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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새로운 명소 ‘문화비축기지’

박찬운 교수 2018. 10. 17. 21:27

서울의 새로운 명소 문화비축기지

-세계수준의 문화 도시의 가능성을 보다-

 


문화비축기지 T6



오늘 모처럼 문화도시 서울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말이다. 서울시 인권위원 자격으로 그곳에서 열린 인권관련 회의에 참석했다가 관계자의 안내를 받아 문화비축기지 전체를 돌아보았다.

 

아마 이곳에 대해 아직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곳은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 바로 건너편 야트막한 산자락(매봉산)에 위치한 문화공원이다. 지하철 6호선 월드컵 경기장 역에서 내려 경기장으로 나가 서문 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멀리 원통 모양의 건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거기가 이곳 '문화비축기지'. 경기장 옆 큰 길을 건너 그 건물 쪽으로 발길을 재촉하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T6, 문화비축기지를 만들면서 유일하게 새롭게 만든 건물이다. 외관은 석유비축시설인 탱크 그대로다. 외관벽의 철판은 T1과 T2를 해체하면서 못 쓰게 된 철판을 재활용한 것이다.



정문에서 본 문화비축기지

 


원래 이곳은 삭막한 석유비축기지였다. 격납고 비슷한 원통 모양의  탱크가 이곳 야산 자락에 비밀스럽게 자리 잡고 있었다. 1970년대 초 오일쇼크를 겪자 정부는 일단 유사시를 대비해 석유 비축시설을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 결과 70년 대 말 이곳엔 5개의 유류저장 탱크가 만들어진다. 탱크 한 개는 대체로 지하 15미터, 지름 30-40미터 정도의 규모


2002년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만들면서 이 시설은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다. 세계의 제전인 월드컵 경기가 열리는 경기장에서 불과 몇 백 미터 떨어진 곳에 인화성 높은 시설이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이 시설은 2000년 대 초 폐쇄되고 고양에 새로운 비축기지가 만들어진다(최근 대형 화재 사고가 난 고양 비축기지가 바로 거기다).


 

T1, 탱크를 해체하고 옹벽 안에 유리로 벽체와 천정을 만들어 전시장으로 쓰고 있다.


문을 닫은 상암동 비축기지는 그 후 10년 넘게 흉물스럽게 버려진채 애물단지로 전락한다. 서울시에서 그 시설을 어떻게 활용할지를 결정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시장이 바뀔 때마다 개발계획이 세워졌지만 어떤 시장도 임기 중에 뜻을 이루지 못했다. 누구는 이곳에 아파트를 짓자고 했고 누구는 이곳에 컨벤션 센터를 짓자고 했다. 그런 갑론을박 속에 마침내 박원순 시장에게 기회가 온다. 박시장은 2013년 시민공모를 통해 이곳을 문화 공원으로 재탄생하는 것을 결정한다. 석유를 비축하는 대신 우리 문화를 비축하자는 시민의 뜻이 모아진 것이다. 그래서 이름도 '문화비축기지'다.



 

T2, 탱크를 뜯어내고 잔해 일부를 살린 다음 야외 공연장과 지하 실내 공연장을 만들었다. 주위를 둘러싼 암반의 산은 자연스런 공명을 만든다. 아래 항공사진은 문화비축기지 공식블로그 사진



문화비축기지는 쓸모없이 버려진 유류저장소를 이용한 도시재생 프로젝트의 백미다.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멀리서 보면 산자락에 가려 5개의 탱크는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앞에 가도 그저 투박한 콘크리트 구조물 일부가 보일뿐이다. 그래서 이곳 컨셉이 '보일듯 말듯'인 모양이다.


그런데 그 속으로 들어가면 완전 신천지다. 쓸모없이 버려진 콘크리트 구조물이 어엿한 예술품으로 탈바꿈 되었다. 발상의 전환으로 이렇게 멋진 공간을 만들어 내다니, 입에서 탄성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돈도 많이 들지 않았다. 이렇게 큰 문화공간을 만드는 데 500억 원도 채 안들었다니! 누구 말대로, 한강다리 교각 2-3개 정도의 돈으로 대형문화공간을 만들어 낸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와 프로젝트 참여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T3.  5개의 탱크 중 하나는 원형 그대로를 보존했다. 사진 문화비축기지 공식블로그 사진



내가 보기엔 문화비축기지 프로젝트는 청계천 복원보다 몇 배 가치가 있다. 청계천은 단순히 고가도로를 뜯어내고 치장한 것에 불과하지만 이곳은 처음부터 끝까지 기발한 아이디어의 산물이다. 청계천은 불도저 시장 한 사람의 결단이었지만, 이곳은 수많은 시민들의 참여와 숙의의 결정판이다. 도시재생사업을 벌이면서 돈 많이 들어가는 대형공사를 택하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서울시민 누구나 와서 즐길 수 있는 공원으로 대한민국의 문화 수준을 보여줄 수 있는 기념비적 작품을 만든 것이다


T4, 탱크의 내부를 살려 천정에서 들어오는 빛으로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다. 맨 위 사진은 공식블로그 사진



T5 스토리텔링관, 이곳에선 문화비축기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관계자의 인터뷰 영상과 관련 자료를 통해 알 수 있다.



다만 문제는 도심에서 조금 멀다는 이유로 시민들에게 많이 알려지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평일 500-600명 정도의 관람객으론 턱없이 부족한 수다. 더 많은 시민들이 이 훌륭한 문화공간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을 가는 사람이라면 꼭 이 곳을 들러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각종 전시와 공연을 관람하기 바란다. 혹시 외국에서 손님이 와 서울 어디를 보여줄까 고민한다면 이곳으로 안내하시라. 주변의 난지도 공원과 함께 서울의 생태환경 문화를 보여 줄 수 있는 명소로 부족함이 없다. 분명 문화시민으로서의 긍지를 갖게 될 것이라 믿는다. 강추!!!



시설물 소개


T1 파빌리온 (면적:554)

다목적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탱크 해체 후 남은 콘크리트 옹벽 안에 유리로 벽체와 지붕을 새로 만들어 과거의 옹벽과 현재의 건축물매봉산의 암반지형이 조화롭게 펼쳐지는 모습이 환상적임


T2 공연장 (면적:2,580)

입구부터 시작되는 경사를 따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탱크의 상부는 야외무대로 하부는 공연장으로 이루어져 있음

 

T3 탱크원형 (면적:1,046직경 40m, 높이 15m)

석유비축기지를 조성한 역사적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공간으로 유류저장탱크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음

 

T4 복합문화공간 (면적:1,228)

기존 탱크 내부의 독특한 형태를 그대로 살린 열린 공간으로 천장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여러 개의 파이프 기둥과 어우러져 매우 이색적인 체험을 할 수 있는 문화공간

 

T5 이야기관 (면적: 890)

탱크의 안과 밖콘크리트 옹벽암반과 절개지까지 모두 확인하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마포 석유비축기지가 문화비축기지로 바뀌는 40여년의 역사를 기록하는 전시 공간

 

T6 커뮤니티센터 (면적:2,948)

1·2번 탱크에서 해체된 철판을 재활용해 다시 조립한 신축 건축물로 강의실회의실카페테리아 등 커뮤니티 활동을 지원하는 공간

 

T0 문화마당 (면적:35,212)

시민들의 휴식과 다양한 커뮤니티 활동이 가능한 대형 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