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깊은 생각, 단순한 삶

점심단상

박찬운 교수 2018. 3. 17. 05:49

 

 

점심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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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점심시간이다. 나는 일과 중 이 시간을 특별히 좋아한다. 이 시간에 밥도 먹고 차도 한 잔 마시고 산책도 한다. 잘 가는 카페에서 혼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운치가 있다) 카페라테를 마시면서 카톡도 하고 페북도 한다. 내겐 이게 행복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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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히 약속이 있으면 동료 교수들이나 학생들과 함께 나가지만 대부분은 혼자서 나간다. 남들은 혼밥 먹기를 꺼린다고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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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의 이런 소소한 행복을 방해하는 친구들이 있다.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이상한 소리라고 할는지 모르지만... 학교주변 식당에서 만나는 동료교수들이 내 밥값을 내주는 일이 많아 아주 부담스럽다. 우리 학교의 특징인지 모르지만 내 주변엔 밥값 잘 내는 교수들이 많다. 그렇다 보니 내가 혼자 밥을 먹고 나서 밥값을 내러 카운터에 가면 이미 지불이 되어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 매번 그러지 말라고 부탁하지만 잘 고쳐지지 않는다. 그분들은 보통 두 세 명이 오는데 구석 자리에서 조용히 밥을 먹고 있는 내가 조금 안쓰럽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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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그건 아닌데... 나도 얼마든지 사람 불러 밥 먹을 수 있는데... 나는 그저 이 한 시간 남짓의 시간을 조용히 밥 먹고 차 마시면서 나만의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인데... 내겐 이게 진짜 행복의 시간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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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즐길 줄 아는 것은 공부하는 사람들에겐 필수적인 덕목이라고 생각한다. 연구실에서, 집의 서재에서 혹은 도서관에서 하루 종일 있으면서도, 큰 외로움을 느끼기 보다는, 오히려 그 평화로운 환경 속에 홀로 있는 것을 행복이라 느끼는 사람이야말로 공부의 본궤도에 오른 사람이다. 뭐 그렇다고 내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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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점심 여정을 떠나는데... 오늘도 나 혼자 밥 먹는 것을 불쌍하다 생각할 사람이 있을까? 제발 모른척해 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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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글 가까운 지인이라도 보면 박교수 정말 주변머리 없겠다고 하겠다 ㅜ ㅜ)
 
(2018. 3.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