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정치

조국혁신당의 오늘과 내일-감정의 정치에서 책임의 정치로-

박찬운 교수 2024. 4. 12. 19:43

조국혁신당의 오늘과 내일

-감정의 정치에서 책임의 정치로-

 

조국혁신당은 2024년 3월 3일 창당되었다. 사진 오마이뉴스

 
이번 총선에서 가장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것은 단연 조국혁신당이었습니다. 조국혁신당은 창당 한 달여 만에 콘크리트보다 더 단단한 양당 체제를 뚫고 당당히 두 자리 수 의원을 확보해 제3당의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요? 앞으로도 이 바람은 계속될 수 있을까요?

조국혁신당이 이렇게 삽시간에 국민들로부터 주목받는 정당이 된 것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국민의 윤석열 정권에 대한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유권자 중 상당수(약25%)가 조국혁신당이 이 분노를 담을 그릇이라 생각하고 표를 주었다.」

문제는 어떻게 유권자들이 조국혁신당을 그렇게 보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른 제3지대 정당들도 모두 윤석렬 정권을 심판해야 한다고 했지만 그들 정당은 그런 영광을 안지 못했습니다. 이것은 ‘감정의 정치’로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조국혁신당은 감정의 정치에서 결정적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데이비드 흄은 “이성은 정념의 노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인간의 행동은 이성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정념이란 감정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랜 세월 이성적 존재가 되기 위해 부단히 배우지만 그 소득은 별로 없습니다. 그런 배움과 관계없이 인간은 결국 감정에 의해 좌우됩니다. 그러니 감정만큼 중요한 게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글을 읽는 분들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의 행동 결정엔 무엇이 가장 큰 영향을 끼칩니까. 저도 가끔 생각해 보는 데, 흄의 말은 여전히 일리가 있습니다. 무엇을 결정하기 전에 우리 마음속엔 어떤 끌림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감정입니다. 그 감정은 우리의 이성 활동에 결정적 영향을 끼칩니다. 이성은 감정을 합리화하는 역할을 할 뿐이지요.

이런 감정과 이성의 관계는 정치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정치적 판단을 함에 있어 중요한 것은 논리적 이성이 아니라 감정입니다. 그 감정이 보수진보 논쟁에서 여론의 선택으로 이어지고, 정치인과 정당의 지지로 연결됩니다. 아쉽지만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정치인이나 정당의 주장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선택을 하는 게 아닙니다. 녹색정의당이 이번 총선에서 한 석도 얻지 못한 것은 그들 주장이 잘못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권자의 감정의 시야에 정의당이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의당은 애석하게도 유권자의 끌림의 대상이 되는 데 실패했습니다.

대통령이 내놓는 정책, 정당이 내놓는 공약 등에 대한 여론을 보십시오. 대통령과 특정 정당에 대해 감정적인 끌림이 없다면 어떤 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싫은 사람이, 싫은 정당이 내놓는 정책에 대해선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알고 싶지도 않습니다.

물론 이런 이야기는 반대의 경우에도 성립합니다. 특정 정치인과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도 좋은 감정에서 출발합니다. 좋은 감정이 머릿속을 지배하기 때문에, 그들이 내놓는 정책은 믿을 수 있고, 찬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내용이 꼭 좋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사실 비판받아 마땅한 일도 있습니다만, 그것은 잘 보이지 않고, 보더라도 사람 살다 보면 있을 수 있는 실수라고 하면서 그냥 넘어갑니다.

이번 선거에서 조국혁신당은 감정의 정치에서 전례 없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제가 만나 본 조국혁신당 지지자들 대부분 조국 대표에 대한 좋은 감정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국 대표가 받고 있는 형사재판과 관계없이 그를 믿습니다. 이것은 이성적 믿음이라기 보다는 감정적 믿음입니다. 그는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고 바른 사람이라는 것이지요. 이것은 순간에 생긴 감정이 아닙니다. 오랜 기간 그의 삶을 보아온 사람들의 마음속에 만들어진 신뢰의 감정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거듭된 실정으로 생긴 사람들의 분노가 조국과 조국혁신당을 향한 신뢰의 감정을 통해 강하게 반사된 게 이번 총선이었습니다.

이렇게 보면 정치에서 사람들의 감정을 내 편으로 만드는 능력은 진짜 중요합니다. 특정 정치인과 정당에 대한 좋은 감정을 만들어 낼 수 없다면 정치를 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이것이 바로 감정의 정치입니다. 이것을 잘하기 위해선 우선 사람들에게 낮은 자세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정서적 끌림의 단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의 감정선을 자극하는 것이지요. 물론 이런 자세를 갖는다고 모든 사람을 움직이진 못합니다. 이미 감정적 편견에 가득 차 있는 상대를 설득하긴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아직 선택을 하지 못한 사람들에겐 분명히 효과가 있습니다.

다만 잊어서는 안 될 것은 그 감정의 정치는 오래 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이성(異性) 대한 사랑의 감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란 게 과연 있던가요? 있다고 해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사랑의 감정은 유효기간이 있습니다. 그 감정은 변하기 마련이고, 이성(理性)은 바뀐 감정을 따라갑니다. 사랑이 지속력을 갖기 위해선 단순한 끌림의 단계에서 머물러선 안 됩니다. 서로에게 책임을 지는 관계로 이어질 때 사랑은 지속됩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속적인 지지와 신뢰는 감정의 정치를 넘어 ‘책임의 정치’로 나아갈 때 가능합니다.

그러니 조국혁신당이 명심할 것은 ‘감정의 정치를 책임의 정치’로 바꿔내는 것이 지속적 지지와 신뢰를 받기 위한 최선의 방법이라는 사실입니다. 지금 조국과 그가 이끄는 조국혁신당에 좋은 감정이 지속되리란 보장은 없습니다. 단순한 실수 하나가 나쁜 감정을 만들면 그것이 나비효과처럼 번질 수도 있습니다. 지속적 지지와 신뢰를 받기 위해 책임 있는 자세로 정치를 해야 합니다.

책임의 정치는 구호보다는 몸으로 실천하는 정치입니다. 그것은 능력을 기초로 성과를 내 국민들에게 널리 도움이 되는 정치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일 때 지지자들은 끌림을 넘어 조국혁신당의 주인이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부디 조국혁신당이 그런 정당으로 계속 성장하길 바랍니다. (2024. 4.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