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복지

스웨덴 재벌가의 평등기여

박찬운 교수 2015. 9. 26. 20:31
[기고]스웨덴 재벌가의 평등 기여
나는 연구년을 맞아 현재 스웨덴 룬드 소재 라울 발렌베리 인권연구소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스웨덴을 우리가 가야 할 미래로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지난 한 세기 인류는 두 가지 목표를 향해 달려 왔다. 하나는 보편적 자유이고, 또 하나는 보편적 평등이다. 전자에 치우친 나라는 자유민주주의를 채택했고, 후자에 천착한 나라는 사회주의를 실험했다. 어떤 나라도 이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성공시킨 곳은 없다. 하지만 스웨덴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쫓아 왔고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현재 스웨덴은 보수연립정당이 의회를 지배한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의 바람이 이곳까지 불어온 결과이다. 그러나 60년 이상 스웨덴의 패러다임을 만들어 온 사회민주주의의 이상은 비록 보수정권이라 해도 그 본질을 훼손할 수 없다. 평등을 지향하며 경쟁을 존중한다는 이상에서 경쟁의 가치가 다소 중요하게 작용하는 정도의 변화이다. 그럼 스웨덴 패러다임을 실현하는 그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 원인 중 하나를 우리와는 사뭇 다른 역할을 해온 스웨덴 재벌에서 찾고자 한다. 발렌베리 가문, 이것은 스웨덴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전설이다. 150여 년 전부터 오늘날까지 스웨덴 경제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불세출의 가문이다. 지금도 스웨덴 GDP의 30%, 스웨덴 주식시장의 시가 총액 40%에 해당하는 돈을 이 가문이 움직인다고 한다.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웬 공룡재벌이 있다는 말인가. 그 답이 바로 스웨덴 패러독스에 대한 것이다. 공룡재벌이 있으면서도 그것이 오히려 국민의 평등에 기여하는 나라가 스웨덴이다. 발렌베리 가문은 두 가지로 유명하다. 하나는 부의 철저한 사회환원이다. 이를 위한 것이 공익법인 발렌베리 재단인데, 이것은 발렌베리 가문이 소유하는 모든 기업의 이윤이 최종적으로 도착하는 종착역이다. 이 재단은 공익기부를 통해 사회민주주의 국가 건설에 협조하는 역할을 무려 100년간 지속해 왔다. 매년 대학과 연구기관 등에 기부하는 기부금 총액이 지난 5년간만 무려 8500억원에 달한다. 그러니 스웨덴 과학기술은 이 재단이 책임진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번째 발렌베리 가문을 유명케 한 것은 사회적 처신이다. ‘존재하되 드러내지 않는다.’ 이 말은 웬만한 스웨덴인이라면 다 아는 발렌베리 가문의 좌우명이다. 따라서 이 가문은 기업소유와 관련하여 사회적 룰을 위반하거나 탈세를 해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린 적이 없다. 한 가지 더, 이 가문에는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이미지를 각인시킨 인물이 있다. 바로 내가 있는 연구소 이름의 주인공 라울 발렌베리다. 2차 대전 중 헝가리 외교관으로 있으면서 가스실로 끌려가는 수만 명의 유태인들의 생명을 구한 인물이다. 그는 중립국인 스웨덴의 위치를 이용하여 당시 생사의 기로에 선 유태인들에게 가짜 여권과 비자를 대량으로 발급해 줘 그들의 목숨을 구했다. 그리고 그는 전쟁 종료와 함께 홀연히 사라졌다. 라울 발렌베리는 지금 서구 사회에서 인권과 평화의 대명사다. 그의 이름을 딴 연구재단, 연구소 등이 십여 개나 있으니 말이다.

이제 문제는 우리다. 삼성 이건희 회장도 언젠가 이 가문을 방문했다고 한다. 이 회장은 발렌베리 가문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우리사회에서 재벌만큼 큰 힘은 이제 없다. 정치권력은 유한하지만 재벌은 영원한 게 현실이다. 이 상황에서 탐욕스러운 재벌이 우리사회를 지배하는 한 이 사회는 한 치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그러니 재벌이 변해야 한다. 만일 자발적인 변화가 요원하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정치권력에 다시 희망을 걸 수밖에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대선은 그 시험대다. 누가 재벌이라는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 것인가. 바로 그 사람이 차기 대통령이 되어야 할 것이다.(경향/2012. 9.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