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 -감정이 지배하는 정치-

박찬운 교수 2018. 4. 30. 09:32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
-감정이 지배하는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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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행동은 이성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정념이란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이성적 존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배우지만 그 소득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배움과 관계없이 인간은 감정에 의해 좌우되니 감정만큼 중요한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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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행동결정엔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줍니까. 저도 가끔 생각해 보는 데, 흄의 말은 여전히 일리가 있습니다.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우리 마음속엔 어떤 끌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정입니다. 그 감정은 우리의 이성 활동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이성은 감정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요. 다만 그 감정은 고정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성(異性) 대한 사랑의 감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도 있겠지만 사실 그것은 어려운 일 아닙니까.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고, 이성은 바뀐 감정을 따라가니, 그것이 이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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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감정과 이성의 관계는 우리나라의 정치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정치적 판단에서 중요한 것은 논리적 이성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그 감정이 보수진보 논쟁에서 여론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정당 및 정치인 지지로 연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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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의 각종 정책, 심지어는 성공적인 남북정상 회담까지 연일 비판(비난)하는 사람들을 잘 살펴보십시다. 그 비판의 출발점은 문재인이란 사람과 민주당이란 정당에 대한 감정에 있습니다. 그들은 문재인과 민주당을 감정적으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감정 때문에 어떤 정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싫은 사람이, 싫은 정당이 내 놓는 정책에 대해선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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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이야기는 반대의 경우에도 성립합니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의 정책에 대한 찬성의 출발점도, 많은 경우, 문재인이란 사람과 민주당이란 정당에 대한 좋은 감정입니다. 그 감정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들이 내놓는 정책은 믿을 수 있고, 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꼭 좋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비판받아 마땅한 일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잘 보이지 않고, 보더라도 사람 살다보면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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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 대한 시각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경우에서든지, 북한은 믿을 수 없는 악마라고 생각하고 그런 감정을 유지하는 사람들에겐, 최근 정세에서 북한의 행동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북한의 변화하는 실상을 보지 않습니다. 그저 악마가 언젠가 실체를 드러낼 것이라 생각하면서 정상회담 결과를 폄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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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정치적 분란을 극복하고 공동체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는 이 감정의 실체를 직시하는 게 우리 문제를 해결하는 출발점이자 열쇠라고 봅니다. 민주주의 사회는 결국 다수가 결정하는 사회이므로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좋은 감정을 주느냐 여부가 문제의 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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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면에서 볼 때 문재인 대통령은 천부적인 통치술을 갖고 있습니다. 그의 언행과 자세는 상대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자극합니다. 절제된 태도와 진심어린 언행이 상대를 무장 해제시키는 것이지요. 그는 평창 올림픽 과정에서 남한을 방문한 북한 방문단을 성심으로 대했습니다. 특히 김여정의 문대통령에 대한 인상(감정)은 무척 좋았던 모양입니다. 남북이 서로 믿음을 가지고 대화를 풀어가는 데 좋은 환경을 만들었음이 분명합니다. 남이나 북이나 상대를 악한 존재라고 선입견을 갖는 상황에선 진지한 대화는 불가능합니다. 문대통령은 바로 난공불락의 이 감정선을 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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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술에서 가장 중요한 게 상대의 감정을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이것은 대통령에게만 국한될 수 없습니다. 정부와 여당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지금보다 좀 더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상대를 설득하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것은 국민의 감정선을 자극할 겁니다. 물론 이런 자세만으론, 이미 편견에 가득 차 있는 야당을 설득하긴 어려울 것이나, 아직 감정의 결단을 내리지 못한 국민들에겐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겁니다. 그들이 대통령과 여당 그리고 정부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 시작하면 그것은 지지로 연결될 것이고, 언젠가는 야당도 국민의 이 감정과 지지를 무시할 수 없게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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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분명하게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앞서 본대로 감정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문대통령과 여당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도 어느 날 갑자기 변할 수 있습니다. 단순한 실수가 나쁜 감정을 만들면 그것은 나비효과처럼 번질 수 있습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