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기타

일본군위안부 합의에 관한 어느 법률가의 4번째 고언

박찬운 교수 2015. 12. 31. 06:27

일본군위안부 합의에 관한 어느 법률가의 4번째 고언
“왜 이런 기본적 질문을 하지 않는가”


(한 해의 마지막 날 좀 낭만적인 글을 쓰고 싶었지만 공을 위해 사를 접기로 한다. 나로선 많이 애석한 일이다.)


법관이 사안을 판단하는 순서는 사안의 형식적 요건을 우선 판단하고 그 다음 실질적 요건을 판단한다. 만일 사안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하면 그 사안의 판단은 그것으로 끝난다. 사건을 간단히 각하하고 만다. 더 이상 본안판단(실체적 요건을 판단하는 것)을 위해 힘쓸 필요가 없다.


우리가 이번 일본군위안부 한일정부 간 합의에 대해 판단하는 방법도 마찬가지다. 우선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 합의의 형식적 절차를 주목해야 한다. 이 형식이 국가 간 합의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을 우선적으로 문제 삼아야 한다. 합의의 내용은 그 다음 문제다.


나는 이 합의를 처음 보았을 때는 이제껏 생각해 온대로 합의 내용이 국제사회에서 성노예(sexual slavery)라 불리는 반인도적 범죄에 대한 국가 간 합의로선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수준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지적했다. 그것이 이 문제에 관한 나의 페이스북 첫 포스팅이었다.


그런데 얼마 후 보도 하나를 접했다. 그것은 이번 합의에선 양국 간 합의문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저 양국 외교장관이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각자 이번 합의에 따른 결과를 발표한 게 전부이고 그렇게 된 배경에는 한국정부의 요구가 있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보도를 접하자마자 합의형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감지했다. 그것은 우리 정부가 이번 합의를 국가 간 정식 조약의 형식으로 취했을 때의 국내적 절차를 의식해 일종의 꼼수를 부린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 대해 우리 외교당국이 해명할 것을 촉구하는 글을 썼다. 이것이 나의 두 번째 포스팅이다.


어제 나는 이 문제에 관해 세 번째 포스팅을 했다. 그 내용은 전후 사정을 보건대 이번 합의는 조약이 아니고 정치적 선언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만일 내 말이 맞다면 이것은 매우 중대한 국면을 맞는 것이고 이 합의를 반대하는 측으로서는 향후 행동방향을 정하는 데 있어 새로운 출구가 보이는 것이다.


마침 어제 문재인 대표는 이번 합의가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라고 선언했다. 이것은 이 합의를 조약이라 전제하고 그 내용이 국민의 권리를 제한하는 성격을 가지므로 국회 동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문대표의 주장은 법률적으론 그리 세련되지 못한 것이었다. 문대표는 우선 이 합의가 조약인지를 정부에 물었어야 했다. 그리고 만일 조약이라면 국회 동의절차를 진행하라고 요구했어야 했다.


우리 언론의 태도는 한심하기 그지없다. 이 문제에 관한 여론이나 정치권의 반응은 홍수처럼 쏟아내나 정작 쓸 만한 기사를 발견할 수 없다. 나의 주장도 이미 기사화되었고 문재인 대표도 저런 말을 했다면 제대로 된 언론이라면 당장 외교 당국자에게 이번 합의의 법적 성격을 물어야 하지 않겠는가.


“도대체 이번 합의에서 왜 합의문을 작성하지 않았소? 이번 합의가 조약이오? 정치적 선언이오?”


왜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가. 이건 기본 중의 기본이 아닌가.

(2015. 12.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