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반 고흐 그림이야기(선집)

반 고흐그림이야기 43화(고뇌하는 사람들이여, 당신의 자화상을 발견하라)

박찬운 교수 2015. 9. 28. 05:56

빈센트 반 고흐 그림이야기 제43화

<고뇌하는 사람들이여, 당신의 자화상을 발견하라>


내가 고흐의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가장 큰 계기는 그의 인물화를 통해서다. 그가 그린 인물화는 미술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대번에 무엇인가 다른 그림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만큼 특이했고 울림이 강했다. 인물화 중에서도 그의 자화상은 나의 눈을 사로잡은 자석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가 남긴 자화상은 그 어떤 것도 인상적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내 고흐 그림이야기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지난 두 달 이상 고흐 그림이야기를 연재하면서 자화상도 두 번(제4화, 제11화)이나 다루었다. 하지만 그 정도만으로 끝내기에는 너무 아쉽다. 내가 고흐의 자화상에서 느낀 것 중 극히 일부만 건드린 것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마 전부터 이 시리즈가 끝나기 전에 한 번 더 다루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늘이 바로 그것을 해야 할 날이다.


1886년 작 파리 초기 시절 자화상


고흐는 인물화에 왜 그렇게 천착했을까. 그것은 인물화야말로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그림이었기 때문이다. 그에겐 일종의 야망이 있었다. 그 야망이란 다른 게 아니라 인간의 깊은 고뇌를 그림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그게 그 자신의 존재감, 한 예술가로서의 삶의 목적이었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1882년 7월 21일, 테오에게 보낸 편지, 신성림 역)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내가 어떻게 비칠까. 보잘 것 없는 사람, 괴벽스러운 사람, 비위에 맞지 않는 사람, 사회적 지위도 없고 앞으로도 어떤 사회적 지위를 갖지도 못할, 한마디로 최하 중의 최하급 사람... 그래 좋다, 설령 그 말이 옳다 해도 언젠가는 내 작품을 통해 그런 기이한 사람, 그런 보잘 것 없는 사람의 마음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겠다.”(위 편지)


사람들이 자신을 아무리 손가락질해도 그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는 것이 있었으니... 언젠가 보여주리라! 내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이 깊은 고뇌를, 말이 아니라 그림으로 보여주리라! 이것이 바로 그의 야망이었다.


고뇌하는 인간의 모습은 일상 속에서 가식 없이 사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그 모습을 그리는 것은 예술학교에서 천편일률적으로 배우는 방법으론 표현할 수 없다. 모델의 삶을 이해해야 하고, 그의 얼굴에 나타난 조그만 표정도 그 의미를 파악할 때 비로소 그 고뇌를 표현할 수 있다.


1887년 여름 작 자화상, 화풍이 바뀌었다.


고흐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렇게 많이 그린 것은 고뇌에 찬 인물화를 그릴만한 자연스런 모델을 쉽게 찾지 못한 데 있었다. 전문적인 모델은 돈도 들지만 그가 그리려는 인간의 고뇌를 그리기에는 적합한 대상이 아니었다. 전문적인 모델이 아닌 사람들 중에서 그가 그리고 싶어 하는 얼굴을 찾았다 하더라도 장시간 동안 자신 앞에 앉혀 놓고 그림을 그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고흐는 언젠가부터 한 인간의 고뇌를 보여주기에 자신만한 모델이 없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자신을 최하급 인간이라 볼지라도, 자신이 얼마나 감동스런 그림을 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방법으로서, 그 자신을 그리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었다. 모델료도 들지도 않고... 오로지 거울만 가지고 있으면 그릴 수 있는 게 자화상이었다.


1888년 1월 작 자화상


고흐의 자화상은 지금 남아 있는 것만도 40점에 가깝다. 파리 시절 이후 그린 것인데 아를을 거쳐 마지막 작품은 생레미 요양소에서 그가 죽기 10개월 전에 그려졌다. 어떤 자화상도 예외 없이 그의 내면의 고뇌가 나타나 있다. 이들 그림은 그저 고흐의 생김새를 볼 목적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그와 일체가 되어 그의 고통이 나의 고통이요, 그의 번민이 나의 번민이라는 생각으로 이들 그림을 보아야 한다. 그래야만 이 그림이 우리에게 주는 강한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며칠 전부터 고흐 자화상 전체를 찬찬히 보면서 어떤 그림을 골라볼까 생각했다. 40여 점 전부를 보여줄 수는 없는 일이니 그 일부를 보여주면서도 그 전부를 본 것과 같은 효과를 노릴 수 있도록 선정하는 작업이었다. 그렇게 해서 오늘 고흐의 파리 시절, 아를 시절, 생레미 시절을 각각 대표하는 자화상 6점이 선정되었다.


