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26

실천 문학가 임헌영의 <문학의 길 역사의 광장>을 읽고

“제가 가장 선망하는 빅토르 위고는 ‘진보’를 "인류의 집단적 걸음걸이" 이자 "국민들의 영원한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이념의 시대가 갔다고 우려도 인류는 영원히 진보합니다. 그건 진리입니다. 진보야말로 인류의 영원한 미래이며 희망입니다.”(책 서문 8쪽) 방금 전 을 다 읽었다. 몇 달 전 나온 문학가 임헌영의 일대기를 그와 한양대 유성호 교수가 대담한 책이다. 700쪽의 두툼한 볼륨이다. 십여 년 전 리영희 선생의 일대기를 선생과 임헌영이 대담한 책이 라는 이름으로 나왔는데, 이 책은 그 책과 견줄 수 있는 책이다. 는 주로 리영희 선생의 쓴 책을 중심으로 선생의 생각을 듣는 것이었다면, 이 책은 문학가인 임헌영이 말하는 당대의 문학과 정치 그리고 역사 이야기다. 그의 가족사, 민족사, 세계사..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

며칠 동안 짬을 내 소설 한권을 읽었다. 미국 작가 메리 앤 섀퍼의 . 지난 주 넷플릭스에서 본 동명의 영화를 보고 나서, 그 감동이 가시기 전에 책을 주문해 읽었던 것이다. 메리 앤 섀퍼는 사실 무명 작가다. 2008년 74세의 일기로 삶을 마감했지만, 그가 세상 사람들로부터 작가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거의 없다. 그녀는 웨스트버지니아의 소도시에서 평생을 살면서 사서와 서점 직원으로 일한 지극히 평범한 여성이다. 다만 그녀는 다정다감한 가족들과 형제들에 의해 둘러쌓여 항상 이야기 꽃을 피우는 환경에서 살았다. 그녀는 가족과 형제들에겐 아라비안 나이트의 세라자드와 같은 이야기꾼이었다. 평생 책을 끼고 살았던 그녀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었다면, 그것은 누구나 출판하고 싶은 소설 한 권을 쓰는 것이었다. 그..

로맹가리의 <새벽의 약속>

즐거운 고통, 읽기작년 초 공직에 임명되고 나서부터는 책다운 책을 진득하게 읽기 어렵다. 몸도 마음도 바쁘니 한 자리에 몇 시간씩 며칠을 보내면서 책을 읽기가 여간 부담스럽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가 있다면 몸과 마음이 조금 지쳤다는 거다.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수백 쪽의 안건 보고서를 읽고 오면 집에선 당최 문자로 써진 어떤 것도 보기 싫다. 그저 머리 식힐 겸 영화나 보는 게 그나마 낙이다. 그 덕에 지난 한 해 수년 치 볼 영화를 한꺼번에 보았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지난 며칠 간 열심히 읽은 책이 있다. 로맹가리의 (심민화 옮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동명의 영화를 보고 진한 감동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예사롭지 않은 모자지간의 사랑이 한 문호의 삶을 지배했다는 것을 알게 되자 바로 책을..

고통의 땅에 사는 나의 형제자매여! <연을 쫓는 아이>

문학으로 알린 아프카니스탄의 아픈 역사 이 소설을 읽은 것은 정말 뜻밖의 일이었다. 코로나 사태로 미국 유학에서 일시 귀국한 둘째 딸이 집안에 널려 있는 책을 정리하던 중, 집사람이 이 책을 발견하고 읽은 다음, 내게 한 번 읽어볼 것을 권유한 것이다. 맨날 딱딱한 책이나 읽고 있는 남편이 딱했던 모양이다. 무슨 소설이든 처음부터 흥미진진할 수는 없는 법, 얼마간 무료한 시간을 보냈지만, 의외로 빨리 삼매경에 빠졌다. 일요일 하루 종일 서재를 떠나지 않고 이 책을 읽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책에 밑줄을 치기 시작했고, 또 언제부터인지 흐르는 눈물을 연신 닦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나를 사로잡은 소설 (The Kite Runner, 이 책은 두 번역자에 의해 국내에 번역되었다. 나는 2005년 이미선이 번역한..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 사람들 -소설 <아버지의 새벽>을 읽고-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 사람들-소설 을 읽고- 내가 살아 온 지날 시절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10여년 후에 태어난 나는 이제 50대 후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죽은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공산주의에 적개심을 불태웠다. 고등학교 시절 10.26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학교에 가니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휴교라서 즐거워했지만, 나는 국부가 서거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국군장교로 임관한 1987년 이후였다. 나는 대학시절 고시공부만 했기 때문에, 매년 5월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광주의 진상을 밝히라고 데모를 하는데도, 큰 관심을 두지 못하고 학창생활을 보..

