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검은 모래>-

박찬운 교수 2018. 12. 18. 07:00

소설이란 무엇인가
-나를 울린 <검은 모래>-

 

2013년 제1회 제주 4.3평화문학상 수상작

나를 울린 <검은 모래>
오랜만에 많이 울었다. 책을 읽으면서 이런 일이 일어다다니... 영화를 볼 때는 자주 눈물을 흘리지만 책을 읽을 때 이렇게 소리 내 울은 적은 기억이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흔치 않은 경험이다.

솔직히 말해 이 소설 책을 주문할 때 이런 일이 일어날 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내가 곧잘 읽는 일간지 서평란에서 발견한 책도 아니고 믿을 만한 독서가의 추천을 받은 책도 아니었다. 그저 우연히 알게 된 무명작가(?)의 SNS 글을 보면서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소설가의 첫 작품이란 어떤 수준일까, 나도 만일 훗날 소설을 쓴다면 그 정도 필력을 발휘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있었을 뿐이다.

저자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매우 오만한 독자임에 틀림없다.
아무런 정보 없이 구매한 구소은의 <검은 모래> 마지막 장을 덮자마자 눈물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이것이 바로 이 글을 쓰는 이유다. 한시라도 지체없이 이 소설과 작가에 대해 경의를 표시하고 싶다. 소설은 내 눈에 들어온 것, 내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가감 없이 정리할 것을 독촉한다.

<검은 모래>가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 위해선 우리 현대사에 대한 최소한의 이해가 필요하다. 일제 강점기 제주 사람들이 어떤 고통 속에서 살았고, 그들이 섬을 탈출해 일본으로 갈 수 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면, 공감의 눈물이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재일 조선인들이 일제 강점기와 해방 이후 어떤 삶을 강요받았는지를 안다면 그 연민의 정에 밤잠을 이룰 수 없을 것이다.

거기에다 이 소설 등장인물 중 누구든 간에 내 감정을 이입할 사람을 찾아 본다면 상황은 더 달라질 것이다. 그 사람이 구월이어도 좋다, 또는 해금이나 미유가 되어도 좋다, 그렇다면 이 소설은 단순한 픽션을 넘어, 내 가족이 한 세기 동안 격동의 세월을 보내고 살아남아, 후손과 우리 모두에게 전하는 눈물의 이야기가 될 것이다.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이란 무엇인가? 단순히 허구의 극적 사실을 소설적 기법(발단-전개-위기-절정-결말)으로 엮어 놓은 산문에 불과한가. 내게 묻는 다면 이렇게 답할 것이다.

그것은 예술이다. 예술 중에서도 종합예술이다. 일정한 기법으로 써진 산문이지만, 인간의 희노애락이란 감정과 모든 지성이 종과 횡으로 직조되어 아름다움을 발산하는 예술품이다.“

이것을 쓰는 작가는 기본적으로 인간과 사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며, 하나의 적확한 문장을 위해 몇 날 며칠 불면의 밤을 새울 줄 아는 끈기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검은 모래>는 내가 정의한 대로 예술이며, 영롱하게 빛나는 예술품이다. 이 속엔 등장인물의 희노애락과 인간의 지식과 지혜가 매우 정교하게 짜여 져 있다. 이야기의 줄거리야 단 몇 줄로 줄일 수 있지만, 그 뼈대에 얼마나 튼실한 살을 입히고, 핏줄에 붉디 붉은 피를 흐르게 하느냐는 전적으로 작가의 능력인바, 무명작가 구소은은 혼신의 힘을 발휘해 이 모든 것을 완벽하게 성공시켰다.

 

이 소설의 주된 배경이 된 미야케지마(지도 맨 아래), 동경만에서 남쪽으로 (요즘) 배로 가면 6-7시간이 걸린다. 소설 속 해금의 어머니 구월은 이곳에 정착해서 고된 물질로 가족을 먹여 살린다.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옆에 구글 지도를 펴놓았다. 해금 가족이 어떻게 일본에서 살았는지 내 머릿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실감하기 위함이었다.

<검은 모래> 이야기 줄거리
이 소설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이주한 제주 해녀 가족 4대가 겪는 격동의 세월 이야기다. 우도 검은 모래를 배경으로 물질을 하는 해녀의 딸 구월은 제주 본도(구좌리) 사람 박상지를 만나 결혼한다. 가난하지만 금슬 좋게 살던 이 부부와 어린 자식들은, 고통스런 삶의 현장 제주를 떠나 희망의 땅 일본을 향해, 연락선 기미가요마루에 올라탄다. 이들 가족이 일본에서 터잡은 곳은 도쿄에서 배를 타고 36시간이나 걸리는 도쿄만 남쪽의 작은 섬 미야케지마. 구월은 이곳에서 해녀로서 발군의 실력을 보이며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불행은 예약된 것. 남편 박상지는 일본과 제주를 오가며 해녀를 인솔하며 돈을 벌던 중, 어느 날 집을 나간 뒤 감감 무소식. 알고 보니 고향 제주에 갔다가 징용으로 끌려가 나카사키 공장에서 일하다가 미군의 원폭투하로 비운의 생을 마감한다. 구월은 날마다 뜬 눈으로 지새우며 남편을 기다리며 아이들을 키우지만 끝내 바다 속으로 사라진다.

