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사상

새로운 미래모델, 저생존원가형 사회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5. 10. 19. 14:23

새로운 미래모델, 저생존원가형 사회에 대하여


 "아, 이 월급으로 살기 힘들다. 작년이나 올해나 월급은 한푼도 올라가지 않았다. 아이들은 쑥쑥 커나가는 데 어떻게 살꼬?"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월급을 올리는 방법이다. 또 하나는 물가를 낮추는 방법이다. 지금 우리에겐 어떤 것이 답일까?


경제가 경제학자의 몫만은 아니다. 나도 그것에 관심이 많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우리나라의 저성장을 걱정한다. 우리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장을 해야 한다고 하는 데 그게 맞는 말인가? 저성장 속에서도 우리가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책을 읽다가 우연히 한 챕터에서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내가 평소 생각한 것이 그대로 쓰여 있었기 때문이다. 중화권 경제학자 가오롄쿠이가 쓴 <복지사회와 그 적들>이란 책에서다. 그가 말하는, 아니 내가 생각했던 저생존원가형 사회! 이에 대해 간단히 말해 보자.



국민생활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이제껏 정부가 추구한 가장 중요한 방법은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소득 늘리기였다. 이 전제는 소득이 늘면 사람은 행복해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국민소득이 우리의 두 배 혹은 세 배가 넘는 높은 나라, 예컨대, 미국, 일본, 유럽의 여러 나라, 혹은 중동 산유국 등의 국민들은 우리보다 훨씬 더 행복할까. 아니다. 이들 나라 국민들도 상당수가 생존의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대한민국 경제성장률, 70-80년대는 매년 10% 가까운 고도성장을 했다. 2000년대 들어와 성장률은 고작 2-3%로 주저 앉았다.


국민소득이 높다고 해서 삶이 윤택해진다는 보장은 없다. 또, 그게 맞다고 해도 경제성장을 통한 국민소득 증가는 이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세계가 저성장 모드로 진입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발전도상국 시절엔 연10%씩 성장했지만 지금은 그 4분의 1로 떨어졌.


그럼 다른 방법은 없을까? 있다. 국민이 생존을 위해 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품가격을 내려 상대적으로 구매력을 높이면 된다. 이를 위해서 이른바 저생존원가형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이치는 간단하다. 소득이 아무리 늘어도 생존원가가 비싸지면 사람들은 결코 행복하지 못하다. 저성장 국면에선 생존원가가 비싸지면 국민생활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그렇지 않은가. 들어올 돈은 없는데, 나갈 돈은 너무 많다. 집세, 식료품비, 옷값, 통신비 ... 등등. 


대형마트에 쌓여 있는 물건들, 저것들이 우리 생활에 다 필요한 게 아니다. 시장경제는 필요가 없어도 물건을 생산하고 사람들은 꼭 필요하지 않아도 산다.


그렇다면 생존원가가 왜 이렇게 높을까. 크게 두 가지 근본적 이유가 있다. 하나는 자동차, 스마트폰 등 과거에 없었던 생활에 필요한 물건이 갈수록 많아진다는 점이다. 이 모든 게 생존원가를 높인다. 둘째는 사회적 분업이 세분화되면서 자급자족이 어려워졌고, 뭐든지 다 사서 써야 하는 세상이 되었다는 점이다. 이 둘은 시장경제로부터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이 체제를 버리지 않는 한 생존원가 상승을 근본적으로 막을 순 없다.


생존원가가 높은 것은 이런 근본적 원인 말고도 다른 이유가 있다. 같은 물건이라도 가격은 지역마다 다르다는 데에 주목해야 한다. 왜 그럴까? 생존원가를 현실적으로 줄이기 위해서는 지역마다 다른 물가차이의 원인을 알고 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게 필요하다. 그 원인 몇 가지를 일단 열거해 보자.


