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어느 애송이 변호사의 비애

박찬운 교수 2019. 11. 29. 08:56

1990년 12월 13일 법률신문 기고문

다음 달 초 변협이 주최하는 전관예우 근절을 위한 토론회를 준비하면서 옛날 앨범을 꺼내 보았다. 30여 년 전 변호사 초년 시절 글이 보관되어 있었다. 1990년 12월 13일 법률신문에 기고한 글인데, 제목이 아련한 기억을 되살려 낸다. ‘애송이 변호사의 비애‘. 내가 이번 토론회에 나가면 이 말부터 해야겠다.

“... 어느 지방법원에서 있었다고 하던데, 연수원을 나와 바로 개업한 젊은 변호사가 형사사건을 수임하여 보석청구를 하였다 한다. 며칠 후 결과가 나왔는데 보기 좋게 ‘보석기각’ 그런데 이 사건이 현직에서 갓 나온 어느 소위 힘 있는 변호사에 의해 다시 보석 청구되었다고 한다. 며칠 후의 결과는 ‘보석허가’. 참으로 이러한 사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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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사람들이 변호사에게 깡통 찬 소크라테스를 요구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뭇 사람들의 기대는 그저 변호사를 이 사회의 공기(公器)로서 적당한 정도의 역할만을 담당해 주길 바라는 소박한 꿈일 뿐이다. 어쩌면 우리가 국민의 이 같은 기대수준에 적절히 부응하지 못한다면 법률가로서의 품위와 명예는 언제든지 회수될지도 모를 일이다,

솔직히 이야기해서 우리 법률가에게 주어진 품위와 명예가 어디 우리가 별나게 잘나고 훌륭해서 비롯된 것인가. 뭇사람들이 그렇게 만들어준 것이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던가. 무엇 때문일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 인권의 수호라는 법치국가의 중차대한 사명을 우리와 같은 법률가들에게 맡기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글을 쓴지 30년. 오늘 대한민국의 법조 현실은 어떤가. 30년간 조금이라도 변한 게 있는가. 그간 법률가의 수는 기하급수로 늘었다. 사법시험 1천명 시대를 거쳐, 로스쿨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전국에서 2만 5천 명 변호사가 활동 중이다. 30년 전과 비교하면 10배 이상 급증이다. 법조계의 펀더멘탈이 바뀐 것이다. 그럼에도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은 전관예우라는 부끄러운 법조문화다. 지구상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범죄적 법조문화, 바로 그것에서 우리는 여전히 해방되지 못하고 부질없는(?) 대책 토론회를 열고 있는 것이다.

30년 전 말했다시피 법률가의 품위나 명예는 고유한 권리가 아니다. 시민에 대한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회수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법률가들이 많아지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져야지, 날이 가면 갈수록 법률가들에 대한 비난이 거세지니, 어찌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있을까. 빛바랜 옛날 자료를 보면서 한 숨만 나오는 아침이다.(2019. 11.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