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민주당의 길

박찬운 교수 2023. 7. 3. 15:15
 
난세다. 어지러운 세상이라고 남 탓만 할 수 없어, 벽에다 낙서라도 하는 심정으로 길바닥에 침이라도 뱉는 심정으로, 몇 글자 쓴다.
 
나는 정권이 바뀌고 난 뒤 이 나라의 정치가 파국으로 가지는 않을 거라 예측했다. 대통령 당선은 불과 0.7% 표 차이의 결과였고 국회는 압도적으로 여소야대니 대통령이나 여당이 야당을 존중하지 않고는 국정 운영을 할 수 없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번 정권이 식물정권을 원하지 않는다면 적극적으로 타협정치를 할 것이고 어쩜 이것은 기성 정치를 혐오하는 윤대통령이 오히려 더 잘할지도 모를 거라는 근거 없는 기대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허망한 것이었다. 지난 1년 이 정권은 야당을 존중하지 않았다. 정치적 쟁점에서 타협을 시도하려는 어떤 노력도 보이지 않았다. 돈 낭비, 안보 우려의 여론을 무시하고 대통령은 청와대로 들어가지 않고 용산으로 집무실과 관저를 옮겼다. 새로운 입법으로 과거 정권이 이룬 성과를 부정하기 어렵게 되자 시행령이란 우회로로 법률을 무력화시켰다. 남북관계는 개점휴업의 결과 악화일로에 있고, 외교는 미국과 일본에 치우쳐 중국과의 관계가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이 과정에서 야당(특히 민주당)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혔지만 마이동풍으로 일관했고, 수위를 조절하지 못하는 대통령의 언행은 마침내 전 정권을 반국가세력으로까지 몰아붙였다.
 
식자연하는 사람 중엔 이 상황에 대해 정권과 야당을 싸잡아 비난하지만 그것은 이 나라의 정치발전을 위해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평가다. 현실 정치에 대한 평가에서 양비론은 얼핏 객관적인 것 같지만 기실 정치발전에는 조금도 도움이 되지 않는 비겁한 주장이다. 양심 있는 식자라면 오늘 이 난세에 보다 무겁게 책임이 있는 쪽은 대통령과 여당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야 한다. 대부분 여론조사에서 현 정권의 국정운영방식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응답한 이들이 60%에 가깝다는 것을 주목해야 한다.
 
난세의 책임은 현 정권에 있지만 이 국면에서 민주당의 역할이 적절한지는 또 다른 영역의 문제다. 내가 보기엔 민주당은 무기력하다. 당은 분열되어 대오를 형성하지 못하고 갈지자 행보를 계속하고 있다. 분명한 전략이 없다. 국민들 지지를 받는 법률을 만들려 했으나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로 그 뜻을 이루지 못했으니 책임은 정권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전략이라면 전략이다.
 
며칠 전 한마디했지만 민주당의 대 국회 전략은 바뀌어야 한다.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분간해 힘을 집중해야 한다. 야당인 것을 잊고 여당이었던 관성을 계속 이어가는 사고의 틀을 깨야 한다.
 
대통령 거부권의 실체를 알았다면 그에 맞는 전략으로 맞서야 한다. 왜 성과도 없이 입법만능주의에 빠져 있는가. 민주당은 대여투쟁에서 모든 것을 국회의 입법권으로 해결하겠다는 과욕을 버려야 한다. 김건희 특검을 위한 새 특검법을 만들겠다고? 대통령이 그것을 받아들여 시행하겠는가? 시행령으로 검찰 수사권이 확대되자 검찰의 수사권을 완전 제한하는 법률을 만들겠다고? 그것을 대통령이 받아들이겠는가?
 
지금 민주당이 자력으로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소극적 투쟁이다. 국회 예산권으로 정부의 문제 있는 정책을 현실적으로 통제할 수 있다. 정부가 시행령만으론 정책을 수행할 수 없어 입법 시도를 할 때는 그것을 저지할 수 있다. 시행령 통치가 정말 법률에 위반된다면 사안을 헌재로 가지고 가서 판단을 받으라. 김건희 특검을 꼭 하고자 하면 기존 상설 특검법을 이용하라.
 
소극적 투쟁을 넘어 적극적 입법을 통해 국민들에게 무언가를 보여주려면 불가피하게 정권과 타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차선의 입법을 하든지 아니면 하나를 취하고 하나를 주는 정치적 타협을 통하지 않으면 안 된다. 다만 그런 방식은 여론의 추이를 살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자칫 야당의 정체성에 혼란을 주어 지지층 이탈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각성을 촉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