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2025대선

인수인계에 대한 단상

박찬운 교수 2025. 6. 6. 14:02

인수인계에 대한 단상



어제 용산 대통령실 무덤 이야기를 하면서 정진석 등이 사실상 새 대통령의 직무수행을 방해했다고 질타한 바 있다. 이것은 매우 극단적인 예이지만 차제에 공무원들의 인수인계 문화에 대해 말 좀 해야겠다. 우리나라는 사조직이든 공조직이든 인수인계 문화가 아주 부족하다. 전임자의 경험이 후임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매우 독특한 문화다. 우리가 반성하지 않으면 안될 문화다. 우리 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  조직의 리더들은 이런 문화를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내 개인적 경험을 이야기 해보고 싶다. 내가 2020년 1월 인권위에 상임위원에 임명되어 첫 출근을 해 보니 참으로 막막했다. 누구도 내 직무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과거로부터 내려 오는 상임위원 매뉴얼 같은 것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나 그런 것을 꿈꿀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 (아마 이런 것은 인권위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정부 부처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나는 인권위 사무처에서 국장으로 근무한 경력이 있어 누구보다 인권위 시스템을 잘 아는 사람이었지만, 그렇다고 생전 처음 맡게 된 상임위원을 첫날부터 잘하긴 어려웠다. 출근 후 사무처에서 간단히 업무 전반에 관해 브리핑을 해주었지만 그것만으론 상임위원 직무수행에 큰 도움이 안 되었다.


상임위원 출근 첫날부터 결재 시스템의 숫자가 올라가고 있었다. 조사관들이 각하사건 보고서를 작성한 다음 내 결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다. 내가 클릭 한번만 하면 그 진정사건은 종결되는 것이다. 당사자 입장에서는 매우 중대한 일이지만 이 결정을 어떤 기준으로 해야 할지 전혀 설명이 없었다.


거기에다 더 큰 문제는 며칠 후 열리는 소위원회의 진행 방법이었다. 무려 처리해야 하는 사건이 백 여 건이나 되는데, 이 소위의 위원장인 내가 어떻게 그 많은 사건을 처리해야 할지, 그동안의 노하우를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뿐인가. 소위가 끝나면 인용사건에서는 결정문을 작성하는데, 그 책임은 온전히 소위원장인 상임위원 몫이다. 결정문을 어떤 이론과 원칙 하에 작성하는지 사무처가 만들어 놓은 엉성한 수준의 결정문 양식에 의존해서는 도저히 작성할 수 없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었다.


인권위가 만들어진 지 20여 년이 지나감에도 이런 업무 디테일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은 것에 나는 매우 실망했지만, 이 모든 것은 이제 내가 알아서 할 일이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아찔한 일이었지만 그래도 빠른 시간 내에 직무수행 방법을 스스로 익혀 대과 없이 임무를 완수한 것은 다행스런 일이었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퇴임 후 결정문 작성과 관련된 논문을 써 인권위 관계자들이 앞으로 두고두고 참고할 수 있도록 했다.)


나는 이런 문제 의식을 임기 내내 느끼고 새롭게 상임위원으로 임명되는 분들께는, 취임 초기 간단하게라도(너무 자세히 설명하면 오히려 싫어하는 사람도 있음) 내 경험을 이야기해주고, 내가 만든 자료를 주기도 했다. 사무처에는 새롭게 임명되는 비상임위원을 위한 직무수행 매뉴얼을 만들어 볼 것을 몇 차례 요구하기도 했다. 내가 인권위를 나온지 2년이 넘었으니 지금은 어떨까 궁금하긴 하지만, 그 문화가 하루 아침에 바뀌진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내가 임기를 마치고 퇴임식을 한 게 2023. 2. 6.이다. 후임자가 지난 2년간 이름을 떨쳐온(?) 김용원 위원이다. 나는 퇴임식 전날 밤 늦게까지 김 위원을 위해 내가 그동안 상임위원(군인권보호관 겸직)으로서 경험해 온 것을 토대로 일종의 직무 매뉴얼을 만들었다. 퇴임식이 있는 다음 날 출근해 김위원을 따로 만나 직무수행과 관련해 몇 가지 조언과 함께 그 매뉴얼을 전달했다. 그 내용은 내가 쓴 회고록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에 이렇게 나와 있다.

"오늘 아침 인권위로 가서 후임 상임위원 김용원 위원을 만났다. 전임위원으로 해줄 수 있는 몇 가지 조언과 함께 어제 만든 '상임위원 업무처리'를 주었다. 아마 많은 도움이 되리라 본다.  .... "(274쪽)


우리 공직자들이 조금 더 정성스럽게 직무를 수행해 주었으면 좋겠다. 이제 새 정부에서 새로운 기풍의 공직자 문화가 만들어져야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런 문제에 대해서도 큰 관심이 있는 분이니 공직자 문화가 많이 바뀌지 않을까 기대를 해본다.
(2025. 6.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