 밝은 색으로 변했으며, 전통적인 붓 칠에서 그만의 역동적인 붓 칠로 바뀌었다. 내가 여러 차례 설명했지만 화가생활 전반기를 끝내고 파리 시절을 보내면서, 그의 화풍은 바뀌기 시작했다. 그것은 그 후 아를로, 생레미로 옮기면서 더욱 바뀌었고, 마지막 여정인 오베르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그의 화풍이 왜 바뀌었을까? 그것은 날씨 때문이었고, 태양 때문이었으며, 주변의 환경 때문이었다. 그가 일본을 그렇게 좋아한 이유도 그의 머릿속엔 일본은 태양의 나라, 빛의 나라라는 생각이 꽉 차있었기 때문이었다. 북구에서 일 년 이상을 살아 본 나로서는 그 의미를 분명히 이해할 수 있다. 하루 17시간 이상이 밤인 것을 생각해 보라. 몇 날 며칠 해를 보지 못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라. 고흐는 그런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런 것들을 이해하면, 이제 그의 그림을 보는 순간, 몇 가지를 동시에 발견하게 될 것이다. 색은 밝은가, 어두운가? 붓 칠은 세밀한가, 역동적인가? 묘사는 사실적인가, 추상적인가? 그런 다음 그 작품을 그린 시기에 쓴 편지를 찾아본다. 어떤 경우는 그 작품에 대해서 그가 친절하게 설명해 놓기도 했다. 그렇지 않다 해도 그가 어떤 상태에서 그런 그림을 그렸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를 찾을 수도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고흐의 고뇌가 무엇이었는지를 상상을 해보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지난 몇 달간 이 시리즈를 엮으면서 해온 고흐 그림의 독법이었다.


나는 미술사를 공부한 전문가가 아니다. 그저 교양인으로서 고흐를 알았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이런 글을 썼다는 것? 조금은 만용이었다. 내 글 중 적지 않은 부분에서 내 실력이 드러날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나는 이 글을 쓰고 싶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면서 나를 발견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을 이 공간에서 만난 친구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그것이 내 고독을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내 맘이 전달되었길 바란다.


적지 않은 분량의 글을 계속 읽어준 독자들에게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여러분들이 응원해 주었기에 용기를 갖고 이제껏 쓸 수 있었다. <좋아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주신 분들, 나는 그들의 이름도, 얼굴도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내 맘 속에 기록된 그 격려의 마음은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이제 내일부터 새벽 4시가 아닌, 5시에 일어날 것이다. 그동안 잠이 부족했다. 끝.(2014. 11. 19)





위 이야기는 필자의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사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