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인문명화산책

인문명화산책 11 가난을 그린 예술혼, 무리요의 ‘어린 거지’

박찬운 교수 2015. 10. 28. 16:28

인문명화산책 11

 가난을 그린 예술혼, 무리요의 어린 거지

 

내가 초등학교를 들어간 60년대 말은 주변 환경이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위생적이었다. 그 중에서도 제일 고통스러웠던 기억은 목욕이다. 당시 웬만큼 부자가 아니고서는 집에 목욕탕이나 샤워시설을 갖춘 집은 없었다. 특히 나는 충청도 어느 벽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그런 것을 애당초 구경조차 못했다. 우리 마을에서 가장 잘사는 집이 양조장집이었는데 그 집에 가면 일제시대 때 만든 목욕시설이 하나 있었다.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7-1682), '어린 거지', 루브르 박물관 소장


큰 무쇠 욕조에 물을 붓고, 아래에서 군불을 지펴 물이 뜨거워지면, 찬물을 부어 온도를 맞추고, 나이 순서에 따라 들어가 때를 불린다. 할아버지, 할머니... 집안 어른들이 목욕을 다 하고 나면, 물은 이미 때가 둥둥 떠다니는 탁한 물이 되었지만, 그런 걸 신경쓸 상황이 아니었다. 간단히 끌채로 때를 건진 다음 이번엔 애들이 들어간다. 어른이나 애들이나 오랜 만에 뜨거운 물에다 몸을 불리면 그날은 얼굴이며 피부가 뽀 해진다. 내 또래에서 어린 시절 이런 걸 자주 경험한 분들이 있다면 그분들과 나는 원래 신분이 달랐던 거다.

내 어린 시절 한두 번 그 양조장집에서 목욕을 해 본 적이 있다. 아버지가 면장을 하셨기 때문에 그 빽으로 해 본 거다. 그 무쇠 탕에 들어가 때를 불렸더니 거기서 나온 때가 자그만 치 한 주먹 가득 찰 정도였다. 창피해서 탕 밖으로 나가질 못했으나 목욕한 뒤의 그 상쾌함, 그 황홀함이란! 나는 그 때부터 꿈을 꾸었다. 돈 벌면 꼭 우리 집에 목욕탕 하나를 만들 거라고!

내 어린 시절 기억나는 겨울철 목욕은 그게 전부다. 도대체 한 겨울에 목욕이란 것을 제대로 해본 적이 없다. 정 몸에 때가 껴 가려울 정도가 되면, 부엌에서 큰 대야에 뜨거운 가마솥 물을 부어 머리를 감고, 그 물로 수건을 적셔 몸 이곳저곳을 박박 문질러 때를 벗겼다. 그런 상황이다 보니 내 초등학교 시절엔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 왔다. 바로 '이'란 놈이다. 

학교에 가서 자리에 앉으면 앞자리 친구 등으로 살금살금 기어가는 이를 발견한다. 그러면 손바닥으로 친구 등짝을 사정없이 내리쳐 죽여버리거나 살며시 다가가 손톱으로 살짝 누르면 딱 하는 소리와 함께 붉은 피가 터졌다. 내 옆자리 친구 놈 머리엔 언제나 허연 서캐와 스멀스멀 움직이는 이가 보였다. 선생님이 도저히 안 되겠다 싶었는지 가끔 학교 뒤 볕 잘 드는 곳으로 모이라고 해서 가면 참빗으로 머리를 빗겨 주셨다. 이것이 60년대 후반 나와 친구들의 모습이다.

이런 기억 때문에 이 화가의 작품이 일찌감치 내 눈에 띄었는지 모른다. 17세기 스페인 황금시대의 작가 바르톨로메 에스테반 무리요(1617-1682)어린 거지. 내가 이 그림을 처음 친견한 것은 17년 전인 1998년 여름 루브르 박물관에 처음 갔을 때다. 한 눈에 들어온 이 그림을 보면서, 언젠가 내가 그림을 설명할 만한 실력이 생기면, 이 그림을 누군가에게 말해 줄 것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다. 오늘이 그날이다.

한 가난한 아이가 볕 좋은 날 햇빛 잘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이를 잡고 있다. 어린 아이의 처량한 눈길을 보니 마음이 그저 짠해 진다. 망태기 속에 있는 과일 몇 개는 무엇일까? 아마도 늦은 가을 마지막 과일이 익어 갈 때 동네 이곳저곳을 다니며 구걸했을지 모른다. 그러니 그림 제목이 어린 거지(Young Beggar)가 아니겠는가.

