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 10문 10답

박찬운 교수 2018. 5. 1. 10:09

4.27 판문점 선언의 국회 비준동의 10문 10답




4월 27일 남북 정상이 판문점에서 만나 합의한 판문점 선언은 우리 역사의 물줄기를 바꿀만한 중요한 거사였습니다. 그런데 합의문의 잉크도 마르기 전에 정치권에선 국회 비준동의와 관련하여 이런 저런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판문점 선언이 자칫하면 정쟁의 대상이 될 것 같아 심히 우려스럽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문제가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 하에 두 번에 걸쳐 남북 합의의 국회 비준동의 절차에 대해 글을 쓴 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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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는 바로는 이 문제에 대해 정부나, 정치권이나 분명한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국회의원들 말하는 것 보면 기본 개념도 이해하지 못하고 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제 생각을 쉬운 방법으로 다시 설명하는 게 필요할 듯싶습니다. 편하게 페친 중 한 분이 제게 질문하고 답하는 방법으로 설명 드릴 테니 이 문제 이해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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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질문: 도대체 비준이란 게 무엇입니까?

: 비준(ratification)이란 조약(국가 간의 권리 의무에 관해 합의하고 이를 문서화한 것) 체결권자가 조약의 내용을 승인하고, 체약국으로서의 의무를 다하겠다는 의사표시입니다. 우리나라에선 조약 체결권자가 헌법상 대통령으로 되어 있으므로 비준은 대통령의 권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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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질문: 그럼 국회가 조약 체결과정에서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답: 중요 조약에 대해서 대통령 비준의 동의권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대통령은 조약 중에서 중요조약에 해당하는 조약에 대해서는 비준을 하기 전에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국회는 중요조약의 ‘비준동의권’을 갖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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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질문: 중요조약이란 무엇을 말하는가요?

: 그것은 우리 헌법 제60조에 규정되어 있습니다. 동 조항에 의하면 “상호원조 또는 안전보장에 관한 조약, 중요한 국제조직에 관한 조약, 우호통상항해조약, 주권의 제약에 관한 조약, 강화조약, 국민에게 중대한 재정적 부담을 지우는 조약 또는 입법사항에 관한 조약”에 대해서 국회가 비준동의권을 행사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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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질문: 이번 4. 27 ‘판문점 선언‘에 대해 국회 비준동의를 받는 문제가 지금 논쟁 중인데, 이것은 위와 같은 조약에 대한 국회의 비준동의인가요?

답: 그것은 아닙니다. 국회의 비준동의는 원칙적으로 국가 간 조약에 대해 생기는 문제입니다. 남북한 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니기 때문에 위 헌법조항이 바로 적용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남북관계 발전에 관한 법률‘(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중요한 남북한 합의에 대해서는 국회 동의를 받도록 했는데, 지금 말하는 비준동의는 바로 그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남북 간의 중요 합의에 대해 국가 간 조약에 준하는 국회 절차를 마련했다고 보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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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질문: 남북관계발전법에 국회비준 동의 절차를 규정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이러한 절차에 특별한 문제는 없는가요?

: 이 절차는 남북 간의 합의가 있어도 정권이 바뀌거나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그 합의가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만들었습니다. 상황 변화와 관계없이 남북 합의에 법적 구속력을 부여한 것이지요. 입법 취지는 나름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의도는 좋습니다만, 법률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절차가 남쪽만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지요. 원래 국가 간 조약은 처음부터 당사국들이 체결과정에서 국내 비준절차를 전제하고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남북 합의는 그렇지 않죠. 남북 합의는 이제까지 남과 북의 (법률적 효력을 부여하기 위한) 비준절차를 염두에 두지 않고 대표자들이 서명했거든요. 때문에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국회 비준동의를 받는다고 해도, 그것은 남한에 대해서만 법적 효력이 있는 것이지, 북쪽까지 법적 효력이 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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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질문: 전문가들 사이에선 우리가 국회비준 동의를 받으면 1972년 동서독이 맺은 동서독기본조약과 같은 남북합의가 된다고 하는데, 그렇게 볼 수 있는가요?

답: 우리와 동서독의 관계는 매우 다릅니다. 동서독기본조약은 동서독이 그 조약에 체결할 때 국가 간 조약과 같은 형식을 취했고, 아예 조약 내용 속에 양국의 비준절차를 거친 다음 효력을 발생한다고 규정했습니다. 이번 판문점 선언은 그런 절차를 예상하지 않은 정상 간의 합의이므로 동서독기본조약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판문점 선언을 동서독기본조약과 같은 방식으로 체결하려고 했다면, 합의 내용 중에 비준절차와 관련한 조항을 넣었어야 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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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질문: 그럼 교수님께선 이번 판문점 선언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십니까. 국회 비준동의를 받아야 하는가요?

: 이번 선언은 한반도 긴장완화와 향후 통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역사적인 합의입니다. 따라서 이것이 남한 내부의 정쟁대상이 되지 않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정쟁 대상이 되면 이 합의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여야가 무리 없이 합의를 한다면 남북관계발전법에 따라 국회 동의절차를 거치는 것은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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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질문: 꼭 비준동의 절차를 밟을 필요는 없다는 것인가요? 만일 그렇게 되면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게 아닐까요?

: 남북관계발전법의 해석으로도 이 선언이 반드시 국회 비준동의를 밟을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법률에 의하면 재정적 부담이나 입법사항에 관한 합의라고 했는데, 이번 선언으로 당장 이런 문제가 발생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대통령이 그렇게 판단하고 이 법률을 적용시키지 않을 수 있다고 봅니다. 이 법률이 제정되고 나서 남북 합의가 여럿 있었지만 국회 동의를 받은 예는 없습니다.

또한 저는 국회 비준 동의절차를 밟지 않는다고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판문점 선언은 그 합의가 이행되는 과정에서 국회가 관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행을 위해 재정적 부담이 되는 경우나 법률을 통하지 않고서는 이행할 수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경우엔 어차피 앞으로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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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질문: 국회의 비준동의를 받아야 역사적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요?

답: 저는 꼭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역사적으로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꾼 정상회담의 결과가 바로 조약으로 합의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일단 정치적 합의를 선언하고, 후속 조치로서 조약을 맺는 방법을 택한 게 많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연합국 정상이 모여 합의한 카이로, 얄타, 포츠담 선언 등이 바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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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질문: 마지막 질문입니다. 교수님께선 이번 판문점 선언이 정쟁대상이 될 상황이면 국회 비준동의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게 되면 남북합의가 정치적 상황에 따라 또 휴지 조각이 되는 게 아닐까요? 그것을 막기 위해 국회 동의절차를 밟자는 것인데요.

: 이게 핵심적인 질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남북 합의는 국회 비준 동의를 받는다고 해도 이명박이나 박근혜 같은 정권이 다시 나오면 도로아미타불이 될 겁니다. 그런 정권이 다시 탄생하면, 우리에게 법적 효력이 있는 남북합의가 있다고 해도, 어떤 구실을 들어서라도 원점으로 되돌릴 겁니다. 따라서 우리 정치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남북 합의의 법률적 효력이 아니라 판문점 선언을 준수할 수 있는 정권의 재창출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남북 합의를 어떤 법적 문서로 만든다고 해도 소용없는 일입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면, 국회 비준동의가 없어도, 이번 판문점 선언의 역사적인 의미는 퇴색되지 않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