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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17일 감기가 걸린 상태에서 대구지방경찰청 강당에서 300명 경찰관을 대상으로 강연했다.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모르겠습니다. 삶의 만족도가 행복과 직결된다면, 행복의 정의 대신 행복의 조건은 말할 수 있겠지요. ‘이러이러한 조건일 때 사람들은 행복할 것이다’라고요. 

오늘 하루 종일 그 생각을 했습니다. 내겐 그 행복의 조건이 무엇일까? 저녁을 맞이해 이런 결론에 도달합니다. ‘삶의 평온이 깨어지지 않는 것,’ 그것이야말로 지금 제가 가장 바라는 행복의 조건입니다. 

공기나 물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그것이 없을 때 바로 느끼듯 삶의 평온도 마찬가지입니다. 삶의 평온이란 평상시엔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이 어쩜 그 평온 속에 산다는 증거입니다. 그러나 그 평온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깨달게 되는 것이지요.

한동안 지속되었던 제 삶의 평온이 요즘 위협받고 있습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연구실에 나가 책을 보고 글을 썼습니다. 햇볕이 그리울 때는 연구실 밖을 나가 마냥 걸었지요. 저녁엔 뜻 맞는 친구와 와인을 마시며 오랜 시간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찾아 발품을 팔기도 하는 날도 있었지요. 때때로 영화를 보고 그림을 감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삶이 지속되니 가끔 지루함도 생겨 일탈의 꿈도 꾸었지요. 그것이 저에겐 평온한 삶이었고, 지금 생각해 보니, 저에겐 행복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 저에게 2019년은 매우 특별한 한 해가 될 것 같습니다. 삶의 평온이 깨져 행복이 무엇인지를 절실하게 느끼는 해입니다. 제 개인적으론 올해 좋은 해입니다. 교수로서 사회적으로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을 많이 합니다. 큰 아이는 결혼을 앞두고 매일같이 들떠 있습니다. 거기까지만 보면 평온하기 그지없는 일상입니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면 상황은 180도 다릅니다. 아버지 병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사실 날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나이 60이 못 되어 찾아온 희귀병으로 지난 4-5년 간 병상을 지켜온 형의 병세는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침에 병원으로 출근하고 저녁에 병원에서 퇴근하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거기다가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러저러한 어려움까지 계속 들려옵니다. 그러니 연구실에서 가만히 앉아서 책을 보기 어렵습니다. 집중해서 글을 쓰기 어렵습니다. 

20여 년 전 갑작스럽게 삶의 평온이 깨진 일이 있었습니다. 변호사 생활 10년을 넘길 때였지요. 외국 유학도 다녀왔고, 벌이도 괜찮아 (집안 최초로) 서울 강남에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했고, 아이들도 어딜 나가서 빠지지 않으니, 크게 부러울 게 없는 시절이었습니다. 

그런데 건강하셨던 어머니가 암 판정을 받은 뒤 6개월 만에 돌아가시고, 동시에 아버지는 의료사고로 입원하시고, 누이는 어머니 돌아가시는 날 뇌졸중으로 쓰러졌습니다. 몇 달 뒤 젊은 제부가 동생과 아이들을 남겨두고 세상을 떴습니다. 한 해에 벌어진 이 망연자실한 상황에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지요. (이 이야기가 저의 SNS 소설 ‘야곱의 씨름’입니다.)

올해 또 다시 그 해의 악몽을 꾸는 것일까요. 피하고 싶은 잔인데...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피할 수 있을까요. 담담히 받아들이는 수밖에. 

오랜만에 감기가 찾아왔습니다. 몸은 천근만근, 기침과 콧물이 쉴 새 없이 이어집니다. 그런 와중에도 어젠 대구에 내려가 강연을 했습니다. 300명이 넘는 경찰관들 앞에서 열강을 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오면서 눈을 감았습니다. ‘삶은 이런 것이야, 이것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야.’ 이런 독백 속에 스르르 잠에 빠졌습니다. 서울역에 도착할 무렵 평온을 깨는 전화가 울리기 시작했습니다.(2019. 4. 17)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

나는 이미선 후보자를 모른다. 아쉽게도 내겐 헌재재판관으로 그가 적격자인지 마땅한 정보가 없다. 재산문제가 불거졌고 그로 인해 여론이 좋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로선 그것은 결정적 하자가 아니라고 본다. 주식거래행위에 불법이 없었다면 그것 때문에 낙마되어선 안 된다.

내게, 나아가 문대통령의 지명권을 존중하는 사람들 모두에게, 그것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그가 헌재재판관으로서 능력과 소신을 갖춘 법률가인가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평가를 하기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 다만 내가 존경하는 몇몇 법조인들이 후보자의 능력과 소신에 대해 공개적으로 긍정적 평가를 하는 것을 보고 다소 믿음이 가는 정도다.

이미선 후보자가 가장 염려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재산문제 소명보다 소신과 능력에 대해 신뢰를 주어야 한다. 어떻게? 정치적 행위를 통해서 말이다.

재판관이 되는 과정은 순전히 정치적 과정이다. 정당간의 공방, 여론의 향배, 이를 토대로 한 대통령의 결단이다. 따라서 이후보자가 재판관이 되고 싶으면 이 과정에서 자신의 면모를 어떻게 해서라도 보여 줘야 한다. 좌고우면할 것 없이 청문과정에서 보여주지 못한 자신의 능력과 소신을 이 정치적 과정이 끝나기 전까지 스스로 드러내야 한다.

"내게 재판관의 기회가 주어지면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겠다. 나는 결코 남성과 주류의 숲속에서 웅크리지 않고 내 소신을 펴 나가겠다."

이런 결연한 의지를 자신의 목소리로 보여줘야 한다. 그것이 이후보자의 역량을 신뢰하고 지명한 대통령과 그 대통령의 지명을 존중하는 사람들에 대한 (후보자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정치적 행위이다.

