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단상

일요 단상-잠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24. 4. 28. 08:13

일요 단상

-잠에 대하여-

 
 

빈세트 반 고흐의 '별이 빛난 밤' 고흐도 불면증에 시달렸다. 이 그림은 생 레미 정신병원에서 요양을 하던 시절(1889년 6월) 작품인데, 아마 고흐가 잠을 못 이루며 그린 것으로 보인다.

 
지금 시간 새벽 4시. 30분 전 일어나 차를 한잔하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머리가 맑습니다. 지난밤 6시간 이상 숙면을 취했습니다. 마음이 차분하고 몸에 생기가 흐릅니다. 오늘은 무슨 일이든 잘할 것 같습니다.

저는 평생 제 몸과 정신을 관찰하면서 ‘몸과 정신의 관계’를 살펴 왔습니다. 이 관찰을 통해 얻은 결론은 몸은 정신의 기초라는 자명한 원리입니다. 몸과 정신은 분리될 수 없습니다. 몸이 부실하면 정신도 부실합니다. 몸이 단단하면 정신도 단단합니다.

몸과 정신이 이어지는 데 잠의 역할이 큽니다. 잠은 몸이 정신으로 이어질 때 사용하는 통로입니다. 잠은 몸과 정신의 상태를 알려주는 알람이기도 합니다. 잠을 잘 자면 몸과 마음이 생기를 회복합니다. 잠을 못 자면 몸도 마음도 망가집니다.

저는 지난 몇 년간 불면증으로 고생했습니다. 잠이 오지 않거나 잠이 들어도 중간에 여러 번 깨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증상이 심각해져 병원을 찾았고 수면제와 신경안정제를 복용했습니다. 잠이 부실해지니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미각을 잃어갔고 눈이 침침해지더니 기억력마저 급속히 나빠졌습니다. 육체적 욕망도 약해졌습니다. 마음은 자주 울적해지고 치매의 전조인 듯 건망증이 심해졌습니다. 이러다간 정년을 채우지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 자주 불안해지기도 했습니다.

작년 가을 수면다원검사를 해보니 상태가 심각하다는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권유로 양압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기계를 차고 잠은 잔다는 게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지만 익숙해지려고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것을 쓰고 눈을 감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바로 잠에 빠집니다. 잠자는 동안 습도를 유지해 주니 감기에서도 해방이 되었습니다. 지난겨울 남미여행을 할 때도 그것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여행 내내 큰 어려움 없이 잠을 잤습니다. 여행이 끝날 무렵 그동안 복용해 왔던 신경안정제를 완전히 끊었습니다. 불면의 긴 터널이 드디어 끝났습니다.

잠이 정상으로 돌아오면서 몸과 정신이 안정을 찾아갑니다. 잠을 잘 자고 운동을 정기적으로 하니 몸이 조금씩 단단해집니다. 마음도 차분해지면서 뭔가를 해야겠다는 의욕이 올라옵니다. 새로운 연구 주제가 떠오르고 책상 앞에서 시간을 죽이는 일이 줄어들었습니다. 아직 과거와 같은 상태로 회복하진 못했지만 더 좋아질 거라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잠이 정말로 중요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잠에 문제가 생기면 몸과 마음에 문제가 생깁니다. 이럴 때는 우선 잠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제 경험이 알려주는 살아 있는 지혜입니다. (2024. 4.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