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심각한 경찰인사의 현실 -구조적 개혁 없이 수사권 조정 성공하기 힘들다-

박찬운 교수 2018. 12. 1. 08:26

심각한 경찰인사의 현실
-구조적 개혁 없이 수사권 조정 성공하기 힘들다-


이 정부 들어서서 경찰개혁위원이 된 덕에 경찰을 이해하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실 그동안 경찰을 권력의 시녀 정도로 여기고 비난을 했을 뿐, 그 원인이나 대안을 제시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경찰이 그런 비판을 왜 받아야 했는지 그 이유가 눈에 들어옵니다. 대안도 손에 잡힙니다. 경찰의 미래를 위해 그것들을 말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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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경찰 지휘부 인사가 있었습니다. 경찰청장 바로 밑 계급인 치안정감 6 자리 중 3 명과 그 아래 계급인 치안감으로 승진하는 4명의 인사가 있었지요. 작년부터 개혁위원으로, 또 최근엔 수사정책위원으로 경찰청을 자주 오가다보니, 이번 승진자 중 몇 분을 알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니 모두 유능하고 훌륭한 분이란 생각이 드는군요. 당사자들에게 큰 축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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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저는 어제 인사 소식을 듣자마자 한 숨이 나왔습니다. 저렇게 인사해도 되는 것인가? 도대체 저런 인사가 선진 국가 중 어느 나라에서 볼 수 있을까? 바로 저런 인사가 권력의 시녀라는 경찰의 현주소가 아닌가...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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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하나 들어보겠습니다. 이번에 서울지방경찰청장으로 승진한 원경환 치안정감의 경우입니다. 이 분은 지난 번 평창 동계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르는데 있어 수훈갑 중 한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경찰관 중 경비분야 1인자라고 평을 듣는 인물로 인격적으로도 매우 훌륭합니다. 이 분의 보직경로를 한번 볼까요.(이거 이분 디스하기 위해 예를 드는 것 아니니 절대 오해하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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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청장은 2017년 6월 경찰개혁위가 만들어질 때 경찰청 수사국장으로 일했습니다. 지난 1년 반 동안 경찰과 인연을 맺은 뒤 이 분의 보직변경을 살피니, 경남지방청장-강원지방청장-인천지방청장-서울청장의 경로를 거쳤습니다. 불과 1년 6개월 만에 4번의 인사가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 자리에서 1년은커녕 몇 개월도 있지 못하고 인사이동을 하니 이것을 정상이라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인사는 어떤 후진국에서도 볼 수 없는 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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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왜 이런 인사가 있게 되는 것일까요? 가장 큰 이유가 경찰인사 제도의 난맥상 때문입니다. 현재 제도 하에선 이런 인사가 그리 큰 문제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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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 난맥상의 가장 큰 원인은 소위 압정형 혹은 첨탑형 인사구조에서 비롯합니다. 한마디로 하위직은 너무 많은 데 상위직은 너무 적습니다. 그렇다보니 상위직으로 올라가는 경쟁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찰 중간간부의 꽃이라고 하는 총경(4급 상당, 경찰서장급)은 전국 12만 경찰관 중에서 600여 명에 불과합니다. 첨부한 사진을 한 장 보십시오. 2016년 나온 언론에 공개된 인사자료인데 총경직급의 수는 다른 일반부처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합니다. 경무관급(3급 상당) 이상을 보면 더욱 놀랍습니다. 다른 일반부처의 10분의 1 수준도 안 됩니다. 경찰에선 경무관급 이상의 간부들을 지휘부라고 부르는데, 이들 총수가 90여 명(경무관은 60여 명) 밖에 안 됩니다. 총경 10명 중 한 명이 경무관이 되는 구조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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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다 보니 경찰인사는 다음과 같이 운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1) 경정 이상은 계급정년을 두고 있습니다. 경정 14년, 총경 11년, 경무관 6년, 치안감 4년입니다. 이 의미는 승진을 못하면 연령 정년(60세)이 되기 전이라도 빨리 경찰에서 나가라는 것입니다.(승진하지 못한 입장에선 경찰 지휘부가 빨리 바뀌고 옷을 벗길 바랍니다. 그래야 바늘구멍 같은 인사제도 하에서도 승진 가능성이 높아지니까요.) 치안정감(전국 6자리)의 경우는 계급정년도 보장되지 않습니다. 치안감 승진인사를 통해 자신의 자리를 내주어야 하는 상황이 되면 바로 사표 쓰고 나가야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경찰 지휘부의 경험축적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이런 상황에서 경찰의 중장기 계획이 어떻게 실천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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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총경에서 경무관이 되지 못하면 연령 정년 전에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고시에 합격해 경찰관(경정)이 되거나, 능력을 인정받아 승진이 빨랐던 사람들은, 50대 초반에 옷을 벗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자녀들은 이제 갓 고등학생이거나 대학에 들어갔는데 실직을 하는 것이지요. 