(2019. 4. 17)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

 

제가 형사공공변호인 제도가 필요하다는 글을 쓰니, 몇 몇 후배 변호사들이 (심하게 까진 못하지만)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판을 하는 것 같습니다. 이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군요.

1. 우선 형사공공변호인은 우리 사법절차에서 시급한 제도가 아니다, 왜 중죄인에게 국가예산을 써서 변호인 조력을 제공하느냐, 이런 말씀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제가 형사공공변호인을 찬성하는 것은 우리의 형사사법절차가 갖는 본질적 한계 때문입니다. 우리는(일본도 유사함) 수사절차에서 범죄혐의가 있다고 판단되어 검사가 재판에 회부하면 유죄를 받을 가능성이 99%입니다. 이것이 일본 전문가들이 말하는 정밀사법(精密司法)의 실상입니다. 이것은 억울한 사람이 재판과정에서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기가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로지 1-2%의 행운아들만이 바늘구멍 같은 무죄의 구멍을 통과할 수 있는 것이지요. 

2. 반면 미국의 경우는 우리와는 상황이 상당히 다릅니다. 우리와는 수사구조와 수사방법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유무죄의 승부는 수사절차가 아니라 재판과정에서 갈라집니다. 그 한 가운데엔 배심제도가 있습니다. 미국에선 수사절차보단 공판과정에서 잘만하면 억울함이 풀릴 수 있습니다. 배심재판에 회부된 약 30%의 사람들이 무죄가 된다고 합니다. 이러니 변호사들의 주 무대가 공판정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공판과정에서 전력을 투구합니다. 

3. 이렇게 볼 때 대한민국의 억울한 범죄혐의자들은 공판절차 보다도 오히려 수사절차에서 잘 막아야 합니다. 거기가 뚫리면 그것으로 사실상 그의 운명은 끝나는 것이니까요. 제가 오래 전부터 우리의 형사변호의 관심을 수사로 돌리자고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공판을 부실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라 수사과정에서 피의자들이 변호를 제대로 받아야 억울한 일이 안 생긴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 우리가 오랫동안 싸워 만든 제도가 수사절차에서의 변호인참여(변호인입회)제도입니다. 변호인이 옆에 앉으면 그것만으로도 조사방법이 달라집니다. 인권침해는 줄어들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충분히 할 수 있게 됩니다.

4. 바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이 변호인참여와 관계 깊습니다. 돈 있는 사람, 재벌 회장만 변호사와 함께 경찰서나 검찰청을 들어가게 해서는 안 됩니다. 돈이 있든 없든, 어떤 이유에서든, 변호인이 없는 피의자가 속수무책으로 조사를 받게 해서는 안 됩니다. 변호사가 없는 경우엔 경찰서 인근에 대기하고 있는 변호사가 달려가 피의자 옆에 앉아야 합니다. 이것이 선진 외국의 수사절차입니다. 우리가 지금 그것을 해야 할 때입니다. 우리에게 돈이 없는 게 아닙니다. 변호사 수가 옛날처럼 부족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못할 게 없습니다.

5. 많은 변호사들이 걱정하는 것이 돈입니다. 그들은 만일 형사공공변호인이 만들어지면 변호사들에게 열정 페이를 강요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저는 그리 되지 않길 바랍니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은 현실적으로 매우 타당한 말입니다. 장시간 경찰서나 검찰청의 조사실에서 피의자의 조사에 도움을 주는 변호사들에게 그저 봉사만 외친다면, 이런 제도는 유명무실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적 부조에 참여하는 변호인들에게 사선만큼의 돈을 지급할 수는 없습니다. 그 액수는 우리 경제사정에 맞게끔 적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어느 정도일지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하지 말고 정부와 변호사단체(변협)가 협의해야 합니다. 

6. 나아가 많은 분들이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시행한다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공판단계의 국선변호제도도 함께 손을 봐야 한다고 합니다. 이 주장은 정말로 타당한 말입니다. 피의자 국선제도(형사공공변호인)와 피고인 국선제도를 각각 별도로 운영하면 낭비적 요소가 많고 비효율적일 가능성이 큽니다. 둘을 일원화해 한 기관에서 운영해야 합니다. 또한 많은 변호사들이 염려하는 것처럼 운영주체는 중립적이고 독립적인 공적 기구가 맡는 것이 필요합니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거나 준국가기관인 법률구조공단이 맡는 것은 변호의 독립성에 비추어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7. 제 결론은 간단합니다.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는 이론의 여지없이 우리 형사사법 절차가 나아가야 할 방향입니다. 다만 그 운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정부는 이 제도에 어느 정도의 돈을 투자할지에 대해 보다 심도 있는 논의를 해야 합니다. 이 논의에서 이 제도의 주인공인 변호사들과 변호사 단체가 소외되면 안 됩니다. 그들이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 간절한 바람입니다.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

(고성, 속초 지역에 산불이 났습니다. 조속히 진화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1. 정부가 수사단계의 국선변호제도인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도입을 위해 입법예고를 하자 변호사계가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반대 내용을 보면 확연히 두 부류로 나누어진다. 한쪽은 이 제도 자체가 필요 없다며 결사반대하고 있고, 다른 한쪽은 제도 자체는 반대하지 않지만 운영주체를 변호사단체(대한변협)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1990년대 초부터 이 제도 도입을 주장해 온 사람으로서 이 논란에 대해 간단히 의견을 말하고자 한다.

 

2. 우선 형사공공변호인제도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제도는 수사초기의 인권보장을 위해 고안된 제도이다. 형사절차에서 인권침해(고문, 강압적 심문, 회유 등등)가 가장 많이 일어나는 단계가 수사단계이다. 그 중에서도 피의자가 체포 연행되어 경찰서에서 조사받는 수사초동 단계가 인권침해의 가능성이 크다. 이 과정에서 인권침해를 막을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수단이 무엇일까? 조사과정에 변호인이 참여(입회)하는 것이다. 변호사가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데, 수사관이 피의자를 고문하겠는가!