이제 그녀의 딸, 이 소설의 진정한 주인공인 해금이 나설 때다. 해금은 동생 기영을 돌보다가 함경도 청년 한태주를 만나 짧지만 가슴 설레는 사랑을 한다. 역사가 그들을 그냥 놓아두지 않는 것은 기정사실. 한국 전쟁이 나면서 태주는 인민군 의용군으로 참전하고 끝내 전사한다.

모두가 험하게 떠났다. 박상지는 원폭으로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었고, 구월은 바다에서 넋을 빼앗겼으며, 한태주마저 한국전쟁으로 귀한 목숨을 소각해버렸다.“(221-222)

행인지 불행인지 처음이자 마지막 두 연인이 살을 섞었던 사랑의 흔적이 세상에 나온다. 유복자 건일. 동생 기영은 조총련 소속으로 민족정신을 잃지 않고 살아가지만 차별과 냉대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가 택한 것은 북송선... 그러나 그마저도 조국에 들어간 뒤 숙청의 피바람을 피하지 못하고 스러져간다.

해금은 꿋꿋하게 조선 해녀들이 사는 미야케지마를 지키며 살지만 활화산 오야마산은 거대한 분화와 함께 용암을 흘러내 섬 곳곳을 초토화시킨다. 그녀가 피붙이 건일과 살 방법은 일본인과 결혼하는 것, 드디어 함께 물질하는 일본인 남성 마츠카와 후쿠오와 결혼하고 건일은 마츠카와 켄이란 일본인으로 살아간다.

켄은 공부를 잘해, 미국 유학을 떠나 예쁜 일본 여인 메구미와 결혼하고, 귀국 후 대학교수가 되어 보란 듯 산다. 이 부부 사이에서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 미유가 탄생한다. 켄에게 있어 고민거리는 자신의 뿌리가 알려지는 것, 그래서 해금이 미유에게 가족사를 말하지 않길 바란다. 미유 만큼은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게 하고 싶기 때문이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후손이지만 자신을 쿼터로 알고 자라온 미유는 어느 날 자신이 하프임을 알게 된다.

미유에겐 사랑하는 남자 애인 히로타 지로가 있다. 누가 보더라도 어울리는 한 쌍. 한일 월드컵으로 일본열도가 열광의 도가니일 때 미유는 한국을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지로에게 자신이 쿼터가 아닌 하프임을 고백한다. 일본 우익의 자손 지로가 어떤 반응을 보일까? ... 둘은 이별을 고한다. 그렇지만 미유는 할머니 해금과의 뗄 수 없는 유대를 느끼고 해금이 사망하자 미야케지마로 들어가 해금의 유산을 이어받는다.

탄탄한 구성, 디테일 강한 묘사
작가가 선택한 소설적 기법도 매우 참신하다. 소설의 주인공 해금이 겪었던 이야기와 손녀 미유가 경험하는 오늘의 이야기가 한 장씩 교차되면서 스토리는 전개된다. 60년 전 해금이 일본에 도착해 어떤 삶을 살았는지... 60년 후 손녀 미유는 일본 사회에서 어떤 삶을 살아가는지...소설은 프롤로그에서 에필로그까지 매우 정교하게 구성됨으로써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독자의 눈물샘을 자극한다.

작가는 (소설이) 독자를 감동시키기 위해선 탄탄한 스토리만으론 부족하다는 것을 놀라운 필력으로 증명한다. 스토리가 아무리 좋아도 디테일이 부족하면 결코 독자는 만족할 수 없다. 이 소설이 얼마나 디테일에서 강한지 읽으면서 표시해 둔 몇 군데를 옮겨본다.

해금은 동생 기영의 선생님인 태주를 만나 난생처음 우에노 공원으로 놀러간다. 거기에서 처음으로 태주는 해금의 팔을 잡는다. 이런 장면이다.

