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검찰개혁 청사진
나의 검찰개혁 청사진
-현실적, 실용적, 광범위하게 지지 받을 수 있는 개혁을 하자-
저는 며칠 전 검찰개혁을 말하면서 ‘더 빠른 개혁’이 아니라 ‘더 나은 개혁’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애석하게도 저의 이런 제안에 대해 일부 개혁에 목말라하는 분들은 개혁의 발목을 잡는 것에 불과하다는 불만을 제기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이재명 정부 하에서 검찰개혁이 이루어지길 간절히 바라는 사람입니다. 그것은 그저 당위가 아닙니다. 검찰개혁은 반드시 해야 하고 반드시 성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걱정하는 것은 과도한 목표, 원리주의적 접근에 따른 비현실적 개혁 추진입니다. 개혁의 성공 가능성을 높이려면 그 내용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이며 보다 많은 이의 지지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과도한 목표에서 한발 물러서는 것이 필요하고, 개혁의 대상들도 어느 정도 수긍할 수 있는 실용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한마디로 이해관계자들의 최대공약수를 찾는 게 중요합니다.
검찰개혁 논의 과정에서의 최대공약수는 무엇일까요. 오늘 저는 최근까지 나온 검찰개혁안을 염두에 두고 그 최대공약수를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하나 주제가 논문 한 편을 쓸 정도로 많은 이슈를 담고 있지만 이곳에서는 그 요지만 간단히 언급하도록 하겠습니다.
1. 수사-기소 분리 원칙은 수사개시권에서 완전 적용, 검찰 보완수사 허용
그동안 검찰권 남용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한 손에 쥐고 흔듦으로써 생겨난 문제였습니다. 따라서 수사-기소 분리원칙에 따라 ‘수사-경찰, 기소-검찰’의 원칙을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다만 이 원칙은 수사 개시와 관련한 직접 수사에 한정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입니다. 수사개시권만 확실하게 검찰 권한에서 제거한다면 이제까지의 수사와 관련한 문제는 거의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수사-기소 분리원칙을 검찰 송치 후까지 적용시킨다면 지연 수사를 비롯해 범죄의 실체적 진실 발견에 상당한 부작용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물론 송치 후에도 검찰은 경찰에 보완수사를 요구할 수 있지만 때론 검찰이 직접 보완수사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야 합니다. 저는 이것이 현재의 검사들을 비롯해 법조인들 대다수가 수긍하는 검찰 개혁의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2. 전문 수사기관으로 법무부 소속 중대수사청 설치
검찰이 직접수사를 원칙적으로 하지 못한다면 지금 6천 명 이상의 수사 인력이 할 일이 없습니다. 이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수사조직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검찰이 그동안 경찰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역량의 수사 능력을 갖고 있다는 중대 수사를 중심으로 전문 수사기관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면 사회 전체적으로 범죄 억지를 위한 좋은 방향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소속은 행자부가 아닌 법무부가 좋습니다. 행자부에 설치되면 자칫 제2의 국수본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건은 좋은 역량을 갖고 있는 검사(변호사 포함)와 수사관들이 중수청으로 옮겨가는 것인데, 이를 유인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필요합니다(만일 이것이 안 되면 검찰수사관 중심의 수사조직에 불과해 시간이 가면서 전문수사기관으로서의 성격에서 멀어질 것임).
3. 검찰의 기소권 통제를 위한 기소심사회(한국형 대배심제)
검찰이 수사기관으로서의 정체성은 포기한다고 해도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적절한 통제책도 필요합니다. 일부 영역에서는 기소법정주의도 고려해야 하지만 가급적 시민의 참여 속에서 기소권을 통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한국형 기소 배심제의 도입입니다. 기소 배심제를 어떻게 도입할 것인가는 좀 더 논의를 해야 하지만, 국민참여재판에서와 같은 일반시민 중심의 배심제 혹은 수사심의위원회와 같은 전문가 중심의 배심제를 상정할 수 있습니다. 모든 형사사건에서 이 기소배심을 이용하기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초기에는 중대 사건 중심으로 사용하고 점차 확대해 가는 방식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4. 경찰 수사에 통제 강화-->전건 송치/시정요구권 강화
수사-기소 분리원칙 하에 수사를 경찰이 사실상 전담하면 경찰 수사권 남용을 방지하는 장치가 더욱 중요합니다. 현재는 불송치 결정에 이의신청, 인권침해 등의 경우에 시정요구 제도 등이 있지만 이런 제도만으론 부족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모든 사건을 검찰로 송치해 검찰이 사건을 검토하고 기소 불기소를 결정하는 전건송치 원칙을 확립하는 겁니다.
나아가 경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통제가 보다 강화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의 시정요구권의 요건을 완화해 검찰의 시정요구가 쉽고 실질적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한 수사 과정에서 검찰과 경찰이 협력할 수 있도록 검찰이 조언할 수 있는 권한을 법정화(물론 경찰이 검찰에 조언을 구할 수 있는 권한도 주는 것이 필요)할 필요가 있습니다.
5. 공수처 기능의 재조정-->작지만 강한 조직으로
공수처는 이번 내란 사건을 통해 드러났지만 기능을 재정비하고 권한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작지만 강한 조직으로 재탄생해야 합니다. 다만 공수처는 원래 무소불위의 검찰 통제기관으로 탄생한 조직이므로 검찰이 공소청으로 탈바꿈하는 등의 변화를 꾀한다면 거기에 발맞춰 기능 조정이 될 필요가 있습니다. 무조건 강한 조직으로 만들고 큰 조직으로 만들면 제2의 검찰이 탄생해 또 다른 권력기관으로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큽니다.
6. 수사기관의 수사권 남용 및 인권침해 방지를 위한 감독기구 설치
민주당안은 국가수사위원회를 만들어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한 이의신청, 수사기관 간의 관할 조정, 수사기관의 비위 감찰기관의 업무 등을 맡긴다고 하나 현실성이 있는지 심히 의심스럽습니다. 경찰 수사과정에서 이해관계인이 제기하는 이의신청만 현재 연간 4만 건을 상회할 정도인데 어떤 기관을 만들어 그것을 처리할 수 있을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더욱 수사기관에 대한 감찰 기능은 매우 필요하나 모든 수사기관을 담당하는 감찰기관이라면 그것 또한 거대 조직을 만들어야 합니다.
2017년 경찰개혁위원회가 향후 경찰을 감독할 수 있는 외부 감독기관을 만들어 운영하겠다고 개혁안을 만들어 발표했지만, 문재인 정부가 끝날 때까지 전혀 진척이 없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런 감찰조직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다만 국가수사위원회를 만든다면 그것은 수사 이의신청 기관보다는 감찰조직 성격의 기관으로 만드는 것이 나을 거라 생각합니다. 수사절차에서의 이의신청은 앞에서 말한 전건송치주의를 채택하면 사실상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수사기관 간의 관할 경합 문제는 수사위원회 같은 행정 조직에 의해 조정되는 것이 어려울 뿐만 아니라 최종적인 해결책도 될 수 없습니다. 가급적 법률에 우선 관할권 조항을 정확하게 규정하고, 만일 법률 해석에 다툼이 있는 경우에는 법원에 관할 수사기관 지정신청을 해 신속하게(48시간 내) 지정받는 제도가 낫다고 봅니다.
(2025. 6.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