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2 14

죽는 복, 복 중의 복

죽는 복, 복 중의 복 이제 올 한 해가 저물었습니다. 며칠 지나면 나이 한 살을 또 먹습니다. 제겐 나이 먹는 게 즐거웠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20대에 법률가가 된 저로선 나이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한참 젊은 때에 나이 든 의뢰인을 만나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매일 같이 만나는 동료 변호사들 대부분이 적게는 10년, 많게는 30년 이상 연상이었으니, 처신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새해 나이를 먹을 때마다 연륜이 쌓이는 것 같아 흐뭇했습니다. . 이젠 나이 먹는 게 즐겁지 않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어려움은 주변의 죽음을 너무 자주 본다는 것입니다. 요즘 제일 많이 찾아다니는 곳이 장례식장입니다. 올해도 다 세어 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20회 이상 장례식장을 다녀왔습니다. 죽음..

나를 또 울린 소설 <무국적자>

나를 또 울린 소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감정선이 무너진 것은 아닌가. 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지만 나오는 것은 또 눈물이다. 구소은의 를 읽으면서 한없이 울었던 내가, 일주일도 안 돼 또 다시, 그의 글을 읽으며 서글피 울었다. . 독서의 여운이 길다. 새벽녘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어느 사람도 이 시대의 영웅은 아니다. 어쩌면 (소설에서 말하듯)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내 마음을 후빈다. 나도 그들처럼 이방인이요, 무국적자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줄거리이 ..

-법률가의 최소한의 양심, 사법농단에 분노해야-

-법률가의 최소한의 양심, 사법농단에 분노해야- 2018년 6월 사법농단 사태 규탄대회, 서초동변호사회관 앞 나는 능력도 딸리고 실수도 적잖게 한다. 그런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런 저런 훈계조의 말을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럼에도 2018년을 보내면서 한 부류의 사람들에겐 한마디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법률가들이다. .나 역시 오랫동안 법률가라는 직업을 갖고 그것을 통해 먹고 살아왔고 여기까지 왔다. 그 직업은 내겐 자랑이었고 긍지였다. 내가 누구보다 자존감과 자신감이 강하다면 그것은 그 직업과 관련이 있다. 그런 내가 사람들에게 낯을 들 수 없다, 법률가란 직업 때문이다. 그런 내가 자괴감이 든다, 법률가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법농단 사태는 그 사건 자체의 심각성 이상으로 이 사회에..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검은 모래>-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 2013년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나를 울린 오랜만에 많이 울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일이 일어다다니... 영화를 볼 때는 자주 눈물을 흘리지만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소리 내 울은 적은 기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 책을 주문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곧잘 읽는 일간지 서평란에서 발견한 책도 아니고 믿을 만한 독서가의 추천을 받은 책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무명작가(?)의 SNS 글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가의 첫 작품이란 어떤 수준일까, 나도 만일 훗날 소설을 쓴다면 그 정도 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을 ..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3)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3) -법률가를 넘어 시대의 지성을 추구하다- 음악감상가... 평생 음악을 듣다 미술 애호, 토기수집, 세계 여행과 더불어 선생이 몰입했던 취미는 클래식 음악감상이었다. 선생은 돌아가기 직전까지 기회가 될 때마다 가까운 지인을 자택으로 불러 음악감상을 함께 하셨다. 손님을 초대하면 상당한 시간을 들여 선곡을 하고 그것을 간단히 정리해 놓은 다음 음악을 틀기 전에 곡의 배경에 대해 설명을 하셨다. 나도 선생의 초대로 그 모임에 가 본 적이 있는데, 음악을 모르는 나로서도 격조 있는 선생의 설명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오래 전일 것이다. 내가 이런 질문을 드린 적이 있다. “변호사님, 어떻게 해서 음악감상을 취미로 하게 되었습니까. 전쟁을 경험한 세대들에게서 좀처럼 보..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2)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2)-법률가를 넘어 시대의 지성을 추구하다- 용산중앙박물관 내 겸산 최영도 전시관. 나는 2018년 6월 13일 선생의 발인 다음 날 박물관을 찾아갔다. 전시실 내엔 박물관에서 마련한 조화가 관람객을 맞고 있었다. 위 사진은 국립중앙박물관 겸산 최영도 관 모습, 아래는 전시품 중 하나인 통일신라시대의 . 선생은 1983년 이 토기를 구입하는 데 거의 작은 집 한 채 가격의 돈을 지불했다. 한 평생 토기 사랑, 아낌 없이 사회에 환원하다 용산중앙박물관을 가면 상설전시관 중 기증전시관에서 겸산 최영도 관을 만날 수 있다. 선생은 30여 년간 모은 토기 전량 1,719점을 중앙박물관에 기증했다. 법률가 중에 예술을 탐미하는 사람이 꽤 있다. 그 중엔 고가의 서화나 도자기를 수집하..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1)