한태주가 잡았던 해금의 팔에 그의 지문이 고스란히 남아 있을 것이었다. 그 지문이 살을 파고들어가 해금의 심장에 무수한 타원형의 무늬를 새기기 시작했다. 살아 있는 동안 지워지지 않을 문신처럼,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심장이 쿵쾅거릴 이유가 없었다.”(168)

 

한국 전쟁이 터지자 이런 말이 나온다. 비록 관용구를 빌려온 것이지만 당시 상황을 짧은 언어로 전달하기엔 이보다 적확한 말이 없을 것이다.

칠년대한에 비 안 오는 날이 없었고 구 년 장마에 볕 안 드는 날이 없었다, 했거늘 어찌된 놈의 나라에는 파란 멎는 날이 없는가“(181)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의 정점에서 나는 잠시 망연자실해진다. 태주는 전쟁터로 나간다. 그는 정표로 해금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어준다. 밤이 되었다. 해금은 사랑하는 태주를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 두 남녀의 인생에서 가장 로맨틱하고 기억남을 시간이다. 그러나 작가의 표현은 의외로 절제되어 있다. 이런 첫날밤 표현은 보기 드물다. 좀 길지만 그 부분을 이곳에 옮긴다.

하염없이 반지만 쳐다보던 해금은 얌전히 일어나 이부자리를 깔았다. 그녀는 한태주에게 줄 아무런 정표도 마련하지 않았지만 백년해로 언약한 사람에게 줄 소중한 것이 딱 하나 있음을 깨달았다. 그것으로 그녀를 남김없이 태울 것이었다. 해금과 한태주는 서로에게 깊이 스며들었다. 보이지 않는 회로를 타고 두 사람의 유전자가 뒤섞이는 동안 해금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위는 쥐죽은 듯 고요하여 방안을 떠도는 그들의 불규칙한 숨소리만이 정적을 방해했지만, 그 소리도 해금은 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이미 한태주로 가득 채워졌으며, 또한 티끌 하나 남지 않게 태우고 또 태웠다. 그 어떤 미세한 입자도 끼어들 틈이 없었다.
충만은 곧 소각이었고, 소각은 새로운 시작이었다. 다만 그들에게 주어진 밤이 너무나 짧은 것이 아팠다.“(184)

해금의 남편 마츠카와 후쿠오는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의 혈육은 아니지만 켄(건일)을 충심을 다해 키웠다. 하지만 해금의 마음 속엔 여전히 태주가 있었다. 그녀에게 후쿠오는 이런 사람이었다. 후쿠오의 무덤 앞에서 해금은 이렇게 추억한다.

추억하는 것들이 반드시 그리운 것은 아니다. 추억에 애정이 담겨 있어야 그리움인 것이다. 그 그리움에 절절한 마음이 담겨 있어야 사무치는 그리움인 것이다. 남편에게 느꼈던 정은 서로에게 익숙해진 대가로 얻어낸 편안함과 친근함 그리고 연민이었다. 서로에게 친구 같은 존재였다. 그 관계가 해금은 좋았다.“(288)

프롤로그에서 해금은 죽음을 맞이했고 에필로그에서 미유 가족이 해금의 유품을 정리한다. 그런 중 이런 대목이 나온다. 해금이 평생 동안 남모르게 애지중지했던 물건.... 바로 그것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이 대목을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켄은 서랍장 깊은 곳에서 작은 색동주머니를 발견했다. 그 속에서 빛을 잃은 누런 금반지를 꺼내들고 한동안 쳐다보다가 오열을 하고 말았다. 친부 한태주가 남기고 간 유일한 정표이자 유품임을 알아차렸던 까닭이리라.“(에필로그)

정리를 끝내며
이제 글을 끝낼 때다. 소설이란 묘한 것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티브이에 나오는 제주나 일본은 내겐 관심 밖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렇지 않다. 제주와 일본은 이제 특별한 공간이 되었다. 제주 그중에서도 우도엘 가면 검은 모래를 찾을 것이다. 구월과 해금이 물질을 하던 곳을 찾아 헤맬 것이다.

도쿄 우에노 공원에 갈 때는 해금과 태주가 앉았을 벤치를 찾을 것이다. 거기에서 태주가 해금과 기영에게 사준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사먹을 것이다. 혹시나 미야케지마를 간다면 검은 모래 사장에서 구월을 그리워 할 것이며, 해금과 미유의 흔적이 있는 아리수 카페를 찾아 미유가 좋아하는 카페라테를 주문할 것이다.

소설은 이렇게 내가 매일같이 보고 먹고 마시는 것, 그 무심했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했다. 소설은 이런 것이다. 건조한 내 마음에 어느새 단비가 내리고 두 눈에선 뜨거운 눈물이 흐른다. 소설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작가의 고뇌가 없었다면 어찌 그것이 가능할 것인가. <검은 모래>와 그것을 탄생시킨 작가 구소은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2018. 12. 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