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영국이야기

영국이야기39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취

박찬운 교수 2017. 1. 3. 06:38

영국이야기 39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취 

-5개월간의 런던 공원 관찰 보고기-



런던을 알면 알수록 이 도시에 매료된다. 2천 년 역사의 긴 터널을 통과해 온 이 도시에 이방인인 내가 잠시라도 머물렀다는 것은 기쁨 중의 기쁨이다. 이 도시의 매력은 어디에서 왔을까? 길거리를 지나가는 런던 시민을 잠시 세운 다음 이런 질문을 해보자. “당신은 런던 시민으로서 런던의 무엇이 가장 좋습니까?” 이 질문에 런던러(Londoner)들은 무엇이라 답할?


런던엔 자랑거리가 넘치니 사람마다 다른 답을 말할 지 모른다.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미술관? 아름답고 당당한 궁전? 고풍스런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루는 템즈강변?.... 하지만 내 예상으론 십중팔구 런던을 제대로 아는 런던러라면 답은 정해져 있다. 그건 다름 아닌 퍼블릭 파크, 이름하여 공원이다.



하늘에서 본 런던 도심의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가든(사진 위키피디아)


런던은 일찌감치 공원이 시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를 안 도시이다. 도시라는 인공물에 공원이란 인간이 만든 생명력을 집어 넣어 도시를 살아 꿈틀거리도록 만들었다. 인간은 자연을 떠나 콘크리트 구조물 속에서만 살 수 없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면 인간이 사는 도시는 어떤 방식으로든지 자연과 연결되지 않으면 안 된다. 런던이 거대 도시이면서도 살아 있는 삶의 공간이 된 것은 전적으로 공원이란 자연공간을 확보한 런던러들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런던은 지난 3백 년 동안 시내 이곳저곳에 크고 작은 공원을 만들었고, 그것을 유지발전시켜 왔다. 그 결과 오늘 날 천만 시민이 사는 거대 도시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사람들의 일상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람들은 우주선을 만들어 달에 간 것을 위대하다고 하겠지만 나는 런던의 공원이야말로 인간이 만들어낸 위대한 성취라고 말하고 싶다. 

 

켄싱턴 가든. 이 공원은 원래 하이드 파크의 일부이었지만 18세기 켄싱턴 궁전에 부속한 왕실 가든으로 분리되었다. 켄싱턴 궁전은 17세기 후반 명예혁명 후 윌리엄과 메리가 만든 것으로 19세기엔 빅토리아 여왕이, 20세기엔 다이아나비가 살았던 곳으로 유명하다. 맨 아래 사진 조각상의 주인공은 빅토리아 여왕이다.


영국이야기를 써나가면서 진즉 런던의 공원에 대해 써보려고 했다. 하지만 5개월이 다 되도록 그러지 못했다. 이것은 그냥 쓸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런던 시내의 수많은 공원을, 내가 직접 가서 보고 느끼지 않고서는, 가능한 게 아니었다. 이제 그 글을 쓸 때라고 느낀다


지금 내 머릿속은 런던 공원으로 가득 차 있다. 눈만 감으면 내가 걸었던 공원의 그 한적한 길, 양지바른 곳에서 나를 반겨주던 옛스러운 나무 벤치, 철마다 신비한 옷을 바꿔 입는 듯한 수목들이 그려진다. 나는 그것에 대해 간단한 보고를 한다는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 조금은 건조한 글이 될런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그 어떤 글보다 공력이 많이 들어간 것이다.


런던 공원 스케치

런던에서 유럽 이곳저곳을 다닐 때마다 런던 주변 여러 공항(스텐스테드, 갯트윅, 루튼)을 이용했다. 비행기가 이륙하거나 착륙할 즈음 런던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 때 나는 무척이나 놀랐다. 런던이 거대한 숲으로 보였기 때문이었다. 유럽 최대의 도시, 인구 천만 명(런던 광역시라고 할 수 있는 Greater London의 인구는 900만 정도이나 그 인근까지 합치면 천만이 훨씬 넘음)이 사는 런던이 숲이라니? 그러나 이 말은 과장이 아니다. 런던은 그만큼 공원이 많고 넓다.

 

하이드 파크. 헨리 8세가 1536년 웨스트민스터 사원으로부터 입수해서 사슴 사냥터로 사용한 곳이다. 스튜어트 왕조에 들어서서 공원으로 개발되어 일반에게 공개되기 시작했다. 세계 도심공원의 대명사로 불린다.