고흐의 자화상을 보기 전에 한 가지 알아둘 것은 이 그림이 모두 거울을 보고 그린 그림이라는 사실이다. 때문에 자화상은 실제와는 반대의 측면이 그려지는 그림이다. 오른쪽 얼굴이 그려졌다면 그것은 실제로는 왼쪽 얼굴을 그린 그림이다. 이 말을 실감하기 위해서는 독자들은 당장이라도 거울을 꺼내 자신의 얼굴을 보기 바란다. 왼쪽 얼굴을 거울에 들이대고 그 모습을 그렸다면 당신의 자화상은 오른쪽 얼굴 그림으로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준비된 그림을 감상해 보자. 이제 여러분은 고흐 자화상의 관객이 아니라 그가 되었다고 생각하라. 나의 고뇌와 번민, 그것을 나는 어떻게 그릴 것인가!


1888년 9월 작 자화상. 아를에서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것으로 그에게 선물로 주었다.


첫 번째 자화상(1886년). 이 그림은 지금 남아 있는 자화상 중 초기 작품에 해당하는 1886년 전반기 작품이다. 고흐가 파리에 도착해서 얼마 뒤 그린 것 같다. 이 그림은 보는 순간 오늘 보는 다른 그림과 화풍이 확연히 다르다는 것을 바로 알 것이다. 맞다! 고흐 이전 초상화 작가들이 그리던 전통적인 기법이다. 그가 좋아 하던 렘브란트의 초상화 기법과 그리 다르지 않다. 얼굴에 반사되는 빛의 처리는 전통 인물화 기준으로 보아도 수준급이다.


검은 중절모를 쓴 채 오른쪽 귀를 내놓은 그림이니 실제는 왼쪽 얼굴을 그린 것인데... 역시 고흐 자화상은 눈이 포인트다. 눈이야말로 내면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기에 고흐는 이 부분을 그리는 데 온 정성을 다 기울였다. 좀 애잔한 표정이다.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하는 모습인데... 도대체 그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두 번째 자화상(1887년 여름). 첫 번째 자화상을 그리고 1년쯤 흐른 뒤의 그림이다. 밀짚모자를 쓴 모습인데, 이제 화풍이 달라진 것을 직감할 수 있다. 파리 시절 그가 추구한 색채변화가 이 자화상에 여실히 드러난다. 색의 주조는 노란색과 파란색이다. 색의 대비로 말미암아 이 그림은 멀리서 보더라도 바로 고흐의 자화상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왼쪽 귀를 보여주고 있으니 실제는 오른쪽 얼굴을 그린 것이다. 상상해 보라, 거울 앞에서 오른 쪽 귀를 거울 가까이 대면서 그것을 포착하려고 애쓰는 고흐의 모습을!


여기에서도 초점은 역시 눈이다. 마치 무언가 애절하게 내게 말을 걸고 싶은 모양인데... 그 말이 무엇일까. 이 자화상을 그냥 지나치지 말고 계속 보고 있으라, 5분 정도 고흐와 눈을 마주치면, 분명히 당신에게 말하는 소리가 들릴 것이다.


세 번째 자화상(1888년 1월). 이 자화상은 고흐가 파리에서 생활한 지 거의 2년이 되어가는 시점에서 그린 것이다. 일명 <예술가로서의 자화상>이다. 이 그림을 통해 고흐는 자신이 진정한 예술가가 되었음을 선언하는 것 같다. 이날 그는 어떤 자화상에서도 볼 수 없는 산뜻한 의상으로 차려 입었다. 실제 그런 색의 옷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점묘적 기법으로 그린 자켓은 제법 품위가 있고, 팔레트와 붓을 든 자세는 중후한 예술가의 기풍이 그대로 드러난다. 갈색 수염도 꽤나 신경 써서 다듬은 티가 난다.


얼굴은 어느 자화상보다 온화하다. 그것은 눈에서도 나타난다. 이 자화상은 마치 고흐가 우리에게 “나도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예술가로 보입니까?” 라고 묻는 것 같다. 우리는 무엇이라 대답해야 하나... 옳소이다! 당신이야 말로 진정한 예술가요! 이렇게 큰 소리로 외쳐주는 것이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네 번째 자화상(1888년 9월). 이 그림은 고흐가 아를에서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것으로 고갱이 도착하자 선물로 준 것이다. 이 그림은 고흐가 남긴 40여점 자화상 중 유일하게 머리를 박박 민 자화상이다. 마치 항암치료 중에 머리가 빠진 암환자를 그린 것 같기도 한 그림인데, 사실은 고흐가 자신을 일본의 승려처럼 보이도록 그린 것이다. 이 당시 그는 일본의 우키요에를 비롯 일본 것이라면 무엇이든 신비하게 생각하던 시절이었다.