 

이것은 변호사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것이다. 형사공공변호인은 바로 이 과정에 처한 피의자 누구라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다. 이것은 미국의 미란다 절차에서 온 것으로, 피의자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을 때 “나는 변호사 없이는 조사받을 수 없다”(변호사가 올 때까진 묵비권 행사)고 말하면, 바로 인근의 ’퍼블릭 디펜더‘라는 변호사가 달려오는 제도와 같은 것이다. 이런 제도를 우리나라도 해보자는 것이 형사공공변호인제도 도입의 취지다.

 

3. 이 제도를 반대하는 변호사들은, 정부가 도입하려는 형사공공변호인은 살인피의자나 성폭력 범죄 피의자 등 중범죄 피의자들까지 이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하면서, 국민정서상 용인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이 제도의 취지를 곡해한 것으로 매우 유감스런 주장이다. 형사절차에서 변호인의 필요성은 중범죄 용의자를 중심으로 고려되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99명의 범인을 놓치는 한이 있어도 1명의 억울한 자를 만들어서는 안 된다‘라는 법 격언이 나온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형사절차가 잘못되어 단 한 명이라도 중범죄로 확정되면, 그는 경우에 따라서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이것을 막기 위해 현재는 공판단계에서 필요적 변호제도를 두고 있다. 중범죄 피고인을 재판하기 위해선 반드시 변호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변호사가 없으면 국선변호인이라도 지정해야 법정을 개정할 수 있다. 중범죄 피의자에 대해 형사공공변호인을 붙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치의 연장이다. 중범죄 피의자 (만일 절차가 잘못되어 범인으로 확정되면 죽을 수도 있는 사람)의 인권보호를 위해 공판단계 뿐만 아니라 수사단계까지도 변호인을 제공해 변호인이 없으면 조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4. 제도를 반대하는 변호사들은 형사공공변호인은 버닝 썬 사건의 가수 승리도 이용할 수 있는 제도라고 하면서 비난한다. 국선변호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인데, 형사공공변호인은 그것과 관계없이 부자도 이용할 수 있는 터무니없는 제도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반대도 제도 자체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나온 것이다. 

 

형사공공변호인이 수사초기에서 필요한 제도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이 제도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까? 경찰서에서 피의자를 체포해서 조사를 시작하려고 하는데, 그 때 피의자의 경제력을 조사해서 그에 기해 형사공공변호인을 부를까 말까를 판단할 수 있을까? 시간적으로 그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중범죄 피의자를 조사할 때는 피의자의 경제력과는 관계없이 인근에 있는 형사공공변호인을 부르겠다는 것이다(물론 이후의 절차에선 피의자의 경제력을 판단해 계속 변호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운영을 해도 승리나 재벌회장들이 형사공공변호인을 부를 가능성은 없다. 그들에겐 언제든지 달려올 변호사들이 줄을 서 있기 때문이다. 

 

5. 형사공공변호인은 이미 인권 선진국에서 널리 이용되고 있는 제도다. 미국의 퍼블릭 디펜더, 영국의 듀티 솔리시터, 일본의 피의자 국선변호 제도 등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사실 이들 나라에 비하면 이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한참 늦었다.

 

6. 다만 이 제도를 누가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선 신중을 기해야 한다. 현재 법무부는 그 산하의 법률구조공단에게 이 제도를 맡기는 것을 구상하고 있다. 물론 이렇게 만들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이 제도를 도입할 수 있는 방법은 된다. 그러나 이런 제도 운영은, 대한변협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수사와 기소를 감독하는 법무부가 그 대척점에 있는 변호사의 형사변호까지 통제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해서 그 운영을 변협이 맡는 것도 무리라고 본다. 이 제도는 조직력을 갖춘 공적 조직이 맡지 않으면 실효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미국, 영국, 일본 어느 나라에서도 변호사 단체가 직접 이 제도를 맡진 않는다). 나는 이에 대해 국선변호제도 전반을 손을 본 다음, 공판단계와 수사단계의 국선변호를 모두 담당하는 제3의 독립적 특수법인을 설치할 것을 주장한 바 있다. 변호사단체는 이 독립법인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족하다. 일본의 국선변호제도를 운영하는 사법지원센터가 하나의 모델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7.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이야기하면, 이 제도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에 따라서는 변호사들의 형사변호 기회를 높이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일본의 경우 사법지원센터에 계약을 맺고 형사변호를 하는 변호사 수가 전체 변호사의 60%에 달한다. 변호사계가 이 제도를 반대할 것이 아니라 상호 윈윈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제도 입안에 참여하길 기대한다.(2019. 4. 5)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

눈물겨운 나의 폐강 이야기 ㅎㅎ

-<90년생이 온다>를 읽고-

 

 


사실 몇 년 전부터 불안한 조짐이 보였지만 막연한 낙관론을 믿고 그냥그냥 넘겼다. 그러다가 지난 학기부터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내 학부 교양과목에 학생들이 들어오지 않는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자유의 인문적 사색이라고 하는 이 교양과목은 내가 수 년 전 대학본부로부터 정부 지원금을 보조받고 만든, 한 마디로 나의 야심작이며, 우리 학교 명품교양 과목 중 하나다. 그런데 그게 설강 초기부터 고전을 면치 못하더니 급기야 폐강사태까지 간 것이다나로선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다른 어떤 과목보다 성의를 다했고, 그것 때문에 없는 시간 쪼개 글을 써, 교양서까지 한 권(자유란 무엇인가)을 출간했는데...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뭔가 내가 학생들의 마음을 잘못 읽고 있는 게 분명하다. 요즘 학생들의 트렌드를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과거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공부하는 둘째 딸에게서 카톡 문자가 왔다. 아빠가 읽어야 할 책 한 권을 소개한 것이다. <90년생이 온다>(임홍택). 82년생의 저자가 10 년 후배 세대들을 관찰하고 쓴 책이다.


