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류경식당 종업원 사건 딜레마와 해법

박찬운 교수 2018. 5. 23. 09:43

류경식당 종업원 사건 딜레마와 해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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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류경식당 종업원 사건을 두고 딜레마에 빠진 것이 분명하다. 정권이 바뀐 뒤 정부(국정원)가 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는 데에는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이다. 이 사건을 공작한 국정원 내의 책임자급은 이미 힘을 잃었고 그것이 종업원들의 신변 변화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철통 통제 하에 있던 그들을 언론사가 어떻게 인터뷰할 수 있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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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국정원과 통일원, 나아가 청와대)는 지금 이 사건을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뚜렷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 어제 통일부 장관은 국회에 나와 이 사건이 여전히 자유로운 의사에 의한 탈북사건이라는 기존 통일부 입장을 반복했다. 참으로 안타깝다. 왜 정부가 이 문제에 대해 이런 정도의 태도밖에 취할 수 없는 것일까? 정부 입장에서 생각하면(아니 객관적인 입장에서 생각할 때) 두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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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남북관계에서 치명적 약점으로 작용될 것을 우려한다는 점이다. 이제껏 어떤 사태에 대해서도 남과 북은 상대에게 잘못을 인정해 본 적이 없다. 잘못을 인정했을 때 남북대화에서 열세에 처할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만일 이 사건을 국정원이 개입해 종업원들을 기획 입국시킨 것으로 인정하면 정부로선 향후 남북대화 과정에서 큰 걸림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남북관계가 틀어질 때 북은 이 사건을 줄기차게 납치라고 주장하면서 남쪽을 압박할 것이다. 정부로선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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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종업원을 북으로 송환하는 것도 쉽지 않다는 점이다. 공작 입국 즉시 정권이 바뀌어 문제를 해결했다면 몰라도 이들이 들어온 지 어느새 2년이 지났다. 그 사이에 종업원들 사이에서도 의견 차이가 생겼다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종업원 전원이 송환을 바란다면 문제가 비교적 간단한데 상황이 그렇지 않는다는 점이다. 돌아가고 싶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로 나누어진 것이다. 이 상황에서 송환을 원하는 종업원만 북으로 보내는 경우 남측에 남는 종업원의 북쪽 가족의 신변이 위험해질 수 있다. 그렇다고 종업원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전원을 북으로 돌려보내기도 어렵다. 입국 경위가 어떻든 이들도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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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정부는 그저 시간이 지나 이 사건이 세인의 머리에서 잊혀 지길 바랄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이 방법이 될까?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은 비극이다. 종업원들을 북의 가족과 생이별을 시키고, 이제 와서는 나몰라 하는 형국이 되어 버렸으니, 깡패의 소행과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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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그 어떤 고려보다도 종업원들의 인권을 존중한다는 원칙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들이 남쪽으로 온 게 사실상 납치라면 그들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해 처리해야 한다. 전원이 가고자 한다면 다 보내고, 그렇지 않고 일부가 남길 원한다면 그 의사를 존중해, 북한과 협의해야 한다. 다만 그 절차는 비공개하는 게 낫다. 원칙만 발표하고 나머지는 그것에 의해 처리하되, 국민의 양해를 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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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이 사건을 불러일으킨 박근혜 정권의 책임자들(국정원, 통일부 나아가 청와대)에 대해선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는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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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는 달라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만든 이 적폐를 해결하는 게 촛불시민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거는 최소한의 기대다.

(2018. 5.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