겸산 최영도 변호사는 누구인가(1) -법률가를 넘어 시대의 지성을 추구하다- 이 글은 민변이 발간하는 111호(2018. 12) 인물탐구 코너에 실렸다. 긴 글이라 3편으로 나누어 이곳에 싣는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1938-2018). 판사로 봉직하다가 1973년 유신정권 시절 사법파동의 주역으로 옷을 벗었다. 그 뒤 변호사로 인권변호에 힘썼고 대한변협 인권위원장, 민변 대표, 참여연대 공동대표 등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국가인권위원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 , 클래식 음악 에세이 , 유럽미술관산책 가 있다. 이 글은 한 사람과 그가 걸어온 길에 대한 헌사다. 겸산 최영도 변호사(이하 ‘선생’이라 호칭함, 이것은 존경의 염을 담아 부르는 경칭임). 선생을 잘 모르는 분들에게 어떻게 소개하는 게 좋을까..

연구실 단상

연구실 단상 .내 연구실, 365일 특별한 일이 없으면 나는 이곳을 지킨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엉덩이가 무거워지는 것을 느낀다. 이게 과연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 옛날보다 판단도 느리고 행동도 굼뜨다.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귀찮다는 생각이 가득하다.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고 새롭게 일 벌이는 일은 더욱 귀찮다. .‘귀찮다 마귀‘가 내 몸과 영혼을 갉아먹는다. 이 마귀를 떨구어내야 하는 데 어떻게 하면 될까? 나이 먹음의 장점, 그 경륜의 강점은 살리면서도, 무슨 일이든지 내가 해야 할 일을 피하지 않고 최선을 다할 수는 없을까? .나는 일이 있건 없건, 특별히 연구거리가 있건 없건, 아침 일찍 연구실로 나와 하루 종일 떠나지 않는다. 그런 생활이 어느덧 12년이 넘었다. 이제 이 생활에 너무 익숙해졌..

레 미제라블과 무상교육

레 미제라블과 무상교육 에 많은 페친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서 힘을 얻어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빅토르 위고가 이 책을 쓰면서 유난히도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쓸 당시 프랑스 나아가 유럽은 어떤 상황이었는가. 산업혁명의 여파로 사회의 부는 양극화되었고, 왕정체제와 신분제는 여전히 힘을 떨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등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의 출현은 역사의 순리이었다. 하지만 위고는 공산주의에는 명확히 반대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겐 공산주의는 경쟁을 소멸시키고 부를 죽이는 이념이었다. “공산주의와 토지 균등법은 둘째 문제(분배)를 해결한다고 믿는다. 그것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것들의 분배는 생산을 죽..

우리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국민이다 ㅡ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부쳐ㅡ

우리는 먼저 인간이고, 그 다음이 국민이다 ㅡ세계인권선언기념일에 부쳐ㅡ 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1948) 오늘이 세계인권선언기념일이다. 1948년 12월 10일 신생 국제연합은 창립 3주년을 맞이해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선언을 한다. 모든 인류는 존엄한 존재이며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정식명칭은 인권에 관한 보편선언(Universal Declaration of Human Rights), 곧 인권은 세계 어디에서도 보편적으로 존중되어야 한다는 선언이다. . 오늘 그 의미를 되새기며 한마디한다. 인권사회를 위한 전제로서 우리가 정립해야 할 '나와 국가와의 관계'에 관해서다. . 송년회 철이 되었다. 요즘 저녁이 되면 송년회에 다녀오는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