카톡을 받자마자 책을 구매해 바로 읽기 시작했다. 읽으면서 몇 부분에서 무릎을 쳤다. 탄식이 나왔다. , 내가 이것을 모르고 있었구나. 내가 요즘 가르치는 90년대 생들에겐 이런 특징이 있었구나. 그 내용을 요약하면 이런 것이다.


90년대 생의 특징 하나, 그들은 간단한 것을 좋아 한다


“..모든 길고 복잡한 것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심지어 피해야 할 일종의 악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 세대를 이해할 수 있는 첫 번째 키워드는 간단함이다.“(69)


요즘 친구들이 간단한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은 별로 새로운 게 아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우리 같은 사람들은 감히 따라갈 수가 없다. 그들과 대화를 하고 싶어도 도대체 언어가 다르니 다가설 수가 없다. 이 친구들이 말하는 것은 유추가 불가능하다.


90년대 생 친구들은 카톡 대화를 해도 이렇게 한다. A: ㅇㄱㄹㅇ ㅂㅂㅂㄱ   B: ㅁㅊㄷ ㅁㅊㄷ

(이것 아는 분들은 이 글을 더 이상 읽지 않아도 좋다.) 초성만으로 카톡 대화를 하는 이 친구들을 어떻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 ㅇㄱㄹㅇ ㅂㅂㅂㄱ(이거 리얼 반박불가), ㅁㅊㄷ(미쳤다)


우리 둘째는 90년대 초 생인데, 이 아이와 카톡을 하다보면 참 허무할 때가 많다. 나는 무슨 말을 해준다고 꽤 정성스레 문자를 보내도 답변은 고작 이모티콘 한 개다. 이 세대에겐 문자를 잘 쓰거나 빨리 쓰는 것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 (내가 그들을 따라가려고 자판을 얼마나 빨리 두드리는지 모를거다. 솔직히 말해 나만큼 빨리 자판을 치는 50대를 본 적이 없다.) 이들에겐 그런 능력보단 적절한 타이밍에 보유한 이모티콘이나 ’(아마 이 말 모를 사람 많을 것이다. 긴 설명이 필요할지 모르는데 여기선 그저 이미지사진정도로 이해하길 바란다.)을 보내는 것이 더 인정을 받는다.


이 친구들은 글을 잘 안 쓴다. 긴 글은커녕 짧은 글도 잘 안 쓰려고 한다. 내가 요즘 맡고 있는 과목에선 큰 맘 먹고, 글쓰기를 훈련시키려고 매주 짧은 과제를 하나 내 글을 쓰게 하고, 그것을 첨삭해 준다. 나로선 보통 일이 아니다. 흐트러질 대로 흐트러진 글을 읽고, 코멘트하고, 거기에다 빨간 펜으로 첨삭을 한다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는 해본 사람만이 안다. 그런데 가끔 그것을 하면서 걱정이 앞서고, 때론 한 숨이 나온다. 내가 괜한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렇게 한다고 과연 몇 명의 친구들이 좋아할지...


폐강된 교양과목은 인문고전을 통해 자유의 의미를 이해하는 과목이다. 한 학기에 다루는 책이 20여 권이 넘는다. 학생들이 어려워 할 것 같아서, 그것을 잘게 잘게 풀어서 책 한 권을 썼고, 그것을 기본교재로 하면서 가끔 원전을 보도록 하는 과목이다. 사실 이 과목을 한 학기 잘 들으면, 적어도 한 동안 유식한척 하며 살 수 있다(ㅎㅎ). 그런데 이런 과목을 기피한다? 알 수 없는 일이나 요즘 친구들을 알고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 책 속에 이런 대목이 있다.


”90년대생들은 기존의 세대들과 달리 더 이상 정보를 책에서 찾지 않는다. 심지어 웹검색을 통해 정보를 찾지도 않으며, 유튜브나 소셜미디어에서 빠르게 효과적으로 정보를 찾아낸다.“(88) 이들에겐 가만히 앉아서 첫 장에서 마지막 장까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사실“(87)이다.

 

90년대 생의 특징 둘, 그들은 비전형적 재미를 추구한다


”90년대 생의 두 번째 특징은 재미. 80년대 생 이전의 세대들이 소위 삶의 목적을 추구했다면, 90년대 생들은 삶의 유희를 추구한다. 이들은 내용 여하를 막론하고 질서라는 것을 답답하고 숨 막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질서를 요구하거나 진중해지는 모습을 보면 바로 어디서 진지국 끓이는 소리가 들리는데?“라며 응수한다. 진지한 척 하지 말라는 것이다.”(97)


나는 이 두 번째 특징을 듣는 순간 내 시대가 완전히 갔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전형적인 진지국이고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었으니. ㅠㅠ


이들의 재미는 그냥 재미가 아니다. 그것은 병맛이어야 하고, 거기에 드립력까지 있어야 한다. (내가 이런 말을 하다니, 참 살다가 ㅂㅈㄹ을 다한다. ㅎㅎ) 요즘 기승전병이란 말이 있다. 이것은 기승전결에 병맛이라는 신조어가 결합된 또 다른 신조어다. ’병맛이란 어떤 대상이 맥락 없고 형편없으며 어이 없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러니 기승전병은 이야기가 시작되고 전개되다가 절정 및 새로운 전환을 보여주고, 병맛스러운 결말을 짓는다는 뜻이다. 잘 나가다가 삼천포로 빠진다고 할까?