운 좋게 경무관이 된 사람들도 6년 내에 치안감이 되지 못하면, 옷을 벗어야 하니, 몇 년 더 경찰에 더 머무는 것에 불과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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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이런 상황이니 총경이나 경무관들은 승진을 위해 목을 맵니다. 아주 필사적이지요. 경찰이 권력의 시녀가 될 상황이 여기에서 벌어집니다. 인사권자는 공정한 인사를 한다고 하면서 출신, 지역 등을 강제 할당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능력 있는 사람을 사장시켜 인사 불만을 야기합니다. 더 큰 문제는 권력자들이 이 상황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승진에 목을 맨 사람들이 인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치인이나 권부의 실력자들을 어떻게 대하겠습니까. 자연스럽게 굴종적인 관계가 맺어지는 것입니다(물론 전부는 아닙니다. 어느 시대, 어떤 상황에서도 저항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경찰도 마찬가지지요. 다만 그 환경이 너무 나쁘니 그런 의로운 이가 나오기 힘들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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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잘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워낙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경기가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도저히 낙관을 못합니다. 검찰과 경찰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지만 구조적으로 심각하게 불균형한 상태에 있습니다. 인사문제를 이야기하니 이 한도 내에서 검사들의 대우를 잠깐 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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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사들은 기본적으로 판사와 거의 같은 대우를 받습니다. 그렇다 보니 그들의 대우는 모든 공무원 중에서 수퍼 갑입니다. 판사에 준하는 강력한 신분보장을 받고 급여를 포함한 예우는 다른 일반 공무원과 판이합니다. 검사들은 계급정년이란 게 아예 없습니다. 연령정년도 60세가 아니라 63세(검찰총장 65세)입니다. 그러니 검사들은 마음만 먹으면 63세까지 누구도 건드릴 수 없습니다. 독립적인 수사가 가능한 것이지요. 정치인이나 권부가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이지요.(이런 상황에서도 검찰이 권력에 휘둘린다면 그것은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가 아닐까요? 그것은 출세지향적인 검사 스스로가 반성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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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경찰은 어떻습니까. 위에서 본대로입니다. 저런 취약한 구조에서 경찰이 검찰과 정상적인 관계를 맺고 당당하게 임무를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안 되지요. 대한민국 공권력의 상징으로서 경찰이 제대로 일을 하려면 거기에 걸 맞는 인사제도를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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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찰승진 인사는 제도를 어떻게 바꾸어도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대상자가 승복할 수 있는 공정한 인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권부가 마음대로 인사를 할 수 없도록 능력본위의 인사절차를 만들어야 합니다. 개혁위는 이를 위해 중립적인 경찰위원회를 만들어(경찰위원회의 실질화) 공정한 인사를 주도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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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군대와 같이 경찰은 명확한 계급조직이니만큼 계급정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경찰관들이 조기에 퇴직하는 것을 막을 수 있도록 계급정년을 충분히 늘려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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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총경급과 경무관급의 대폭 충원이 필요합니다. 이것은 국가기관의 형평성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경찰관들의 자긍심을 위해서도 이루어져야 합니다. 특히 검경수사권 조정을 생각하면 총경급 이상 경찰관의 증원은 불가피합니다. 지금 기준으로 보면 현재 수준의 2배를 늘려도 타 기관보다 적은 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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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검사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총경급 수사관이 필요합니다. 일선 수사팀의 책임자를 유능한 총경급이 맡지 않고서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수사실무가 크게 바뀌기 어렵습니다. 또한 경무관급 경찰서장도 다수 나와야 합니다. 서울의 대부분 경찰서장은 최소 500명 이상의 인력을 지휘하는 지휘관입니다. 현재 총경급이 일하기는 적절치 않은 조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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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경찰을 정권의 시녀로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선 경찰 인사 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경찰개혁위는 이것을 하지 못하고 임무를 종료했습니다. 매우 애석한 일이었습니다. 인사개혁을 하자고 하면, 경찰이 개혁이란 것을 이용해 자신들 자리나 만들려고 한다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아, 개혁과제에서 뺏던 게 이유였습니다. 그러나 더는 늦어서는 안 됩니다. 대통령의 관심과 분발을 촉구합니다.(2018. 11. 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