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와 인접 영역 전문사들과의 전쟁, 그 근본적 해결책을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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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국회 본회의에서 세무사법 개정안이 통과되었다. 변호사에게 자동적으로 인정된 세무사 자격을 폐지하는 내용이었다. 대한변협 회장 및 임원들이 의사당에서 삭발식까지 하면서 반대하였지만 그것을 막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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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엔 이 개정은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 이 개정 전에도 변호사들은 세무사 자격은 있지만 세무사 등록을 못하는 규정 때문에 변호사들이 세무대리 업무를 하는 데 지장을 받았다. 그렇다고 이번 개정으로 변호사가 완전히 세무대리 업무를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다. 세무사들의 집요한 요구로 변호사의 세무사 등록이 막혔고, 어제 드디어 세무사 자격 부여 규정마저 삭제되었지만, 세무사 등록을 하지 않아도 변호사에게 세무대리 업무를 허용하는 세무사법 20조1항은 다행히 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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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나는 어제 통과된 세무사법 개정안의 의미를 자세히 해설할 생각은 없다. 그에 대해선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여기에선 변호사들과 인접 영역 전문사(변리사, 세무사, 관세사, 공인중개사 등등)들 간의 영역 싸움을 어떻게 하면 조정 정리할 수 있을까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 자신이 변호사 출신이고 로스쿨에서 미래의 법률가들을 가르치는 한 사람이기에 이 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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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시민을 위해 이 문제에 대해 약간 배경설명을 하는 게 좋겠다. 왜 변호사들과 인접 전문사들 간에 영역 다툼이 일어나고 있는가. 과거엔 이런 문제가 전혀 없었다. 그 이유는 변호사들의 수가 적었기 때문이다. 내가 변호사를 처음 시작한 1990년만 해도 전국 변호사 수가 2천 명이 채 안 되었다. 변호사는 소송사건만 가지고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고 인접 영역에 거의 관심을 두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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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더 흥미로운 것은 그 당시 대부분 인접영역 전문사법(세무사법, 변리사법 등)은 변호사들에 대해 특별대접을 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변리사법은 변호사에게 자동 변리사 자격을 주었고, 세무사법도 마찬가지로 변호사에게 자동 세무사 자격을 주었다. 그래서 언제든지 변호사가 이들 영역에 관심만 가지면 변리사로, 세무사로 등록해 소송업무 외의 업무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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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런 상황이 지난 20년 동안 확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변호사 수가 급증한 것이다. 지금 전국 변호사 수가 2만3천명이다. 나의 변호사 초년시절과 비교해 10배 이상의 증가다. 그 주원인은 로스쿨의 도입에 있다. 로스쿨 도입 후 변호사는 매년 1500명씩 양산되고 있다. 3만 명이 되는 것도 이제 초읽기에 들어갔다. 전 세계에서 이렇게 변호사 수가 증가하는 나라는 대한민국 밖에 없다. 그러니 변호사들이 주로 해오던 소송사건을 통해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변호사들이 다른 출구를 찾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당연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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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변호사들이 다른 출구를 찾아 나가려고 하니 그것을 막는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인접 영역 전문사들이 자신들의 영역으로 들어오는 변호사들을 막기 위해 발 벗고 나섬으로써 한바탕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 변호사 수가 적을 때는 자동적으로 자격이 부여된 변리사, 세무사 등이 이젠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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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다 이들 영역 전문사들은 변호사들의 고유영역인 소송업무까지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법무사는 소액사건, 세무사는 세무사건, 변리사는 특허침해사건의 소송업무를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이러니 변호사들이 참을 수 있겠는가. 임계점을 넘은 것이다. 연구자 출신 로스쿨 선생들은 이런 사정을 제대로 모른다. 그러니까 학생들도 지금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 그 심각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오로지 그들에게 지금 관심은 변호사가 되는 일밖엔 없다. 사실 로스쿨이나 학생들의 미래를 생각하면 로스쿨 선생이나 학생들은 연일 국회 앞에서 데모를 해도 시원치 않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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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설명은 이 정도로 하자. 그럼 이 상황을 해결할 묘책은 없을까? 변호사들은 로스쿨이 만들어졌으니 더 이상 인접영역 전문사 제도는 필요 없다고 하면서 유사법조 폐지론을 주장한다. 변호사로서야 그렇게만 될 수 있으면 근원적 처방이 되겠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 내가 보기엔 현실적으론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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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방법이 없을까? 나는 한 가지 방법을 제안한다. 변호사들과 인접영역 전문사들이 완벽하게 선의의 경쟁을 하자는 것이다. 변호사에게 세무사 자동 자격을 부여하지 않아도 좋다. 변호사에게 변리사 자동 자격을 부여하지 않아도 좋다. 변호사에게 공인중개사 자격을 주지 않아도 좋다. 다만, 변호사가 변호사의 이름으로 세무업무도, 특허업무도, 공인중개업무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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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발 더 나아가도 좋다. 변호사들의 고유영역이라고 하는 소송대리 업무도 인접 영역 전문사들에게 개방하는 것이다. 세무사들에게 세무소송을, 변리사들에게 특허침해소송을 허용하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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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다른 이름 쓰지 말고 오로지 변호사란 이름만 사용해 인접 영역 전문사들과 경쟁을 하면 국민들이 판단해서 선택할 것 아닌가. 같은 세무업무라도 세무사에게 갈지 아니면 변호사에게로 갈지 말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레 세무전문 변호사가, 특허전문 변호사가, 부동산 중개 전문 변호사가 나올 것 아닌가. 이렇게 하는 것이 국민들 입장에선 양질의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되는 게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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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방식이 변호사들에게 세무사든 변리사든 자동으로 자격을 달라고 하는 것보다 훨씬 명분 있고, 국회를 설득할 수 있는 나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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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방식은 나만의 구상이 아니다. 변호사가 많은 여러 나라들이 지금 시행하고 있는 것이다. 연전에 내가 1년 동안 있었던 스웨덴에선 법정에서의 소송대리마저도 변호사 독점권을 인정하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곳의 제도는 능력만 있으면 누구라도 소송 대리업무를 할 수 있게 만들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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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현실은 법정 소송대리는 변호사들이 독점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법정변호사들이 되는 과정이 어렵고 그 공신력이 높기 때문에 의뢰인 스스로 소송대리를 법정변호사 외의 사람에게 의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로지 법정 소송대리 변호사인 Advocat이라는 명칭은 법정변호사 외엔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다는 제도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만, 시간이 흘러 국민들이 자연스레 변호사들을 선택함으로써, 법률시장에서의 변호사 우위를 확보한 것이다.(2017. 1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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