이러니 웃기더라도 종래의 패턴에 맞게 웃기면 답답한 놈 소리 듣기 딱 알맞다. 여기에서 요즘 의문 하나가 풀렸다. 티브이에서 과거 유명했던 개그맨들이 사라진 이유 말이다. 이젠 웃겨도 아주 비정형적으로 웃겨야 한다. 4차원, 5차원적으로 웃겨야지 과거 개그맨들이 웃기듯 해서는 애들이 웃지 않는다.


여기에서 드립력이란 새로운 말이 중요하게 되었다. '드립'은 임기응변이란 뜻의 애드리브가 변형된 인터넷 신조어다. ‘특정한 상황이나 행동에 대한 발언으로서 부정적 의미의 즉흥적 발언이다. 요즘은 헛소리나 실언, 막말이란 뜻이 포함되어 있다. ’드립력은 드립을 칠 수 있는 능력이다. 이것은 일종의 개그 능력인데, 기존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단순히 남을 웃기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 어울리는 짧은 말이나 글로써 촌철살인의 웃음을 주는 것이다. 나의 세대에서 이런 능력은 초인의 능력이다. 여기서 나는, 우리는 시대의 종언을 선언하지 않을 수 없다. ㅠㅠ

 

90년대 생의 특징 셋, 그들은 정직함과 솔직함으로 무장되었다


“90년대 생을 대표하는 마지막 특징은 정직함이다. 사실 정직함은 예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보편적인 가치 중 하나로 특히 신세대를 지칭하는 표현 중 하나였다. 하지만 90년대 생들에게 정직함이란 기존 세대의 정직함과는 그 성격이 다르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정직함이란 성품이 정직하다거나, 어떤 사실에 대해 솔직하거나 순수하다는 ’Honest’와 다르다. 나누지 않고 완전한 상태, 온전함이라는 뜻의 ‘Integrity’에 가깝다. 그들은 이제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완전무결한 정직을 요구한다. 당연히 혈연, 지연, 학연은 일종의 적폐다.”(110)


요즘 학원가는 공무원 시험 열풍이다. 주된 이유야 청년실업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서도 제대로 된 직장을 찾기 힘드니 상대적으로 안정된 직업인 공무원으로 몰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뿐 만일까? 그렇지 않다. 기업을 다니는 취업 성공자도 1-2년 다니고 때려 친 다음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기도 한다. 회사원보다 공무원이 뭔가 나은 게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그 하나의 원인으로 공시가 다른 회사 공채보다 정직하고, 공무원 생활이 기업생활보다 좀 더 정직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들의 정직함은 솔직함으로 연결된다. 그들의 솔직함은 자신만의 그것을 넘어 남들의 솔직함까지를 포함한다. 사장이 휴가는 마음대로 써도 된다고 했으면 휴가 가는 사람에게 딴 말을 하면 안 된다. 사장이 직원들에게 내 앞에서 담배 피워도 된다고 했으면 회의하다가도 맞담배 피워도 괜찮아야 한다. 그런 사람에게 왜 그렇게 눈치가 없어? 하면 꼰대 소리 듣기 딱 알맞다. 근무시간이 끝난 뒤 상사가 저녁 먹자고 하면, 옛날 직원들은 군말 없이 따라갔지만, 요즘 90년대 생들은 그냥 따라가는 법이 없다. 자신의 약속이 먼저다. 이런 것 보고 군기 빠졌다고 하는 상사가 있다면 정신병자 취급받기 딱 알맞다.


눈물겹게 나를 돌아본다


우리 집 큰 아이는 80년대 생이다. 큰 애와 작은 애는 같으면서도 다르다. 둘은 위에서 이야기한 세 가지 특징에서 상당히 차이가 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젊은 친구들을 지난 13년 간 만나왔다. 나의 무심함에 큰 책임을 느낀다. ㅠㅠ 이제부터라도 이들을 이해하기 위한 배전의 노력을 해야겠다. 그런데 사실 자신이 없다. 내가 과연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의 태도에 공감할 수 있을까. 시시때때로 나의 꼰대 본성이 나타나 학생들을 훈계하고 이래서는 안 된다고 입에 거품을 물지나 않을까.


그런데 말이다. 나도 지난 날 이런 풍조를 보면서 준비 안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 그것만은 우리 친구들이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그 대표적인 예가 SNS 초단편 소설의 창작이다. 이 공간에서 여러 차례 선보였지만 나는 그동안 200자 원고지 10장 내외 분량의 소설을 쓴 바 있다. 복잡하고 긴 것 싫어하는 세대를 위한 나의 야심작이었다.


이것은 누구의 지도도 받지 않고 누구의 선례도 따르지 않은 나의 독창적 기법의 글쓰기다. (그런데 놀란 것은 이 책을 보니 나 같은 기법으로 소설을 쓰는 기성작가들이 이미 여러 명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 먹고 살기 어렵다! ㅠㅠ) 이렇게 노력하는 나다. 나도 그들을 따라가려고 부단히 노력한다는 사실, 그것만큼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다음 학기 폐강되지 않기 위해 노력할 거다. 오늘은 이 정도로...‘할많하않!’


)할많하않: ‘할 말은 많지만 하지 않는다의 축약어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

어둠을 뚫고 새벽을 연 사람들

-소설 <아버지의 새벽>을 읽고-

 

 


내가 살아 온 지날 시절

한국 전쟁이 발발하고 10여년 후에 태어난 나는 이제 50대 후반이 되었다. 초등학교 시절 울진삼척지구 무장공비 침투사건으로 죽은 이승복 어린이의 이야기를 듣고, 나는 공산주의에 적개심을 불태웠다. 고등학교 시절 10.26이 일어났다. 그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학교에 가니 수업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친구들은 휴교라서 즐거워했지만, 나는 국부가 서거했음에 눈물을 흘렸다. 그렇게 나는 청소년기를 보냈다.


