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
우리는 아직 야생에 산다
진화론을 철저하게 믿는 사람들은 시간이 가면 인간이 진화하는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하는 데는 얼마의 시간이 필요할까? 인간이 가진 감정, 특히 예술적 감정도 몇 천 년 시간이 가면 진화적 관점에서 상당히 달라질까?
과연 그럴까?
몇 년 전 아테네 국립고고학박물관에 갔을 때의 일이다.
거기 제1관의 문을 열자마자 나타난 4천여 년 전의 조각품. 우리가 크레타 문명이라고 말하는 에게해 섬에서 발견된 조각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 조각품들을 보는 순간 나는 경악을 했다.
내가 4천년 전의 조각품 전시실에 간 것이 아니라, 혹시 20세기 추상조각 전시실에 들어온 것은 아닌가?
세부적인 표사를 생략한 채 사람들의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 그것은 그 당시 사람들의 미적감각이 이미 추상적 수준에 이르렀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
특히 몇 몇 작품은 20세기 작가 헨리 무어의 작품을 보는 듯 하였다. 신기할 따름이었다.
"하늘 아래 새것은 없다." 이 말은 이미 2천 년 전 유태인들이 만든 성경에 나와 있는 말이다.
헨리 무어는 분명 여기에서 영감을 얻었으리라, 아니 솔직하게 말해서, 적당히 베낀 것은 아닐까?
우리 인류는 지난 4천 년 동안 수 많은 것을 이루어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업적이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우리의 감성은 발전시키지 못했다. 4천 년 아니 1만 전의 인간이나 현대의 인간은 조금도 다름이 없다.
진화론적으로 말하면 그런 정도의 시간은 큰 의미 없는 짧은 시간일지도 모른다.
사람을 더 사랑하지도 못하고, 사람의 아픔에 더 공감하지도 못한다.
그래서 누구는 말한다. 우리는 아직도 야생에 산다고.
이 사진은 에게해의 어느 섬에 발견된 크레타 문명의 조각품이다. 아마도 가족을 표현했으리라. 독일 바덴주립박물관 소장
이 사진은 헨리 무어의 <가족>이라는 작품이다. 옆의 4천 년 전 작품과 비교하여 어떤가? 어떤 것이 예술적으로 뛰어난가? 미국 뉴욕 보태니컬 가든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