이 그림도 역시 눈을 주목하자. 내 눈엔 약간 멍한 상태로 무언가를 바라보는 것 같다. 눈의 초점이 강렬하지 못하다. 두 번째 자화상과 비교하면 그 강렬함의 차이를 바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고흐는 왜 이 자화상을 고갱에게 주었을까? 무언가 부족한 상태의 그림인데... 고흐는 고갱에 비하면 단순한 사람이었다. 군더더기가 없는 사람이었다. 곧 다룰 예정이지만 그것은 <고흐와 고갱의 의자> 그림을 보면 안다. 그는 고갱에게 자신의 그런 성격을 자화상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1889년 1월 작 자화상. 전해 12월 귀를 자른 엽기적 사건을 내고 한 달 후 쯤 그린 것이다.


다섯 번째 자화상(1889년 1월). 이 그림은 1888년 12월 고흐가 자신의 귀를 자르는 엽기적 사건을 일으키고 한 달 뒤쯤 그린 것이다. 고갱은 이 사건이 일어나자 바로 짐을 싸 아를을 떠났다. 동네 사람들 수십 명은 탄원서를 만들어 빨리 병원에 그를 가두라고 아우성을 치던 때다. 자화상에는 오른쪽 귀에 붕대를 감고 있지만, 실제 자른 귀는 왼쪽 귀다.


고흐 뒤 벽면에는 일본 우키요에 그림이 붙어 있다. 고흐가 심각한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면서도 일본 그림을 이렇게까지 챙겼다고 하는 것은 그의 일본에 대한 환상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그는 일본을 따뜻한 태양의 나라, 파라다이스이라 생각했다.


여기서도 눈을 보자.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들리는가? 나는 들린다... 내가 이런 사람이오, 나는 이런 정도의 사람이오, 귀를 자르다니...내가 귀를 자르다니... 나를 욕하시오, 그래, 나는 이렇게 못난 놈이오...


1889년 9월 말 작 자화상. 이 작품이 자화상으로는 마지막 작품으로 추정된다. 생레미 요양소에서 그린 것이다.


마지막 자화상(1889년 9월 말). 이 그림이 공식적으로 고흐가 그린 마지막 자화상이다. 생레미 요양소에 그린 것이다. 이 그림은 수염을 깎아서 그런지 고흐가 어느 자화상보다 젊게 보인다. 다른 자화상을 그릴 때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 그런데 모습은 그 나이라고 보기엔 너무 늙었다. 이 자화상을 그릴 때 그의 나이 36세! 팔팔한 나이다. 이 그림이 고흐의 본 모습이다.


그림 전체가 푸른색 기조로 뒤덮여 있다. 고흐가 푸른색을 이렇게 쓰는 것은 그의 마음 상태가 격동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번에는 왼쪽 귀를 보여주고 있는데, 실제는 오른쪽을 그린 것이다. 고흐는 왼쪽 귀를 자른 이후 그 귀를 보여주지 않으려고 왼쪽 얼굴(실제 그린 것은 오른쪽 얼굴)의 자화상만을 그렸다. 고흐의 눈을 보자. 무엇인가 불안에 가득 찬 눈이다. 아, 가여운 빈센트여!


나는 어제부터 오늘 새벽까지 고흐의 자화상을 몇 시간이나 바라보면서 이 글을 썼다. 누구는 이런 글을 쓰니 나를 천하에 태평한 사람이라 여길지 모르지만 이 글은 마음 편해서 쓰는 글이 아니다. 나도 요즘 마음 아픈 일이 많다. 50년 이상내 나름대로의 삶을 살았다고 자부하지만 여전히 불면의 밤을 보낼 일은 많다. 주변을 돌아보면 가난에 고생하고, 병들어 신음하는 형제들이 있다. 고흐의 자화상을 자주 보는 것은... 어쩜 거기에서 나의 모습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그가 고뇌하는 삶을 그림으로 그렸듯이 나도 내 고뇌를 글로 옮기고 싶다. 고흐는 천재였기에 그 절절한 마음을 신묘한 붓 칠로 그려 후세인들의 심금을 울리고 있지만 비재한 나는 그러지도 못하니 마음만 아릴뿐이다.

내게 하나 원이 있다면... 고흐 같은 아니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정말 괜찮은 화가 한 사람을 만나 이런 부탁을 하는 것이다. 겉모습만이 아닌, 내 심연의 끓고 있는 정열까지, 온갖 반지성적 모순으로 가득 찬 내 속마음까지 드러난 초상화를 하나 그려달라고. 어떤 모습의 초상화가 나올까... 나는 옥동자를 그리는 마음으로 그것을 기다릴 것이다.


오늘 글은 길이에 구애되지 않고 썼다.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위 이야기는 필자의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사곰)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