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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박찬운 교수 2018. 11. 6. 13:05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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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본문은 3년 전 이곳에 올린 글이다. 오늘 아침 어느 페친이 이 글을 읽는 바람에 나도 덩달아 보게 되었다. 이 글을 쓰고 어느새 3년이 지났는데... 나는 그동안 어떻게 살아 왔는가. 잠시 반성하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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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일요일 아침이다. 이 적막한 시간과 공간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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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젠 길게 산책했다. 평소 만보 걷기가 일상이지만 그 두 배를 훨씬 넘겼다. 걸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가끔은 벤치에 앉아 메모도 했다. 그 메모했던 것을 여기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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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으로 직장을 옮긴 지 어느 새 9년. 나름대로의 꿈이 있었다. 진리를 추구한다는 꿈 말이다. 내가 생각했던 대학에서의 꿈은 이런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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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학은 단순한 기능을 연마하는 곳이 아니라 일반(보편) 원리를 궁구하는 곳이어야 한다.

2. 교수는 비판적 지식인이어야 한다. 아무리 바른 말 하기 어려운 세상이라도 교수만은 진실을 말해야 한다.

3. 교수는 학생을 인격적으로 대하면서 그들이 세상에 나가 비판적 지식인이 되도록 가르쳐야 한다.

4.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교수와 학생이 대학이란 공간에서 함께 공부하기 위해서, 대학은 자유의 전당이 되어야 한다.

5. 대학은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해방되어 구성원들에 의해 자치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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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이 지나는 순간, 위의 거의 모든 사항들이 대한민국의 대학에선 불가능해져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대학의 현실은 이런 것이다.

1. 대학은 일반원리를 가르치기 보다는 정부와 기업이 요구하는 기능을 가르치는 곳이 되어 버렸다. 교수는 일반원리를 궁구하는 것이 아니라 논문 쓰는 기술자가 되었다.

2. 대학에서 비판적 지식인은 자취를 감추고 있으며 있다 하더라도 학교 운영에서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3. 취업교육을 신봉하는 교수들 밑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미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져 더 이상 학생들에게 세상에 저항하라고 말하기 어렵다.

4. 모든 대학의 명운은 정부와 기업의 지원에 달려 있으니 한가롭게 대학의 자치를 말할 때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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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엄중한 현실에서, 박교수! 그대는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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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결코 그 꿈을 잊은 적이 없다. 나는 지금 이 현실을 직시할 뿐이다. 이 현실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슬프지만 그것을 인정하자.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행동만을 고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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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이 아침 말 할 수 있는 매우 단순한 결심은 이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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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것을 아끼지 말고 쓰자.’ 그것이 논문이든, 신문의 칼럼이든, 페북의 글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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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한 것을 말하자.’ 내가 만나는 학생들, 내가 만나는 그 어떤 사람들에게도 내 생각 말하길 주저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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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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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나 교수 생활 12년이 지난 지금, 나는 어떻게 살아 왔는가? 내 글을 알뜰히 읽어 온 친구들이 이 질문에 답해 주리라 믿는다.

(2018. 11.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