내 생각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사법시험을 통과하고 국군장교로 임관한 1987년 이후였다. 나는 대학시절 고시공부만 했기 때문에, 매년 5월이 되어 많은 학생들이 광주의 진상을 밝히라고 데모를 하는데도, 큰 관심을 두지 못하고 학창생활을 보냈다. 그것은 마음속에 큰 짐이었고 언젠가는 갚아야 할 빚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나는 국군정훈장교로 3년을 보냈다. 그것은 군의 정치교육 장교였다. 3년 간 나는 그 직위를 활용하여 열심히 책을 읽고 현실 문제를 고민했다. 3년이 지난 뒤 나는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전두환 정권이 끝났지만 대한민국은 민주화의 길을 걷지 못하고 전두환의 친구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었다. 90년 대 초의 혼란한 시절, 나는 변호사로서 시국사건의 변호인으로 활동했다. 역사의 한 가운데에 나도 서게 된 것이다. 그 뒤 김영삼의 문민정부를 거쳐 드디어 야당 대통령이 탄생했다. 김대중의 당선은 민주화를 열망한 우리 모두의 기쁨이었다. 그 뒤를 이어 노무현이 당선되어 내리 10년의 진보정권이 탄생했다. 이제 우리는 진정한 민주국가로 변모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앞으로만 가지 않았다. 희대의 사기꾼 이명박이 어느 날 갑자기 대통령이란 이름으로 우리들 앞에 나타났고, 다시 5년 뒤 독재자 박정희의 딸이 그 뒤를 이었다. 10년의 역사는 우리 정치를 다시 20, 30년 뒤로 후퇴시켰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일상화되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위대했다. 2016년 겨울 광화문엔 수만 수십만의 시민들이 촛불로 밤하늘을 수놓았다. 그것은 무혈 명예혁명이었다. 나는 그 시절 런던에서 매일같이 격문을 발표했고, 서울로 돌아와 2017년 초 촛불대열에 합류하였다. 이것이 내가 유년시절부터 장년에 이르기까지 경험한 대한민국 민주화의 과정이다.


소설 <아버지의 새벽>

소설가 김상수는 이 과정을 하나의 소설로 만들었다. 대한민국이 경험한 비극적 역사 속에서 스러져 간 두 명의 아버지 그리고 그 아버지의 딸로서 앞으로 한 시대를 살아갈 딸의 이야기다소설의 스토리는 크게 복잡하지 않다. 매우 선이 굵은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 한 독립운동가가 일제 고등계 고문기술자로부터 고문을 받고 죽는다. 그에겐 유복자 있었으니 그 이름 김재오. 김재오는 성장해 신문사 기자가 되고 10.26 직전 일본인 사진기자 세이코의 한국 방문 때 가이드를 맡게 된다. 그 인연으로 둘은 가까워지고 김재오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깊은 관계 로 발전한다. 그러나 열흘도 안 되는 짧은 밀월은 10.26으로 끝난다. 김재오는 급거 귀국하고 결국 신군부에 의해 죽임을 면치 못한다. 그 사이 세이코의 몸엔 한 생명이 자라고 있었다. 또 한 명의 유복자가 탄생한 것이다. 그 이름 미아. 미아는 성년이 되어 미국에서 동아시아 고대문화사 교수가 되고 2016년 겨울 한국방문을 한다. 바로 촛불시위가 시작된 때이다.


세이코가 말하는 두 명의 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핏줄 미아

이 소설에서 작가가 말하려는 것들은 책의 말미에 있는 세이코의 아사히 포토저널리즘 수상식에서의 연설에서 거의 전부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요령 있게 이 소설을 요약한다고 해도 작가가 직접 쓴 말을 따라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이제 소설의 관련부분을 인용하면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우선 세이코가 말하는 김재오와의 인연을 들어보자.


저는 2년 전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 한국인 남자 김재오를 만나게 됩니다. 취재 가이드를 해 준 그는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인 김형호 선생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아버지의 얼굴도 모르는,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를 여읜 자식으로 유복자로 태어나 어머니의 손에 홀로 자랐습니다. 그는 신문사 기자였습니다. 기자로서 사건의 현장에서 시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애를 쓰고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박정희 정권의 언론통제는 악명 높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조국과 국토를 눈물겹게 사랑하고, 조국의 민주주의를 위해서 싸우고 있는 전사들과 연대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만 그런 남자를 알게 되었고, 그 사람과 사랑에 빠졌습니다.”(306-307).


이 소설의 모티브는 두 명의 아버지 곧 김재오와 그의 아버지 김형호의 죽음이다. 이 두 아버지 중 한 사람은 일본 군국주의의, 또 한 사람은 한국 군부독재로 희생되었다. 두 사람은 모두 고문기술자에 의해 죽임을 당했는데, 한 사람은 일본의 고문기술자에 의해, 또 한 사람은 그로부터 배운 한국 경찰 고문기술자에 의해 죽었다.


그는 지난 1월초 한국의 남쪽 바닷가에서 시체가 되어 발견되었습니다. 저는 그가 전두환 쿠데타 세력에 의해 고문 타살을 당한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내가 말하고 싶은 비극이 있습니다.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피식민지 지식인이었던 아버지는 식민지 세력인 일본 국국주의에 대항하다 일본인 특수임무 고등경찰 고문기술자에게 고문을 당하여 죽었습니다. 그 아들은 비록 식민지에서 해방된 나라라지만 또 다른 군사 압제와 싸우다가 일본인 고문기술자들에게 고문기술을 전수받은 한국 경찰로부터 고문을 당해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307-308)


세이코와 김재오의 짧은 사랑은 헛된 것이 아니었다. 하늘은 김재오의 생명을 세이코를 통해 딸 미아로 이어지게 한다. 한일 간의 관계는 이렇게 숙명적인 것이다.