오후가 되어 서서히 몸이 피곤해 지자 소년은 따뜻한 헛간에서 잠이 들뻔 했는데 무언가가 스멀스멀 기어 다니며 몸을 간질거린다. 바로 란 놈이다. 소년은 잠자는 것을 포기하고 눈에 띄는 놈들을 하나씩 잡아 손톱으로 지그시 누른다. 


무리요, '포도와 멜론을 먹는 아이들', 1645-6년


화가 무리요는 스페인 세비야 태생으로 어린 시절 고아가 되어 매우 불우한 시기를 보냈다. 하지만 그는 성장하면서 그림에 재능을 보여 카스티요라는 당대의 화가 밑에서 수련하고 마침내 세비야 화단의 중심인물이자 17세기 최고의 궁정화가 벨라스케스와 함께 스페인 바로크 미술의 거장이 된다. 무리요는 죽을 때까지 주로 두 종류의 그림을 그렸는데, 하나는 종교화로 특히 순결한 성모 마리아를 많이 그렸다. 

다른 하나가 풍속화인데, 거리의 아이들이나 평범한 소녀들의 일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그렸다. 이것은 벨라스케스와 같은 궁정화가에게선 볼 수 없는 소재들이다. 아마도 그의 어린 시절이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사람이란 환경과 성장배경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가난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가난을 모른다. 그것을 경험한 사람이 후일 가난한 사람을 만나면 특별한 생각을 갖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물론 가끔은 그것을 일부러 잊으려고 발광하는 자들도 있지만...

이 그림을 보면 대상은 처량하지만 그것을 그려낸 무리요의 기법과 예술적 미학은 탁월하다. 나는 사회의식을 담은 그림을 좋아하지만, 그것이 너무 자극적인 기법으로 표현된 그림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런 그림은 야외무대에서 걸개그림으로 걸어둘 수는 있어도 적어도 내 거실이나 서재에 걸어두기는 민망하다. 그런데 무리요의 작품은 그렇지 않다. 분명한 사회의식이 담겨져 있지만 거기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오후의 나른한 낮잠이 연상될 정도 은은하고 고요하다. 그런 이미지는 그의 예술적 기법이 가져다 준 결과이다.


카라바조, '성 마태오의 소명', 1600년?


라 투르, '목수 요셉, 1642


이 그림을 잘 보자. 햇빛을 이용한 명암기법이 정말로 대단하지 않은가. 나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회화 중에서 이런 명암을 강조한 작품을 특별히 좋아한다. 무언가 내게 선명한 인상을 주고, 내 감각을 후벼내는 마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기법은 원래 무리요 이전 베네치아 화단의 거장 카라바조가 시작했다고 하는 기법인데, 미술용어론, 테네브리즘(tenebrism)이라고 한다. 어둠이란 뜻의 이태리어 테네브라(tenebra)에서 시작된 말이다. 명암대조에 의한 극단적인 표현기법으로 카라바조 이후 1600년대 이태리 화단에서 유행했고, 이것이 프랑스, 네덜란드, 스페인 등지로 옮겨갔다.

오늘 무리요의 어린거지를 보면서 테네브리즘의 시조 카라바조(1573-1610)성 마태오의 소명’(1600?)과 동시대 프랑스 테네브리즘의 1급 화가인 라 투르(1593-1652)목수요셉’(1642)이란 작품도 함께 보자. 이들이 빛을 얼마나 자유자재로 활용해 대상을 사실적으로 그렸는지... 놀랄만한 그림들이다.

 

요하네스 베르메르, '우유를 따르는 하녀', 1658,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17세기 네덜란드 화단의 기린아 요하네스 베르메르(1632-1675)도 따지고 보면 17세기 테네브리즘 계열의 화가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탁월성은 이 기법을 한 차원 높였다는 데 있다. 빛에 의한 극명한 명암을 보여주는 걸 절제하면서도, 그 빛을 이용해 화폭 전체에 다른 차원의 명암을 보여준다. 그의 그림 우유를 따르는 하녀’(1658)을 보면 창으로 들어온 햇빛을 받은 쪽은 밝게, 그렇지 않은 쪽은 어둡게 표현했지만, 카라바조나 라 투르의 기법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침착하면서도 부드럽지 않은가

(2015. 10. 28.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찬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