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7)-무지개산, 기후 위기의 아이러니-

박찬운 교수 2024. 1. 21. 05:34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7)

-무지개산, 기후 위기의 아이러니-

 

 

5200미터 정상에서 보는 무지개산의 전경

 
 
마추픽추에서 쿠스코로 돌아온 다음 날은 내 선택에 따라 온전히 하루를 쉴 수 있었다.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호텔에서 식사를 한 다음 쿠스코 시내를 천천히 돌아다니며 잉카제국의 흔적을 찾아 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나와 대부분의 일행은 그러지 못했다.

그 하루를 또 다른 도전에 바친 것이다. 무지개산 등정. 비니쿤카라 불리는 이 산은 5천 미터가 넘는 산 정상에 오르면 주변이 온통 무지개 색깔로 보이는 신비한 곳이다. 다만 이곳은 가기가 만만치 않다. 쿠스코에서 하루 일정으로 다녀오려면 새벽 4시쯤 출발해서 버스로 4시간 가량 이동해 산 정상 아래 주차장에 도착해, 그곳에서 2시간 정도 걸어서 5200미터 산 정상에 올라야 한다. 다시 생각해도 쉽지 않은 도전이다.
 

무지개산을 오르기 전 약 4킬로 전방에 이런 주차장이 있다. 여행자들은 여기에서 모두 내려 정상을 향해 걸어가거나 말을 탄다. 최근에는 오토바이까지 이용하는 여행자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나는 남미여행을 하기 전부터 무지개산에 대한 적잖은 자료를 얻어 검토했다. 결론은 어렵지만 이번 기회에 꼭 가봐야겠다고 결심! 이런 산행은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의 고행길일지 모른다. 그러나 가볼만한 곳 아닌가.

나로 하여금 이 여정을 가장 긴장하게 만든 것은 역시 고산병이었다. 몇 년 전 티벳 여행을 했을 때 고산병 기억이 선명하다. 당시 나는 해발 고도 3700 미터의 라사에 도착해 그날 저녁 고산병으로 거의 초주검이 되었다. 머리는 깨질 듯이 아프고 먹은 것을 다 토해낼 듯 속은 불편했다. 자정 무렵 의사가 왕진을 와서 산소포화도를 높이는 주사를 놓고 산소호흡기를 코에 달아주고 나서야 그 증세가 멈추었다.
 

주차장에서 무지개산 정상을 향해 걸어가는 여행자들, 하루에 평균 1천명이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이런 경험이 있었기에 나는 이번 여행에서 고산병에 대해 특별히 준비를 했다. 병원에 가서 고산병 예방약인 아세테졸이라는 약을 처방받아 일주일 치를 준비하고, 고산 여행자들 사이에서 약효가 있다는 비아그라 처방도 받아 몇 알을 준비했다.

첫 고산지인 해발 3400 미터의 쿠스코에 가기 전날 리마에서 아세테졸 한 정을 먹고 당일 비행기 내에서 비아그라 반 알을 먹었다. 그렇게 한 다음 쿠스코에 도착하니 정말 아무 일이 없었다. 일행 중 몇 명은 고산증세가 나타나 고생하기 시작하는데, 나는 고산병에서 해방되었다는 생각에 내심 희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런 상태에서 쿠스코 일정과 마추픽추 일정을 끝냈으니 고산병은 이제 걱정할 것 없다는 자신감에 무지개산 투어신청을 한 것이다.
 

나도 정상을 향해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갔다.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왔지만 나는 내 자신의 삶에 집중해 보고자 했다. 나는 이때껏 어떤 삶을 살아왔는가?

 
하지만 무지개산은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새벽녘 출발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중간에 아침을 먹고 본격적으로 무지개산을 오르기 위해 버스가 비포장길에 들어서 두어 시간 갈 때는, 멀미에 자신이 있다는 내게도 불쾌한 신호가 계속 오고 있었다.

그럭저럭 무지개산 아래의 주차장에 도착해 등정을 위해 신발끈을 매고 준비해 간 등산용 스틱을 꺼내 채비를 할 때는 어지럼 증상이 상당 수준에 이르렀다. 과연 내가 이 고비를 넘기고 정상까지 두어 시간을 걸어갈 수 있을까?
 

무지개산을 오르다 보면 이런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해발 5천 미터 가까이에 라마와 알파카들이 이끼류에 가까운 풀을 뜯고 있다. 이 산 근처에서 사는 주민들은 지난 수백 년 동안 이런 목축을 하면서 평화스런 삶을 살아왔다. 그런데 갑자기 이 산에 여행객이 몰리면서 그들의 삶에 혁명적 변화가 찾아왔다. 그게 정말 좋은 것인지 의문이다.

 
그 때 옆을 보니 어떤 이는 말을 타고, 또 어떤 이는 오토바이를 탄다. 오기 전 좀 쉽게 등정을 하려면 말을 타라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이런 곳에 오토바이까지 있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오니 그런대로 걸을만하다는 판단이 서 나는 걸어서 가기로 결정했다.

