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기타

대한민국 결혼식 이대로는 안 된다

박찬운 교수 2017. 10. 23. 14:04

대한민국 결혼식 이대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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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 자녀들이 몇 년 전부터 결혼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이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아이들 결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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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결혼의 계절인 모양이다. 매 주말마다 결혼식 찾아다니느라 시간을 다 보낸다. 월급쟁이라 봉투 속에 넣어야 하는 축의금도 만만치 않아 고민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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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결혼식에 가면 우울할 때가 많다. 그 많은 하객 수에 놀라고 그 호화스러움에 주눅이 든다. 우리 집 아이들은 도대체 어떻게 결혼을 할지 겁부터 난다. 지금 같아서는 결혼식을 치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한민국 결혼식은 낭만도 즐거움도 찾을 수 없는 그저 허례허식의 의식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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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우리 결혼식은 결혼하는 당사자의 잔치가 아니라 부모의 잔치다. 사회적으로 이렇다 하는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자녀 결혼식을 마치 자신의 인생 성적표를 받는 자리로 이해한다. 사회적 지위에 맞게 자식 결혼식에 올 하객의 면면과 수를 예상하고 그에 맞는 장소를 찾는다. 하객은 식장에 가서 결혼할 신랑 신부에게 축하의 말을 전하기보다는 그 부모에게 인사하는 게 중요하고 사실 그게 전부다. 이런 결혼식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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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식 속에서 결혼식이 치러지니 어처구니없는 돈이 허공 속으로 사라진다. 특급호텔의 식장 사용료, 음식값, 꽃값, 사진 값 등등... 좀 산다는 사람들 결혼식장 비용은 상상을 초월한다. 억 단위다! 그렇지 못한 사람도 수 천만 원은 그냥 깨진다. 그러니 그런 집 하객으로 갈 때는 봉투에 10만원 넣어가기도 민망하다. 이런 결혼식을 과연 언제까지 쫓아다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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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결혼하는 자녀들의 인생도 딱하긴 마찬가지다. 자기가 결혼하면서도 모든 것을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하고, 신접살림 일체를 부모에게 신세 짓는 이런 젊은 친구들을 볼 때면, 한편으론 안쓰럽고, 또 한편으론 화도 난다. 내가 보기엔 이들은 애당초 결혼할 자격을 갖추지 못한 것이다. 자고로 결혼은 부모를 떠나 독립하는 것 아닌가. 독립의 기초도 갖추지 못하고 결혼을 하니 부모에게 계속 의존하는 것은 어쩜 당연하다. 이런 결혼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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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스웨덴에서 보았던 어떤 결혼식이 생각난다. 남자는 24세, 여자는 26세. 결혼식은 둘이 계획해서 양가 부모와 친척 그리고 가까운 친구들만을 집으로 초대해 마당에서 치렀다. 내가 물었다. 부모님은 이 결혼을 위해 어떤 일을 하였는가라고. 특별히 한 일이 없단다. 결혼식장으로 집 마당을 빌려주고 결혼식에 보탬이 되라고 1백여만 원을 준 게 끝이다. 집도 세간도 모두 이 둘이 틈틈이 마련했다. 이들은 부모를 떠나 새로운 가정을 만드는 전 과정을 철저히 주도한다. 우리는 이런 결혼식이 불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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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복지국가와 우리를 단순 비교할 수 없다. 복지국가는 누구나 독립적인 삶을 사니 저런 식으로 결혼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하지만 그런 사회가 되기 전이라도 고칠 수 있는 것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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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과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 좀 자제해야 한다. 아이들이 진짜 독립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주도하는 작은 결혼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은 생각만 바꾸면 되는 일 아닌가. 사실 이 글은 내가 내 스스로에게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