서울의 아파트, 대한민국의 부동산 시장을 수십년 간 달군 것은 저 아파트다. 사람들은 저 닭장 같은 아파트 한 채를 사기 위해 평생 돈을 벌어야 한다.


첫째, 높은 세금. 세금이 높으면 물가가 비싸지는 것은 불문가지다. 각종 세금이 높으면 소비자 손에 들어갈 때까지 가격도 높아진다. 이런 현상은 북 구라파 복지국가에서 특히 심하다.


둘째, 부동산 가격. 우리나라 상황을 생각하면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부동산 가격이 높으면 사람들의 생존원가가 높아지고 생존원가의 상승은 필연적으로 임금상승을 유발시켜 물가가 상승한다.


셋째, 임대료의 차이. 한 지역에서도 도심이냐 외곽이냐에 따라 임대료가 다르고, 거기에 따라 상품 및 서비스 가격차가 있다. 


서울 한복판 광장시장, 전통시장과 시장 내 노점은 서민의 생존원가를 낮추는 데 기여한다. 사진 위키피디아


넷째, 염가 사업모델에 대한 제재. 같은 상품이라도 노점, 대형 수퍼마켓, 전통시장 혹은 백화점에서 사는 것에는 상당한 가격차이가 있다. 정부가 이런 사업모델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서민의 가계부담 곧 생존원가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다섯째, 임금상승. 이것은 노동생산성과 관련 있다. 노동생산성이 높으면 임금은 올라가고 거기에서 생산된 제품은 가격이 높을 수밖에 없다. 반면 임금이 싼 곳에서 생산된 제품은 당연히 싸다.


저생존원가형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위 원인에 대응하는 방법론을 구상해야 한다

첫째, 조세정책. 생필품에 대한 세금은 낮추거나 면세하고, 사치품 혹은 향유품에 대해서는 세금을 높여야 한다(물론 우리도 이런 세율체계는 가지고 있지만 더 정교하게 만들어야 한다).


서울 시내, 서울 중심부는 주거 공간이 거의 없다. 낮에는 붐비지만 해가 떨어지면 공동화된다. 사람들은 도시 외곽에서 교통지옥을 무릅쓰고 도심으로 출퇴근을 하고 있다. 


둘째, 주거와 일터의 일치. 주거공간과 일터가 멀면 교통비 지출과 출퇴근으로 인한 비용이 많이 든다. 교통은 혼잡하고 에너지는 더 많이 쓸 수밖에 없다. 이 공간을 가급적 일체화시키면 에너지를 적게 쓸 뿐만 아니라 놀라울 정도의 저비용구조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그런면에서 우리가 수십 년간 취해온 대도시 인근의 위성도시(일산, 분당 등등) 건설은 사실 잘못된 정책이었다.


셋째, 적절한 염가사업모델의 육성. 길거리 노점상이나 전통시장 등 상품가격이 낮은 사업모델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면 서민들의 생존원가는 그만큼 낮출 수 있다.


넷째, 부동산 대책. 지속적으로 부동산 가격과 임대료의 인상을 막는 것은 저생존원가형 사회의 필수적 국가정책이다. 


저생존원가형 사회는 한마디로 말하면 사회적 엔트로피를 줄여나가는 사회를 말한다. 에너지를 절약하고, 그것을 최대로 효율화하면서, 사회 전체적으론 검소함이 강조되는 사회다. 이런 사고는 한 나라의 정치지도자들의 철학으로 나타나야 그 실현 가능성이 높아진다. 물론 그 이전이라도 우리들 시민들의 사고가 이런 방향으로 흘러간다면 그런 지도자를 만나는 것도 쉬워질 것이다


이런 사회가 우리 체제 하에서는 불가능할까? 완벽하게 실현할 수는 없어도 그 취지는 살려나갈 수 있지 않을까? 요는 우리 삶의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것이고, 정부 정책도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바로 저성장사회에서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다.


저생존원가형사회!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한번쯤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2015. 10.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