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법인 ‘함께 하는 빛’을 창립하며
어제 저녁 한 모임에 나갔다. 오랜만에 만나는 옛 동료들과의 뜻깊은 행사였다. 사단법인 ‘함께 하는 빛’(함빛) 발족을 위한 창립사원총회였다. 20여명의 변호사, 교수, 연구자들이 모였다.
함빛의 발족에 얽힌 이야기를 하려면 몇 밤을 새워도 하기 힘들지 모른다. 지난 13년의 역사가 오롯이 담겼기 때문이다. 여기에 그 출범을 기념하기 위해 간단히 그 경과를 기록한다.
2004년 5월 초 나는 난생 처음으로 소록도에 갔다. 일본 변호사와 큐슈의 어느 방송기자가 동행했다. 당시 일본변호사들은 일제강점기에 소록도에 강제격리되었던 한센인들에게 일본의 관련법에 따라 보상금을 받아주기 위해 보상소송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을 하기 위해선 한국의 변호사들의 도움이 필요했는 데, 나에게 그 일을 함께 하자고 제의가 왔던 것이었다.
그 제안을 받고나서 나는 몇 달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머뭇거렸다. 엄두가 나질 않았고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순간 오랜 기간 고생할 것 같은 부담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집요한 요청을 끝까지 거절하지 못했고, 드디어 그날 소록도를 가게 된 것이다.
그 방문으로 소록도보상소송에서의 한일변호사들의 연대는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 나는 방문 후 대한변호사협회에 변호단을 만들자고 제안했고(당시 나는 대한변협 인권위 부위원장이었음), 그것이 받아들여져, 일본소록도보상소송 변호단(단장 박영립 변호사)이 만들어졌다. 나는 그 변호단의 사무국장(간사)를 맡았다. 그 후 우리 변호단은 일본 변호사들과 함께 소록도에 수시로 내려가 일제 강점 기간 중 그곳으로 끌려왔던 할아버지, 할머니를 만나 진술서 작업을 했고, 그것을 기초로 동경지방재판소에 소장을 접수시켰다.
첫 재판이 열린 2014년 10월 25일 한일 변호단은 피해인 원고들과 함께 일본변호사연합회에서 동경지방재판소까지 도보로 이동하는 ‘입정행동’ 행사를 가졌다. 그날 나는 법정에서 일본변호단과 함께 원고대리인석에 섰다. 일본 변호사 자격이 없기 때문에 대리인 자격이 아닌 원고들의 통역자격으로 섰던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내 인생에서 그런 순간은 다시 오지 않을 것 같다.
이렇게 시작된 소록도보상소송은 그 뒤 많은 우여곡절을 겪는다. 함께 시작된 타이완의 낙생원 사건은 1심에서 승소했는데, 소록도 소송은 패소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한일변호단은 이것을 시발로 일본 의회를 움직여 관련법 개정운동에 나섰던 것이다. 서울 파고다 공원에서 일본 소송의 부당성을 알리는 집회를 했고, 시민사회에 알리는 작업에 돌입해, 10만 명이 넘는 서명을 받아 일본 의회에 보냈다.
지성이면 감천인지, 이런 노력 끝에 일본 관련법이 개정되었다. 한국 소록도 격리대상자도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이제껏 보상을 받은 사람들이 590여 명. 1인 당 1억 가까운 돈이 지급되었다. 수 십 년 간 문제된 일본군위안부를 생각하면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식민지 시대에 일본의 잘못을 일본정부가 법적으로 인정하고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한 첫 번째 케이스다. (참고로 소록도 보상소송에 관한 자세한 이야기는 나의 책 ‘경계인을 넘어서’에서 볼 수 있음)
우리 변호단의 일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 여세를 몰아 한국 내에서 한센인의 권익보호를 위해 국가인권위원회에 호소했고, 국회를 움직여 한센인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었다. 그것만이 아니다. 몇 년 전엔 한국 내에서 한센인을 상대로 일어난 대표적 인권침해라고 생각된 단종낙태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변호단은 530여 명의 피해자를 대리해 이 소송을 제기했고 최근 대법원은 국가의 책임을 인정했다. 변호단이 이룬 획기적 승리였다.
창립총회가 끝난 뒤 회식 자리에서 애송시인 롱펠로우의 '인생찬가'를 낭송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변호단이 벌린 13년의 기나긴 활동이 끝나가고 있다. 우리 사법사에서 이렇게 장기간에 걸쳐 여러 변호사들이 변호단을 만들어 공익인권소송을 벌린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어제 우리의 행사는 이런 활동을 자축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변호단은 13년의 활동을 마감하면서 최근 매우 귀중한 결정을 했다. 우리들의 공익인권변호 활동을 계승하기 위한 사단법인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두 개의 소송을 통해 변호단이 확보한 사례금을 참여 변호사들이 나눠 갖는 게 아니라 그것을 온전히 우리 사회의 공익인권소송 등을 위한 마중물로 내어놓자는 결정이었다. 우리가 지난 13년 함께 했기 때문에 세상에 빛과 소금의 역할을 했으니 그것을 이 사단법인으로 승화해 보자는 결정이다. 그래서 법인 명칭도 ‘함께 하는 빛’이라 지었다.
어제 밤 창립모임으로 함빛은 위대한 여정의 첫발을 디뎠다. 앞으로 함빛의 여정이 어떻게 될지 참여하는 나로서도 자못 기대하는 바가 크다. 또 하나의 빛을 만들어 낼 것인가? 나는 그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의미 있는 사단법인 함빛의 첫출발을 기념하기 위해 여기에 창립사원들의 이름을 올려본다. 김성기(전 서울변호사회 회장, 함빛 초대 고문), 김준우, 민경한, 박영립(초대 이사장), 박종강, 박찬운, 서중희, 양정숙, 오하나, 이영기, 이정일, 장완익, 장철우, 정근식(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정은주(한겨레 신문사 기자), 조영선(변호단 간사), 주윤정, 차규근, 최용근, 최원규(전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한석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