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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버릇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8. 4. 12. 11:04

독서하는 버릇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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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처음으로 대중서를 출판했다. 책에 관한 책이었다.

 

품격 있는 인생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독서를 하십시오. 그것 없이는 어떤 품격도 불가능합니다. 그것 없이는 어떤 것도 사상누각입니다. 이 자명한 사실에 어느 누가 토를 달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독서를 제대로 하면서 사는 이는 대단히 적습니다. 독서는 고통이 따르는 것이기에 그것을 즐긴다는 것은 더욱 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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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은 다른 즐거움과 달리 일정한 훈련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은 영원히 이 즐거움을 맛보지 못합니다.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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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의 즐거움을 알려면 어린 시절부터 버릇을 들여야 합니다. 많은 분들에게 혹시 상처가 될 말일지 모르지만, 자식의 공부 버릇, 독서 버릇은 부모의 책임이 큽니다. 자식으로서는 부모를 잘 만나야 한다는 말입니다. 돈 많은 부모를 만나기보다 독서의 중요성을 아는 부모, 독서의 즐거움을 아는 부모를 만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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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론>을 쓴 존 스튜어트 밀을 알 것입니다. 제가 무척이나 존경하는 인물입니다. 그런데 이런 세기의 석학이 탄생하는 데는 그의 아버지 제임스 밀이 있었기에 가능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그 바쁜 저술 작업 중에도 자식의 교육을 도맡아 학교에도 보내지 않고 스스로 영재교육을 시켰고, 그로 말미암아 후일 아버지를 능가하는 대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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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아는 공리주의 철학가 제러미 밴담, 경제학자 리카도 등이 존 스튜어트 밀이 어린 시절 아버지를 통해 무시로 만난 인물들입니다. 정말 아버지를 잘 만난 케이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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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인물이 생각납니다. 국내외적으로 저명한 이론물리학자 장회익 선생입니다. 이 분은 서울대 물리학과 교수로 정년퇴직을 하신 분인데 자타가 공인하는 공부광입니다. 본인은 그런 자신을 공부도둑이라 부릅니다. 물리학 교수님이 동서양의 철학을 꽤 뚫고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수준이 최고봉에 이른 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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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분이 몇 년 전 자신의 자서전 격의 책을 한 권 냈는데 <공부의 즐거움>이라는 책입니다. 그는 이 책을 통해 어떻게 공부의 즐거움을 갖게 되었는지 자신의 과거를 잔잔하게 회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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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회익 선생은 결코 부잣집 도련님이 아니었습니다. 교육에 관심 없는 조부님 탓에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런데도 이 분은 어린 시절부터 끊임없는 호기심과 그것을 채우려는 앎에 대한 욕구가 누구보다 강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는 그 이유 중 하나를 책 읽는 부모님에게로 돌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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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부모님은 비록 고등교육을 받지는 못한 분들이었지만 언제나 책을 읽는 분들이었다고 합니다. 그 틈에서 물리학자이자 공부도독 장회익이 탄생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모가 된 자로서 자식에게 돈을 물려줄 수 없다면 이런 것이라도 물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그것이 자식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유산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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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책 읽지 않는 부모를 만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무 서글프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제가 바로 그런 처지에서 자란 사람이니까요. 저의 부모님을 욕되게 하는 것 같아 죄송하지만 그래도 이야기해야겠습니다. 저는 어릴 때 부모님으로부터 책을 읽어야 한다느니, 책에서 지혜를 찾을 수 있다느니 하는 말씀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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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안에 읽어볼 만한 책을 구경 한 번 못해본 채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 시절, 아니 중학교 이후에도 집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는 교과서 이외의 책을 제대로 읽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지금 대학교수가 되었습니다. 그것도 누구보다 독서를 중시하는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해보아도 기적 같은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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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환경을 딛고 독서에 매진한 사람입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요. 곰곰이 생각하면 환경은 사람이 가지고 있는 본능을 자극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요소는 아닙니다. 특히 지식을 추구하는 것은 환경도 좋아야 하지만 본인의 의지가 더욱 중요합니다. 지식 추구의 의지가 강한 사람이 좋은 환경을 만났다면 한마디로 금상첨화겠지만 어찌 세상에 그런 사람이 많을 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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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이 좋으면 의지가 약하고, 의지가 강하면 환경이 좋지 않은 법입니다. 이것이 인생사입니다. 그러니 어린 시절의 공부 환경, 독서 환경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도 결코 실망하지 맙시다. 자신의 의지만 있다면 환경을 충분히 극복하고 언젠가는 독서의 즐거움을 마음껏 맛볼 수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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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누구보다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모르는 것이 나오면 그것을 알지 않고서는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제 스스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때가 오니 자연스럽게 독서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린 시절 하지 못한 것을 보상이라도 하듯이 더욱 열심히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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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시절은 고시 공부 때문에 다양한 독서를 하기는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기간이 지나고부터 독서에 탄력이 붙었습니다. 아마도 제가 가장 열심히 독서를 한 것은 군대에 있었을 때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3년간 정훈장교로 근무를 했는데 주 임무가 장교와 사병에게 이념교육을 시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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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후반 우리나라 정치가 한참 어려웠을 때 이 직책은 고역이었다. 하지만 전화위복인지 그 시절 저는 대학시절 읽지 못한 온갖 이념서적을 읽었습니다. 불온서적이라는 것도 이념교육 장교라는 덕분에 제한 없이 읽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저는 대한민국 군대에 큰 혜택을 입은 사람입니다. 여한 없이 독서를 할 수 있게 해주었고, 그것이 어쩌면 제가 오늘 이 같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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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0년간 전문영역에서 일을 하다 보니 사람들의 지적 정도를 판단하는 일에 능하게 되었습니다. 제 경험으로 지적으로 가장 닮고 싶은 사람은 전문영역의 전문가이면서도 교양이 풍부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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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상에, 전문가는 웬만하면 될 수 있지만, 여기에 교양까지 풍부한 사람은 대단히 드뭅니다. 그러나 지적인 즐거움을 큰 즐거움으로 아는 사람이라면, 그것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관으로 삼는 사람이라면, 무릇 그런 정도의 포부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세상 사람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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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영역에 종사하면서 독서의 즐거움을 갖고 사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가능합니다. 독서하는 버릇만 키울 수 있다면 말입니다. 제일 중요한 것이 몸에 밴 습관입니다. 독서하는 습관이 몸에 배면 의외로 시간은 많습니다. 출퇴근 전철 내에서, 용변 보는 화장실 내에서도 독서는 가능합니다(물론 의사들은 화장실에서 독서하는 것은 좋지 못한 용변 습관이라 할 것이라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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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문제는 독서하는 버릇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갖기 위해서는 의문을 품어야 합니다. 그것을 품고 그것을 푸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껴야 합니다. 그게 바로 제가 지난 30년 간 터득한 독서의 비법이고 즐거움의 원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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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친 여러분, 부디 좋은 독서 버릇을 키우십시오. 그리하여 아침저녁 붐비는 전철 내 이곳저곳에서, 조그만 문고판 책을 열심히 읽는 대한민국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는, 그 날을 고대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