런던의 여러 공원을 어떻게 간단하게 소개할 수 있을지 조금은 난감하다. 요령 있게 설명하기 위해 여러 자료를 찾아보았지만 마땅한 것을 발견하지 못해 내가 스스로 만든 기준으로 소개할 수밖에 없다. 우선 관리주체별로 런던 공원을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기준으로 판단하면 두 종류의 공원이 있다.

 

하나는 로열 파크로, 내각의 문화체육부 산하 왕립공원관리청(Royal Park Agency)에서 관리하는 공원이다. 런던엔 이런 로열 파크가 모두 8개가 있다. 이 중에서 하이드 파크, 세인트 제임스 파크, 레전트 파크, 그린 파크, 켄싱턴 가든은 시내 한 가운데 있고, 그리니치 파크, 리치몬드 파크 및 부쉬 파크는 도심에서 조금 떨어진 외곽에 위치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큐가든이라 불리는 식물원(로열 보태니컬 가든)이다. 이것도 가보면 사실상 거대한 공원이다.


8개의 로열 파크의 면적을 조사해 보았다. 놀라지 마시라. 총 5,000 에이커! 우리에게 익숙한 평수로 계산하면 600만평이 넘는다. 실로 광대한 규모다. 도심 공원의 대명사인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가든(이 두 개의 공원은 연결되어 있어 사실상 하나의 공원이나 마찬가지임) 두 개를 합한 것만도 620에이커(80만평)에 달하니 대충 시내 한 가운데에 얼마나 큰 공원이 자리잡고 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도심에서 떨어진 리치몬드 파크는 사슴들이 뛰어 노는 공원으로 유명하다. 그 크기는 무려 2,360에이커(300만평)!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 주변 길을 걷는 데만도 족히 2시간이 넘는다니.

 

리치몬드 공원. 템즈 강 상류에 위치하고 있는데 런던 로열 파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여기는 17세기 스튜어트 왕조의 찰스 1세가 런던에 역병이 돌 때 그것을 피해 이곳에 있었던 리치몬드 궁전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조성되기 시작했다. 지난 수 백년 동안 이곳은 사슴 공원으로 유명하다. 리치몬드 파크 내에 버트런드 러셀이 어린 시절을 보낸 펨브로크 로지가 있다. 아래 사진(위키피디아)


다른 하나는 시티나 보로우(런던은 광역시로서 우리의 자치구에 해당하는 1개 city와 32개 borough로 구성됨) 혹은 공익재단이 관리하는 공원이 있다. 이 수는 대단히 많은 데 좀 유명한 곳 몇 군데만 열거하면, 햄스테드 히드 파크, 빅토리아 파크, 핀스베리 파크, 서더크 파크 등이 있다.


다음으로 공원 형태에 따른 분류도 가능하다. 크게 대공원와 소공원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 데, 전자는 위에서 열거한 공원들이 해당한다. 이런 공원은 대부분 공원 주변과 공원 내를 가로지르는 길, 공연을 위한 밴드 스탠드, 우리의 팔각정 모양의 파빌리온, 분수 등이 마련되어 있다.

 

그리니치 공원. 런던 도심에서 동쪽으로 조금만 가면 템즈강변에서 멀지 않은 곳에 그리니치 천문대를 만난다. 그 주변은 매우 넓은 공원이다. 이곳은 15세기 이후 왕가의 땅으로 튜더 왕조 시절엔 궁전이 만들어졌고, 17세기 후반 스튜어트 왕조 찰스 2세 때에는 그리니치 왕립 천문대가 만들어졌다.


후자의 경우는 그 수가 너무나 많고 형태도 다양해 일률적으로 말하기 힘들지만, 도심의 경우는, 대부분 하나의 블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런던 시내는 원칙적으로 블록단위로 개발되어 있는데, 건물블록 사이사이에 공원블록이 있는 것이다. 내가 다니고 있는 런던대학 근처에도 이런 블록형 공원이 여러 개 있다. 러셀 스퀘어, 타비스토크, 고든 스퀘어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런 공원은 여기에선 가든이라고도 한다.

 

홀랜드 파크. 하이드 파크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도심 공원이다. 공원 내에는 17세기에 만들어진 홀랜드 하우스가 있고 그 근처는 런던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주택가(빅토리안 양식의 저택) 중의 한 곳이다. 공원 내에는 1990년대에 만들어진 일본식 가든인 쿄토가든도 있다. 세번째 사진 속의 동상 주인공은 17세기 홀랜드 하우스의 주인이었던 홀랜드 백작. 맨 아래 사진은 홀랜드 공원 근처의 주택.