한 발 한 발 앞으로 내딛으며 자신에 집중했다. 주변 경치가 눈에 들어 왔지만 그것보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잠시 묵상하면서 걸었다. 한 인간으로서 성실하게 살아 왔다, 지식을 추구했고 그 지식을 세상을 위해 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한 없이 부족한 사람이다, 허명에 눈이 어두웠고, 욕심에 길을 헤맸다...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앞으로 앞으로 나아갔다.
 

산 정상에 오를 때에 만난 작은 연못. 사람의 손길이 닿았는지 연못이 하트 모양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했던가. 한 걸음 한 걸음 걷다 보니 정상이 보인다. 마지막 깔딱고개에 이르자 고도계는 이미 5천을 넘었다는 숫자가 뜬다. 마침내 정상이다! 2020년 12월 21일 오전 11시. 해발 5200미터 비니쿤카, 일명 무지개산 정상에 올랐다.

그곳에서 숨을 헐떡이면서 주위를 돌아보았다. 말 그대로 붉은색, 푸른색, 노랑색, 회색 등등의 색으로 치장한 무지개가 산 전체를 수놓고 있었다. 멀리 설산이 햇빛에 반사가 되자 무지개산의 자태는 더욱 영롱해졌다. 땅 속에 있는 여러 광물질이 지상에 노출되어 산화되면서 각각의 특유한 색을 만들어 낸다고 하지만 자연의 신비다.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신의 영역이다. 우리는 그것을 보고 감탄하고 즐길 뿐이다.

일행 중 몇 사람을 제외하곤 모두 정상에 올라 인증 사진을 찍었다. 생애 최초로 5천 미터를 올라 왔다는 뿌듯함에 기뻐했다. 세상은 무지개산을 경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나뉘어진다고 농담반 진담반의 이야기를 하면서 여행 중 이룬 작은 성과에 만족했다. "나도 이제 무지개산을 오른 사람이야!"
 

여행자들이 어려운 산행을 마치고 정상에 도착했다.

 
하지만 나는 이 무지개산에 대한 다른 스토리를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그것을 집중적으로 찾아 읽었다. 기후 위기와 무지개산의 관계에 관한 정보였다. 무지개산이 여행객들의 관광명소가 된 것은 10여 년도 안 된 최근의 일이다.

이곳은 지난 몇 년 사이에 쿠스코를 찾아 온 여행객들 사이에서 관광명소가 되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빙하가 있었던 곳이다. 계절 변화와 관계없이 이 주변은 온통 눈이 덮인 설산이었다. 그것이 기후 변화로 빙하가 녹아 땅이 드러나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무지개산 정상에 올라서 주변을 돌아보면 그 실상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이 산보다 조금 높은 곳에 위치한 곳은 아직도 빙하 속에 속살을 감추고 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이 자연의 신비 무지개산은 기후 위기가 준 아이러니다. 자연은 인간들에게 기후 위기의 신호를 보내면서 그 증표로 무지개산을 보여주고 있는데, 인간들은 그것을 모르고 이곳에 와 천하 절승이라고 찬미하기에 바쁘다.
 

무지개산 최 정상에 섰다. 이곳에 오기까지 발걸음이 무거웠으나 정상에 오르니 잠시지만 그 고통을 잊을 수 있었다.

 
또 다른 기사를 읽으니 최근 이 무지개산이 더욱 위기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섰던 주차장은 얼마 전까지 이곳 고산지대의 철새의 서식처였는데 주차장으로 말미암아 그 새들이 갈 곳이 없다는 것이다.

매일 1천 여 명의 여행자들이 몰려오고 수십 마리의 말과 최근에는 오토바이까지 종일 쉴 새 없이 다니니 이곳의 자연환경이 견디지 못해 이상 조짐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환경파괴에 나도 한 몫 했다는 생각이 드니 정상에 올라와서도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무지개산 정상에서 주변 산을 둘러보았다. 무지개산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년 365일 저 앞의 산처럼 빙하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빙하가 모두 녹아 여름철엔 속살을 드러낸 무지개산이 되었다. 무지개산은 기후 위기가 준 반갑지 않은 이름이지만 사람들은 절경이라면서 열광한다. 내 머릿속은 아름다운 광경을 보면서도 복잡했다.

 
하산하면서 환경보호와 관광의 조화를 어떻게 하면 찾을 수 있을지 고민했다. 무지개산 아래에 있는 주민들은 수백 년 동안 이곳에서 라마와 알파카를 키우며 조용히 살아왔다. 그런데 불과 몇 년만에 이들의 삶을 우리들 여행자들이 통째로 바꿔놓았다.

이들은 이제 그런 한적한 목축 생활에서 벗어나 여행자들의 마부가 되어 삶을 이어간다. 그것이 수백 년의 전통을 잇는 것보다 나은 삶일까? 이번 남미 여행이 내게 준 큰 과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7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