 

저는 김 상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전두환 군사독재정권이 일시적으로 한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킬 수 있을지언정, 김 상의 저항정신은 한국인 시민들의 가슴속에 불꽃처럼 피어날 것이라 믿습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염원이 불꽃처럼 피어오르리라 믿는 겁니다. 그렇게 그는 죽지 않고 살아있습니다. 그는 지금 죽음의 시간을 뚫고 시퍼렇게 살아 있는 것입니다. 그의 육신은 지상에서 찾을 수 없어도 그가 남긴 생명은 여기 제 뱃속에, 자신의 대를 잇는 생명으로 꿈틀거리고 있습니다.”(308-309)


세이코가 말하는 작가의 메시지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진정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 그리고 개개인의 귀중한 생명은 어떤 폭력에 의해서도 함부로 빼앗을 수 없다는 것, 우리는 그것을 지키기 위해서는 그것을 위협하는 공포에 대해 정면으로 직시해야 한다는 것, 바로 그 중요성을 말하기 위해 작가는 이 소설을 쓴 것이다..


오늘 저는 이 자리를 빌어서 말씀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에게 있어서 진정한 자유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물음입니다. 이 물음은 한국인 김재오, 김 상이 저에게 일러주고 가르쳐준 물음이기도 합니다. 진정한 자유는 자유를 위협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두려움에 대한 정체를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진실에 대한 무관심에 대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경계해야 함을 우선으로 합니다. 진실에 대한 무관심이야말로 인간 인격의 가치와 존엄을 해치는 것이고 인간의 자유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생명과 자유, 민주주의, 오직 하나뿐인 개개인의 생명의 귀중함이 어떤 그럴듯한 폭력이나 국가적 강제에 의해서 함부로 취급당하고 빼앗겨서는 안 된다는 생명의 진리와 인간의 자유, 오늘 저는 이것의 중요성을 새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309-310)


촛불로 이어지는 희망

소설 전부를 읽은 독자라면 작가가 이 소설을 쓰게 된 직접적 계기가 2016년 말의 촛불시위였음을 알게 될 것이다. 2016년 겨울 수 십 수 백 만의 인파가 광화문에 촛불을 들고 모였다. 이것은 단지 한 정권을 무너뜨리기 위한 퍼포먼스가 아니었다. 그것은 우리 민중의 염원을 실현하는 하나의 굿판, 눈물과 환희가 동시에 교차하면서 굴곡진 한 시대를 마감시키며 새로운 시대로 나아가는 거대한 에너지의 분출이었다.  촛불은 횃불이 되어 사람들은 마침내 긴 어둠의 터널을 통과해 벅찬 새벽을 맞이하였다. 한국인의 핏줄 미아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을까. 감동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녀는 그것을 통해 한국인을 다시 보았다. 그가 말하는 한국인 그리고 광화문의 촛불 이야기를 들어보자.


”“마마, 오늘 세 번째 이메일이에요. 한국을 올 수 있어서 너무 기뻐요. 저는 한국인이 중국인이나 일본인에 비해 더 자유로운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보다 자연에 가까운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여기 사람들은 아주 솔직하고 자기감정에도 충실한 것 같아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할 말을 숨기고 사는 일본 사람들과는 한국 사람들은 많이 달라요.”(323)


박물관에서 나와 광화문 광장으로 갔어요.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촛불시위에 나갔어요. 쌀쌀한 가을 날씨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일제히 거리로 나왔어요. 마마 한국 뉴스를 보고 있지요? 나는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 평화적으로 노래를 하고, 어린 학생들, 아저씨, 아주머니, 아기를 안은 주부, 샐러리맨, 여러 사람들이 마이크를 붙잡고 민주주의를 말하고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모습은 놀라웠어요. 한국 사람들은 참 용감한 사람들인 것 같아요. , 저도 반쯤은 한국 사람이죠? 마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한국 경찰들한테 붙잡혀 가지는 않을게요....”(326)


이제 세이코가 한국인 전체에 전하는 마지막 응원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아니 이것은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두 명의 아버지가 우리 모두에게 말하는 간절한 염원이다. 이제껏 새벽을 열지 못하고 미명 속에 갇혀 있던 김형호와 그의 아들 김재오가 드디어 새벽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는 소리다.


“‘사랑하는 한국인 여러분, 여러분은 오늘날 일본 사람들은 도저히 이룰 수 없었던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던 분들입니다. 그 소중한 민주주의를 여러분은 이번에는 꼭 지켜내시리라 믿습니다. 여러분의 일본인 친구 세이코는 간절하게 빌고 응원합니다. 20161029.”(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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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은 김재오나 세이코와 같은 시대를 살아온 사람들이 읽는다면 특별한 감동을 받을 것이다. 지난 40-50여 년의 역사가 주마등처럼 지나가면서 다시금 무언가 결심의 시간을 줄 것이라 믿는다. 물론 이 소설은 그들의 후배들, 이제 대한민국의 주인공으로 자라나는 청년들이 읽어도 좋다. 그들에겐 선배들이 어떤 꿈을 갖고 살았는지, 어떤 대한민국을 만들려고 노력했는지를 알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소설을 쓴 김상수 선생의 노고에 감사함을 전한다.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

검찰권 행사 이대로 둘 순 없다


김은경 전 환경부장관이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직을 강요했다는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되었다. 이 사건이 과거 유인촌 문화부장관이 전임정부 시절 임명된 산하단체장을 찍어냈던 사건과 비견될 수 있는지 의문이지만,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당시 유장관은 아무 일 없이 장관직을 끝냈다. 과연 검찰의 영장청구가 정상적인지, 과도하지는 않은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초기부터 검찰을 대하는 방법이 전임 정권과는 판이했다. 전임정권은 검찰을 청와대의 하명 수사기관으로 완벽하게 복무시켰다. 검찰을 잘 아는 비서실장(김기춘)과 민정수석(우병우)를 통해 검찰인사를 장악하고 그들의 측근을 핵심 포스트에 포진시켰다. 그런 이유로 검찰은 곧잘 정권의 구미에 맞는 정치적 사건을 골라내 수사했고, 정권이 원하는 방향으로 결론을 냈다. 이것이 촛불탄핵의 원인 중 하나였다.