런던의 공원은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런던에 도착한 이래 수 십 개의 공원을 돌아보면서 그 아름다움과 크기에 감탄했지만 그 보다 내가 더 감탄한 것은 그곳을 이용하는 평범한 런던시민들의 모습이었다. 런던 시민들은 날만 좋으면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공원 내 잔디밭에 누워서 책을 보고 친구들끼리 담소를 나눈다. 규모가 큰 하이드 파크나 켄싱턴 가든에 가보면 노부부가 개 한 마리를 데리고 산책을 하거나 연인들이 팔장을 끼고 걷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공원 잔디밭 여기저기에서는 아이들이 부모들과 공놀이를 하기도 하고, 요즘 같은 날엔 연을 날리기도 한다. 공원은 한마디로 영국의 평화를 상징하는 곳이다.


큐가든. 리치몬드 공원에서 멀지 않은 템즈 강변에 있는 왕립식물원(1840년 설립)이다. 누구는 이곳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식물원이자 공원이라고 한다. 맨 아래 건물은 큐 가든 내에 있는 큐 궁전임


서구사회의 공원 수준은 동양권에 비해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앞서 있다. 그 중에서도 런던의 공원이 최고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내가 가본 세계의 주요도시 어느 곳과도 비교가 안 된. 역사적으로도 런던은 현대 도시 공원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도시다. 지금이야 세계 최고의 도심공원의 하나라고 불리는 미국 뉴욕 맨하튼의 센트럴 파크(1857)나 아시아 최초의 서구식 도심공원이라고 불리는 동경의 히비야 공원(1902)도 모두 런던의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가든 등을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렇다면 런던(아니 영국)은 어떻게 이런 공원을 갖게 되었을까. 이것은 내가 런던에 온 이래 지금까지 내 머리를 떠나지 않은 질문이었다. 사실 오늘 이 글을 쓰는 이유도 이 질문에 대해 이젠 어느 정도 내 스스로 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런던 공원의 역사는 한 권의 책으로 써도 충분한 주제가 될 것이다. 각 공원마다 각기 다른 역사적 배경이 있기에 하나하나 설명을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몇 날 며칠이 걸릴 것이다. 그러니 짧은 지면의 이 글에선 그저 런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정도의 큰 줄거리만 말하기로 하자.

 

햄스테드 히드 공원. 이곳은 런던 시내 전체를 볼 수 있는 유일한 공원이다. 런던은 전체가 평지인데 이곳은 언덕이기 때문에 멀리 런던 시내 전체를 볼 수 있다. 맨 위 사진은 공원 내에 있는 켄우드 하우스. 공원 내에서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자유스럽게 뛰놀고 있다.


내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런던은 크게 두 가지 배경 하에서 오늘 날의 공원도시를 만들었다. 우선, 런던 공원의 중심인 로열 파크를 보자. 로열 파크는 왕가의 사유지가 공원화된 것이다. 따라서 이들 공원의 역사는 일반 공원보다 훨씬 길다. 런던 시내 한 가운데에 있는 하이드 파크나 켄싱턴 가든은 튜더왕조 시기에 왕가의 재산이 되었다. 헨리 8세는 수장령을 선포한 뒤 영국 국교회(성공회)를 만들고 종전 가톨릭 교회(혹은 수도원)가 영국 전역에 가지고 있던 토지를 몰수하거나 매수해 왕가의 재산으로 만들었다. 하이드 파크와 켄싱턴 가든의 경우도 그 때 웨스터민스터 사원으로부터 튜더왕조가 넘겨받은 것이다.


빅토리아 공원, 런던 도심에서 동쪽 외곽(East End)에 있는 시립공원. 1845년 빅토리아 여왕 시절 공장지대가 많은 이곳 주민들의 요구에 의해 만들어졌다.


튜더왕조는 이들 땅을 주로 왕실 사냥터로 사용한다. 17세기 스튜어트 왕가는 이 사냥터를 거대한 왕실 가든으로 만들어가면서 조금씩 공중에게 개방하기 시작한다. 18세기 하노버 왕가가 들어서면서 영국은 입헌군주제를 확립한. 왕은 군림하나 통치하지 않는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이 시기부터 왕가는 적극적으로 왕가재산을 시민들이 이용할 수 있도록 내어 놓는다. 대륙에서 휘몰아치는 혁명의 바람 속에서 입헌군주정이 유지되기 위해선 국민들에게 그런 정도의 선심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 시기부터 왕가의 로열 가든은 시민들을 위한 퍼블릭 파크 즉 공원으로 변모한다.

