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기타

변희수 하사 순직 결정을 환영하며

박찬운 교수 2024. 4. 6. 07:58

변희수 하사 순직 결정을 환영하며

 

생전의 변희수 하사

 
사전투표로 관심권에서 멀어졌지만 한 가지 꼭 말해야 할 것이 있다. 이미 보도가 된 변희수 하사 순직 결정의 건이다. 지난 목요일(2024. 4. 4) 국방부는 트랜스젠더 변희수 하사의 사망을 순직으로 인정했다. 그날 나는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으로부터 그 사실을 전화로 전해 들었다. 전화를 받는 순간 만감이 교차하면서 이런 말이 입에서 저절로 나왔다. 이렇게 해서 성소수자 인권사에 새로운 역사가 써지는구나.”

잠시 이 사건의 간단한 경과를 정리해 보고자 한다. 나는 어떻게 이 사건을 만났고 무엇을 했던가. 이 사건이 이런 결론에 이를 때까지 어떤 이들의 헌신이 있었을까.

변하사는 군 복무 중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2020. 1. 22. 국방부로부터 강제 전역처분을 당하였다. 인권위는 2020. 12. 14. 이 강제처분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국방부장관에게 취소를 권고하였고, 그 후 법원도 2021. 10. 7. 위원회의 권고 취지와 위 전역처분을 취소하였다. 이 과정에서 변하사는 복직하지 못한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다가 2021. 2. 27. 사망하였다. 이에 대해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22. 4. 25. 피해자가 전역처분을 당한 후 현실에 대한 절망으로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고 판단하며 국방부장관에게 피해자의 사망을 순직으로 심사하도록 요청하였다. 그럼에도 국방부는 2022. 12. 1. 피해자에 대해 순직이 아닌 일반사망으로 결정하였다. 이 결정에 ‘변희수 하사의 복직과 명예회복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실무는 군인권센터가 담당)가 다시 인권위에 문을 두드린 것이다. 국방부가 이미 순직을 인정하지 않는 결정을 하였지만 인권위가 순직으로 국방부에 권고하면 관련법에 따라 국방부는 다시 심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위 과정에서 나는 인권위 상임위원으로서 변하사 사건과 관련해 이미 두 번의 주요한 결정을 한 바 있고 모두 주심위원으로 일했다. 하나는 변하사가 성전환수술을 하고 난 뒤 전역처분이 임박해지자 인권위에 진정을 했을 때인데, 인권위는 국방부에 진정사건이 끝나기 전에 전역처분을 하지 말라는 긴급구제 결정을 한 바 있다. 나는 이때 주심 상임위원으로 결정문을 썼다. 또 하나는 진정사건 본안의 소위원장(침해구제제1위원회)으로서 이 사건을 전원위원회에 회부했고 이어 전원위가 전역처분이 위법하다는 결론을 내자, 주심위원으로 지정돼 그 결정문을 작성했다.

이 사건 곧 변희수 하사의 사망을 순직 처리해줄 것을 권고해 달라는 진정은 내가 임기 말 군인권보호관으로 일하는 과정에서 제기된 것이다. 진정사건의 조사업무를 맡고 있는 군인권보호국 담당자는 내가 퇴임하기 전에 이 사건 결론을 내야 한다는 생각에 밤잠을 설치며 사건을 정리해 내가 위원장으로 있는 군인권보호위원회에 안건을 상정했다. 불과 퇴임 닷새 전의 일이었다. 군인권보호위의 논의는 쉽지 않았다. 한 위원이 의결에 강력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만장일치가 안 되면 안건을 전원위로 보내야 하는 상황이고, 그렇게 되면 내 퇴임 전의 결정은 물 건너가는 상황이라, 나로선 필사적으로 이 위원을 설득해야만 했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3인 만장일치로 국방부가 순직으로 다시 재심사해야 한다는 권고를 하게 된 것이다.(이 내막에 대해선 내 책 ‘기록하지 않으면 존재하지 않는다’ 35-44에 자세히 언급해 두었음) 이번 국방부의 순직 결정은 이 권고를 수용한 것이다.

나는 이 사건의 경과를 되돌아보며 이 결과를 만든 여러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린다. 인권이란 이런 사람들의 크고 작은 노력에 의해 조금씩 향상되는 것이다. 이 사건의 경과를 회고하면서 그들을 한 사람 한 사람 호명해 본다.

변희수 하사. 그의 아픔을 무엇이라 말하랴. 그는 트랜스젠더임을 스스로 세상에 고백했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죽음으로 항거했다. 그의 이름은 영원히 우리들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이다. 고인의 명복을 빈다.

군인권센터를 비롯한 공대위 참여 단체. 사건 초기부터 트랜스젠더 변하사를 굳건히 지원했다. 특히 군인권센터(임태훈 소장)의 지칠 줄 모르는 지원은 이 사건을 사회적 이슈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이들 지원단체의 진정이 없었다면 이런 결과는 애당초 불가능했을 것이다.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 변희수 하사 순직을 처음으로 권고한 기관이다. 이 위원회의 권고는 국방부에 의해 수용되지 않았지만 이 권고가 있었기 때문에 인권위가 쉽게 사안을 파악하고 권고 결정을 할 수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변희수 하사와 관련되어 국방부의 전역처분을 인권침해로 인정했고(그 과정에서 긴급구제 결정도 있었음), 그 뒤 순직처리를 해야 한다는 취지의 재심사 구제 결정을 했다. 그 과정에서 사건을 담당한 조사관들의 헌신적인 활동이 있었다. 인권위원들은 그 결과를 동의하고 확인했다. 나는 좀 더 설득력 있는 결정문을 쓰기 위해 임기 마지막 날까지 힘썼다.

국방부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 사실 나는 이번 결정을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요즘 인권위 권고를 정부기관에서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풍조가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 분위기에서 이런 결정이 나온 것을 보면 심사위에 인권의식이 높은 분들이 있는 모양이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다시 한번 변희수 하사의 명복을 빌며, 부디 이 사건이 대한민국 성소수자의 인권사에서 길이 기억되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주춧돌이 되길 기원한다. (2024.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