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에 대하여

박찬운 교수 2017. 6. 24. 08:13

형사공공변호인 제도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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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향후 수 년 내에 수사절차에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어제는 이 관련 뉴스로 검찰을 견제하기 위해 공수처에 이어 변호처라는 새로운 조직을 만들 거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것을 접한 많은 변호사들이 황당하다는 반응을 보였고, 급기야는 변협이 반대성명까지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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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러니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들은 생소한 이 제도에 대해 이게 뭐야 하고 있고, 변호사들 사이에선 많은 오해가 있는 것 같기에, 이 문제를 오래 동안 연구해 온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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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발표한 형사공공변호인 제도란 수사절차에서 국선변호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돈 있는 사람들은 수사 초기부터 경찰서나 검찰청에 유능한 변호사를 대동해 들어가 조사를 받지만 돈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런 것은 언감 생시 상상할 수 없다. 정의를 구현하는 수사절차에서마저 불평등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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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사건에서 변호사가 제일 필요한 시점은 사건이 경찰서나 검찰청에 있을 때다. 인권침해가 번번이 일어나고, 사실상 유무죄가 갈리는 게 이 때이기 때문이다. 자백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피의자가 잘못 발을 디디면 법원에 간다고 해서 사정이 달라지지 않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이유로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야 하는 권리는 이 과정에서 특별히 보장될 필요가 있으며, 돈 없는 피의자에게는 국선변호가 제공되어야 한다. 인권 선진국이라고 하는 서구사회는 벌써부터 이것을 인식하고 수사단계 국선변호를 실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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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선 그동안 국선변호는 공소 이후 재판받을 때나 가능했다. 억울한 사람 입장에선 이미 늦은 셈이다. 변호사 단체에선 20여 년 전부터 국선변호제도를 재판단계에서만 하지 말고 수사단계에서도 하자고 주장을 했다. 지금 각 지방변호사회에서 실시하고 있는 당직변호사제도라는 게 바로 그것을 대비한 제도다. 국가가 수사절차에서 국선변호를 만들지 않으니 변호사들이 스스로 자원 활동이라도 해서 수사절차에서 변호를 하자는 것이다. 나는 이 제도의 입안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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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동안 수사절차 국선변호 제도가 만들어지지 못한 가장 큰 이유는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전국적으로 변호사 수가 너무 적어 재판절차 이외의 절차에서까지 국선변호인을 임명할 수 없었다. 또 하나는 이런 제도를 만들기 위해선, 상당한 정도의 돈이 들어가야 하는데, 당시로선 그런 재원을 만들기가 어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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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변호사 수는 이미 2만 명이 넘었다. 필요재원도 우리나라의 국력에 비추면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새 정부는 수사단계까지 국선변호를 확대 제공하겠다고 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헌법적 기본권은 형사절차 전체에 걸쳐 보장받게 되는 것이다. 국민 입장에선 이번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발표에 쌍수를 들고 환영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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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사공공변호인을 어떻게 제도화하는가는 아직 미정이다. 일부 신문에서 나온 변호처라는 새로운 국가기관 이야기는 너무 앞서 나간 기사다. 어제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박범계 의원도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했다. 아직 정해진 게 없다는 것이다. 내가 요로 요로에 확인한 바도 같다. 확실한 것은 수사절차에서의 국선변호를 하겠다는 것이지 그 방법론은 확정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니 검찰을 견제하는 새로운 국가기관 운운하며 이 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허공에다 대고 비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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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형사공공변호인은 어떻게 만드는 게 좋을까? 선진국의 예를 보면 크게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하나는 미국식 퍼블릭 디펜더(public defender) 모델이다. 미국은 연방 국가이기 때문에 연방과 주가 퍼블릭 디펜더를 별도로 운영하고, 구 방법도 단일하지 않다. 다만 연방의 경우 가장 많이 사용하는 방법이 연방항소법원이 임명하는 퍼블릭 디펜더로 보통 연방 1심 법원 단위로 사무실이 만들어진다. 지금 이 사무실에 전국적으로 수천 명의 변호사들이 일하면서 국선변호 사건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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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모델은 영국의 듀티 솔리시터(duty solicitor)라고 하는 제도다. 이것은 사무변호사(솔리시터)협회인 로 소사이어티가 중심이 되어 운영하는 것인데, 각 경찰서에 당번 사무변호사 명부를 비치하여 놓고, 조사받는 피의자가 그날의 당번(duty) 변호사에게 연락하면 그 변호사가 달려가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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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수사절차에서 국선변호제도를 만든다면 어떤 방식을 택할지는 이들 나라의 운용상황을 면밀히 검토해 우리 현실에 가장 맞는 제도를 결정해야 한다. 주무부서인 법무부도 곧 한국형 공공형사변호인의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것이다. 최근 만들어진 경찰개혁위원회도 경찰 수사에서 인권보장책의 하나로 이 제도를 논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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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들이 이 제도를 만드는 데 소외될 수 없다. 어차피 이 제도가 만들어지면 일할 사람들은 변호사니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도 변호사들이 주체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변호사들은 형사공공변호인이 관 중심의 제도가 되는 것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일리 있는 걱정이다. 그러니 이 제도를 논의함에 있어 변호사 단체는 선진국의 좋은 선례를 조사해 변호사들이 가장 잘 참여할 수 있는 안을 만들어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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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도가 향후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지금으로선 장담하기 어렵다. 하지만 국민 입장에선 이 제도가 꼭 만들어져야 한다. 당신이 경찰에 체포되었을 때 흑기사 변호사가 달려와 옆에 앉는 것을 생각해 보시라. 나는 그게 명실상부한 인권선진국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