 


블룸스 베리에 있는 러셀 스퀘어(위)와 고든 스퀘어(아래, 위키피디아). 이들 공원은 건물 블록 사이에 있는 블록형 가든식 공원이다. 언제든지 날만 좋으면 주변의 런던대학 학생들이나 직장인들이 이곳에 나와 잔디밭에 앉아 담소를 나눈다. 이 두 공원이 바로 버트런드 러셀이나 경제학자 케인즈, 소설가 버어지니아 울프 등이 거닐었던 곳이다.


일반 퍼블릭 파크(왕립공원에 대응하는 공원이니 시민공원이라고 불러도 좋을 것임)의 경우는 몇 가지 경로로 지금의 공원이 되었다. 하나는 시티나 보로우가 시민들의 이용을 위해 공원을 만든 경우다. 이런 공원은 대부분 19세기 중엽 이후부터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것은 산업혁명 이후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노동자 계급을 달래주는 의미가 있었다


노동자들은 주말에 공원을 산책하는 것에서 마치 귀족이 된 것과 같은 착각을 하면서 잠시라도 삶의 고통에서 해방감을 맛보았을 것이. 대륙에선 노자갈등으로 혁명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영국이 그 대열에 끼지 않았던 것은 공원의 역할도 상당부분 있었다고 할 것이다.

 

일링 브로드웨이 공원. 런던 도심에서 서쪽으로 가면 주택지구로 유명한 일링 브로드웨이라는 곳이 있다. 그 한 가운데에 이런 시민공원이 있다. 나는 이곳이 아름다워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했다.


두 번째는 공동사용 토지(common land) 개념의 공원 탄생이다. 원래 영국은 봉건제도 하에서 성장했기 때문에 전국 대부분의 토지가 귀족들의 영지(manor)였다. 이 영지에 사는 농민들은 영주를 위해 일을 해주고 수확이 끝나면 영지의 일부를 자신들 소유의 가축을 위해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었다(이것을 common lands라고 부름). 


그러나 17-18세기 인클로저 운동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농민들이 가졌던 공동사용 토지는 점점 줄어만 갔다. 이렇게 되자 19세기 후반 하나의 사회운동이 일어나면서 코몬랜드 입법화(이렇게 되면 영지를 소유하고 있는 귀족의 토지소유권은 제한됨)가 되면서 공원이 탄생한다. 런던 시내에선 그 대표적 케이스가 햄스테드 히드 공원이다.


세 번째는 위에서 본 소공원으로서 도심의 블록단위 공원인데, 이것은 19세기 후반 이후 도시계획의 결과로서 나타난다. 도심을 블록단위로 개발하면서 일부 블록을 공원화한 것이다. 많은 경우는 사유지 공간에서 블록 주민들의 전용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공공이용으로 바뀐 게 많다.  

 

캐논베리 스퀘어. 조지 오웰이 살았던 집 앞의 조그만 공원. 이것도 건물 블록 사이에 있는 일종의 블록형 공원이다. 런던 시내에는 이런 공원이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시민공원은 모두 19세기 빅토리아 여왕 치하 시절의 산물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런 공원을 총칭하여 빅토리안 파크라고 부른다. 그렇게 보면 런던의 공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진다고도 할 수 있다. 로열 파크와 빅토리안 파크.


이상이 나의 간단한 런던 공원에 관한 보고서누구도 알려주지 않은 런던 공원에 관한 역사를 내 스스로 알아낸 것이다. 이제 런던 시내 어디를 가 어떤 공원을 만나더라도 그 공원이 왜 거기에 있는지, 그게 그 지역 주민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곳인지.. 이런 것을 파악하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런던 공원은 단순한 쉼터가 아니다. 그것은 그 이상의 역사의 현장이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만 더 하자. 영국이 세계 제일의 공원 천국이 된 것은 역시 영국 국민들의 공원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17세기 이래 왕과 귀족의 위락지를 공원으로 바꾼 것도 시민들의 열망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고, 특히 19세기 산업혁명 이후에 만들어진 시민공원은 공원 건립과 보존을 위한 시민운동의 직접적 결과였다. 지금 영국 전역엔 시민 공원지킴이 단체(Friends Group)5천 개 이상이 있. 이들 단체가 공원당국과 함께 영국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오늘도 공원보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공원을 잘 가꾸는 나라가 진짜 선진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