문재인 정부는 전임 정부와 같은 방식의 검찰 길들이기를 완전히 포기했다. 그것의 상징적 표징은 학자 출신의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의 조합이다. 이 정부의 관심은 오로지 검찰을 제도적으로 개혁하자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을 통해 검경 간을 견제와 균형의 관계로 만들어 형사절차의 전면적 개혁을 추진하고, 공수처를 만들어 검찰권 남용을 직접적으로 제한하겠다는 것이다. 이런 개혁은 검찰출신이 민정수석과 법무부장관을 맡는 한 불가능하다는 인식 하에, 대통령은 두 명의 학자를 기용했다. 이것이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정치의 핵심이다. 

그런데 이 선의정치가 지난 2년 동안 철저히 악용되고 있다. 때론 검찰이 조직보호를 위해서, 때론 정치권과 언론이 정권을 공격하기 위해서, 심지어는 비리위기에 몰린 개인이 몰락을 모면하기 위해서 이것을 이용한다.

현재의 분위기에선 청와대가 정치적으로 흐르는 검찰 수사에 조금도 관여하기 어렵다. 만일 어떤 사건에서 청와대가 검찰 수사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갖는다면, 검찰은 반발하고, 야당과 보수언론은 부당한 개입이라면서 대통령을 공격하는 소재로 삼기 십상이다. 청와대가 할 수 있는 일은 고작 대변인을 통해 우려를 표하는 것인데, 그것마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비난의 십자포화를 쏘아댄다. 전임 정권에선 감히 있을 수 없는 일이 이 정부에선 당연하다는 듯이 속절없이 일어나고 있다. 이런 일이 지속되다보니 지지층마저 청와대의 무능을 탓하는 상황이 되었다. 

대통령제 국가에서 검찰 권력을 적절하게 통제하는 것은 종국적으로 대통령의 몫이다. 우리나라의 법은 대통령의 그 의지를 법무부장관을 통해서 관철시키도록 하고 있다. 장관은 구체적 사건에 대해서 검찰총장을 지휘할 수 있다. 이런 원칙에 따라 이제 뭔가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노무현 정권의 실수가 그대로 재현될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 집권 3년 차 곧 집권 2기에 들어가면서 청와대의 검찰권 통제방식을 근본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

나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의정치가 종국적으로 빛을 발하길 기대한다. 고통의 과정이 뒤 따라 온다고 해도 과거와 같이 청와대가 검찰권을 직접 장악하면 절대로 안 된다. 그것이야 말로 촛불혁명에 대한 모독이다. 청와대는 제도개혁에 집중해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민정수석은 검찰출신 아닌 (사법의 큰 숲을 볼 줄 아는) 법률가나 법학자가 맡는 것이 당분간 필요하다. 

하지만 법무부장관은 그렇지 않다. 법무장관은 대통령의 선의정치를 검찰권에 직접 반영시켜야 할 지위에 있다. 특정 사건에서 무리하고 부당한 수사가 진행된다면 그것을 통제해야 할 임무가 있다. 그것을 위해선 학자출신의 장관은 적절치 않다. 그것은 검찰을 잘 아는 (소위 그립이 강한) 법률가가 할 일이다. 법무조직에 긴장감을 주고 인사권과 지휘권을 적절히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법무장관을 맡음으로써 대통령의 검찰개혁의 의지를 실천해야 한다.(2019. 3. 23)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

엄중한 정치현실에 한마디 합니다



한동안 정치에 관해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속은 부글부글 끓었지만 그래도 무언가 될 거라는 막연한 낙관론을 믿고 잘 되기만 빌었습니다. 그러나 오늘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임계점에 도달했습니다. 한마디 해야겠습니다.

요즘 우리 정치를 돌아보면 구한말 비분강개한 지사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자신의 힘으론 국가의 위기를 어찌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크게 울부짖은 다음, 가슴에 비수를 꽂은 그 마음 말입니다.

관 뚜껑을 닫고 못을 쳐 황천으로 보내져야 할 자가 다시 일어나 정권을 잡겠다고 합니다. 역사의식이나 정의감은 눈을 씻고 보아도 찾을 수 없는 자가 촛불시민의 열망인 개혁 작업을 허구한 날 막고 있습니다. 어이상실한 일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정당의 최근 지지율이 지난 2년 중 최고치에 도달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현재의 정치지형이 촛불시민의 의사가 반영된 것이 아니라고 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 현실입니다. 아무리 이 극우정당이 국회를 막고 있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 여당도 책임이 없는지 철저히 반성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통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정치에선 선한 사람의 의지가 항상 통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때론 교활해야 하고 때론 잔인해야 하는 정치의 속성을 우리(대통령, 정부여당, 지지세력)는 멀리했습니다. 우리는 집요하지 못했고, 결정적 순간에 집중하지 못했습니다.”

이 시기 대통령과 정부 여당 그리고 우리 시민들에게 간절한 마음으로 요구합니다. 허리띠를 졸라매고 이 상황을 돌파합시다. 경제를 살리고 한반도의 평화를 정착시킵시다. 

그러기 위해서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최고의 인재를 배치해야 합니다. 좀 더 유능하고, 좀 더 집요하고, 좀 더 강단 있는 사람들을 장관으로, 청와대 참모진으로 불러들여야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도의 개각으론 안 됩니다. 능력이 안 되는 장관들과 청와대 참모들은 스스로 옷을 벗어야 합니다.(2019. 3. 21)


Posted by 버티 박찬운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