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티벳여행기

티벳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청장열차(티벳여행기8-최종회)

박찬운 교수 2019. 7. 13. 10:11

 

라사역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청장열차 

이제 티벳여행기를 끝낼 때다. 대미를 장식할 이야기는 청장열차다. 기차를 타고 라사에서 시안까지 34시간, 2800킬로미터를 여행하는 것이 이번 티벳 여행의 하이라이트 중 하나다. 청장열차는 이 구간 중 라사에서 청해성 시닝까지 가는 열차를 말한다. 청장(靑藏)의 청은 청해성(靑海城)의 청을, 장은 서장(西藏)의 장에서 나온 말이다. 우리 일행은 청장열차를 타고 라사를 출발 22시간을 달린 다음, 시닝에서 일반열차로 갈아타 12시간을 더 달려 시안에 도착했다.

청장열차 내부 모습. 복도(위), 식당칸(중간), 침대칸(아래). 나는 4인실 침대칸을 이용했는데 그런대로 잠은 잘 수 있었다.

 

청장열차는 2007년 개통했다. 이 열차 개통으로 티벳과 내지 중국은 본격적으로 인적 물적 교류가 가능하게 되었다. 이 열차는 중국이 금세기 세계에 보여준 중국굴기의 대표적 사례다. 이 철도는 그냥 철도가 아니다. 티벳 중앙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탕그라 산맥을 넘어가는 철도로 고도 4-5천을 달린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악지대를 달리는 기차로 그 부설에 중국의 첨단기술이 결합되었다. 선로가 놓인 땅은 동토이기 때문에(라사에서 거얼무까지 약 550킬로미터 구간) 그냥 선로를 놓아서는 얼마 못가 선로침하로 이어져 대형사고를 유발할 수 있다. 청장열차는 그것을 고려해 만들어진 건설의 걸작품이다.(이것을 막기 위해 지하에 파이프를 깔아 냉매를 공급해 동토를 계속 유지한다고 한다.)

열차가 5천을 넘어갈 때는 어쩔 수 없이 산소호흡기 신세를 지지 않으면 안 되었다.

라사에서 떠난 청장열차는 서서히 탕그라 산맥을 넘는다. 티벳인들이라면 필요 없겠지만 내지인이나 외국인에게 4-5천 고도를 20시간 이상 달린다는 것은 보통의 일이 아니다. 기차 내부는 특수열차답게 기압을 적절하게 유지한다고 하지만 정거장에 설 때면 외부 기압과 같아지므로 고산증이 있는 사람들에겐 여간 고역이 아니다. 침실 머리맡에 있는 산소공급기는 그런 사람을 위해 연신 산소를 뿜어내고 있다.

청장열차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티벳 고원.

그럼에도 우리가 이 열차를 한 번은 타봐야 하는 것은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티벳고원을 한 없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초원은 끝이 없다. 저 멀리 탕그라 산맥의 설산고봉이 달리는 철마를 바라보고 있다. 초원에 움직이는 물체가 있다. 검은 것과 흰 것... 자세히 보니 양과 야크 떼들이 유유히 초원을 거닐며 풀을 뜯고 있다. 한참을 가다보면 호수가 여기저기에서 나타난다. 해발고도 5천미터의 고원에 이렇게 많은 호수가 있다니... 청해성에 들어서면 중국의 최대 호수 청해호가 나타난다. 기차는 호수 바로 옆을 통과한다. 이게 호수인지 바다인지 순간적으로 구분하기 힘들다.

시닝에서 시안으로 가는 열차에서 본 황하. 이곳이 황하 상류다. 이 물줄기가 흘러 가면 우리가 아는 그 황하의 물줄기가 된다.

중국정부가 이 열차를 개통시킨 이유는 분명하다. 티벳의 본격적인 중국화다. 과거 티벳을 가기 위해선 사실상 비행기밖에 없었다. 소수의 사람들이 티벳을 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 열차의 개통으로 내지의 셀 수 없는 한족들이 티벳을 들락날락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열차로 말미암아 본격적인 티벳의 한족화가 시작된 것이다. 청장열차와 함께 티벳 내부에선 라사에서 네팔 카투만두까지 가는 우정공로를 고속화하기 위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앞으로 라사에서 차로 몇 시간이면 네팔, 인도로 들어갈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될 때 티벳은 본질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게 그들의 운명에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속단할 수 없지만.

34시간이 지나서야 열차에서 내렸다. 시안의 밤거리는 화려하기만 했다.

아무리 좋은 경치를 보면서 기차를 탄다고 해도 34시간이나 기차를 탄다는 것은 보통의 인내로는 참기 힘든 고역이다. 잠을 한참 자고 나도 시간은 많이 흐르지 않는다. 그러니 청장열차를 타기 위해서는 느긋함이 있어야 한다. 시간에 쫓기지 말고 그 시간을 스스로 즐길 줄 알아야 한다. 생면부지의 여행객들과 한 침실을 사용하는 것을 흥미 있는 도전이라 생각하며 그들과 다양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우리가 언제 30시간 이상의 기차를 타보겠는가. 이런 지루함은 여러 번은 어렵겠지만 한 번은 경험할 만하다.

이것으로 티벳여행기를 마친다. 제 기억을 정리하는 데 동참하신 친구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최종회/2019. 7.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