비련의 여인 난주 -소설 <난주>를 읽고-

비련의 여인 난주 -소설 를 읽고- 정난주.... 마지막 장을 넘기고 나서 한동안 눈을 감았다. 그녀의 신산한 삶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종교, 신앙, 순교, 사랑, 배신, 연민, 이별, 고통.... 인간이 사는 동안 닥치는 온갖 형태의 희로애락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며칠 전 존경하는 김승환 전북교육감께서 바쁜 공무 중에도 올린 북 리뷰에 감동받고 바로 그 책을 구입했다. 김소연 작가의 제6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 작년 11월 초판이 인쇄되었으니 출판된 지 불과 2달이 안 된 책이다. 이 소설은 정난주라는 한 여인의 신산하면서도 성스런 삶을 그린 이야기다. 정난주.... 아마 일부 천주교 신자나 알까 대부분 사람들은 알지 못하는 이름일 것이다. 정난주 마리아. 그녀는 이제 이 소설로 드..

나를 또 울린 소설 <무국적자>

나를 또 울린 소설 곰곰이 생각해 본다. 나는 원래 눈물이 많은 사람인가? 그렇지 않고서야 책을 읽으면서 왜 이렇게 눈물이 쏟아지는가. 나이를 먹어가면서 나의 감정선이 무너진 것은 아닌가. 내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해보지만 나오는 것은 또 눈물이다. 구소은의 를 읽으면서 한없이 울었던 내가, 일주일도 안 돼 또 다시, 그의 글을 읽으며 서글피 울었다. . 독서의 여운이 길다. 새벽녘 마지막 장을 넘긴 뒤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등장인물 한 사람 한 사람이 떠오른다. 그 어느 사람도 이 시대의 영웅은 아니다. 어쩌면 (소설에서 말하듯)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의 삶이 내 가슴속으로 들어와 내 마음을 후빈다. 나도 그들처럼 이방인이요, 무국적자일지 모르기 때문이다. 줄거리이 ..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검은 모래>-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 2013년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나를 울린 오랜만에 많이 울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일이 일어다다니... 영화를 볼 때는 자주 눈물을 흘리지만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소리 내 울은 적은 기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 책을 주문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곧잘 읽는 일간지 서평란에서 발견한 책도 아니고 믿을 만한 독서가의 추천을 받은 책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무명작가(?)의 SNS 글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가의 첫 작품이란 어떤 수준일까, 나도 만일 훗날 소설을 쓴다면 그 정도 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을 ..

레 미제라블과 무상교육

레 미제라블과 무상교육 에 많은 페친들이 관심을 보이는 것에서 힘을 얻어 한 가지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그것은 빅토르 위고가 이 책을 쓰면서 유난히도 무상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점이다. 빅토르 위고가 레 미제라블을 쓸 당시 프랑스 나아가 유럽은 어떤 상황이었는가. 산업혁명의 여파로 사회의 부는 양극화되었고, 왕정체제와 신분제는 여전히 힘을 떨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평등을 주장하는 공산주의자의 출현은 역사의 순리이었다. 하지만 위고는 공산주의에는 명확히 반대했다. 그는 공산주의의 속성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었다. 그에겐 공산주의는 경쟁을 소멸시키고 부를 죽이는 이념이었다. “공산주의와 토지 균등법은 둘째 문제(분배)를 해결한다고 믿는다. 그것들은 잘못 생각하고 있다. 그것들의 분배는 생산을 죽..

"방황하고, 태만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방황하고, 태만하고, 죄를 지을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른 사람이 돼라." 알브레이트 뒤러 성탄절입니다. 사위가 조용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늦잠을 자도 될 것 같습니다. 푹 쉬기 바랍니다. .저도 조금 더 자고 싶지만 일찍 깨고 말았습니다. 나이 먹어가면서 초저녁 잠은 많은데, 새벽 잠이 없습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요. 적응하면서 살뿐입니다. 조용히 일어나 묵상을 한 다음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책 한 권을 꺼냈습니다. 몇 년 전 완독한 레 미제라블. .빅토르 위고의 이 위대한 소설을 들척이며 밑줄쳐 놓았던 부분을 읽습니다. .제가 이 책을 읽은 것은 그 내용을 알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위고 나이 60이 되어 인생의 단맛과 쓴맛을 다 경험하고 쓴 이 책에서, 삶이란? 인간이란? 죄란?... 이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