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그리스인 조르바> 어록집

박찬운 교수 2015. 9. 27. 17:45

<그리스인 조르바> 어록집





크레타 섬의 카잔차키스 묘지, 사진 김원일 제공


올해가 얼마 안남았다. 잠시 한 해를 회상해 보니 한 권의 책이 가슴 속에 큰 여운으로 남아 있다. <그리스인 조르바>(카잔차키스, 이윤기 옮김).


몇 년 전 손에 잡았다가 웬지 내가 읽을 책이 아니라는 생각에, 책장에 그냥 꽂아버렸는데, 올해 무슨 바람이 불었는 지 그 책을 다시 들었다. 심란한 마음이 가득했던 때였다. 그런데, 이 책이 듣던대로 보통 소설이 아니었다. 명불허전! 책장을 덮을 때 마음이 애잔해졌다.


조르바! 그 사람이 웬지 남이라 여겨지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책을 펴고 내게 특별한 감상을 주었던 부분을 찾아 메모를 했다. 잊지 않기 위해...


오늘 다시 그것을 펴 이곳에 옮긴다.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작가인 카잔차키스와 소설의 주인공인 조르바가 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그러면서 우리들의 삶도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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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카잔차키스가 말하는 조르바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카잔차키스가 회상하는 조르바는 진짜 남자다. 자신이 따라 흉내 낼 수 없는 위대한 야성을 가진 남자, 비록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않은 거친 지성의 소유자이었지만 그의 가슴은 원시적 정열로 가득 차 있었다. 세상 잘 만났으면 한 시대의 진정한 지도자감이 되었으리라. 그는 이성으로 무장된 백면서생들을 부끄럽게 하는 영혼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를 보면 위대한 사람은 지식으로, 교육으로, 덕성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그를 생각하니 내가 부끄럽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22쪽)


"조르바는 학교 문 앞에도 가보지 못했고 그 머리는 지식의 세례를 받은 일이 없다. 하지만 그는 만고풍상을 다 겪은 사람이다. 그래서 그 마음은 열려 있고 가슴은 원시적인 배짱으로 고스란히 잔뜩 부풀어 있다. 우리가 복잡하고 난해하다고 생각하는 문제를 조르바는 칼로 자르듯,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고르디아스의 매듭을 자르듯이 풀어낸다."(94쪽)


"지금 세상이 아닌, 좀 더 원시적이고 창조적인 시대였다면 조르바는 한 종족의 추장쯤은 넉넉히 했으리라. 그는 앞장서서 도끼를 들고 새 길을 열었으리라."(111쪽)


"그(조르바)는 살과 피로 싸우고 죽이고 입을 맞추면서 내가 펜과 잉크로 배우려던 것들을 고스란히 살아 온 것이었다. 내가 고독 속에서 의자에 눌어붙어 풀어 보려고 하던 문제를 이 사나이는 칼 한 자루 산 속의 맑은 대기를 마시며 풀어 버린 것이었다."(329쪽)


진짜 사내란...
"그는 피가 덥고 뼈가 단단한 사나이... 슬플 때는 진짜 눈물이 뺨을 흐르게 했다. 기쁠 때면 형이상학의 체로 거르느라고 그 기쁨을 잡치는 법이 없었다."(359쪽)


"나는 이따금 친구들에게 이 위대한 인간의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교육받은 사람들의 이성보다 더 깊고 더 자신만만한 그의 긍지에 찬 태도를 존경했다. 우리들이라면 고통스럽게 몇 년을 걸려 얻을 것을 그는 단숨에 그 정신의 높이에 닿을 수 있었다. 우리는 조르바를 위대한 인간이라고 말했다."(437쪽)



2. 조르바, 이런 말을 남기다


카잔차키스는 조르바의 말을 옮김으로써 한 위대한 인간을 추모하였다. 조르바는 인간의 본질에 대하여, 자유에 대하여, 여자에 대하여, 그리고 영혼의 결정체로서 춤에 대하여 말하였다. 우리는 조르바의 말을 통해 한 위대한 인간의 적나라한 면모를 읽을 수 있다.


그는 인간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간이란 야만스런 짐승에 지나지 않아요. 야수이면서도 신이기도 하지요."(38쪽)


"나는 아무도, 아무것도 믿지 않아요. 오직 조르바만 믿지. 조르바가 딴 것들보다 나아서가 아니오. 나을 거라고는 눈꼽 만큼도 없어요. 조르바 역시 딴 놈들과 마찬가지로 짐승이오! 그러나 내가 조르바만 믿는 건, 내가 아는 것 중에서 아직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조르바뿐이기 때문이오. 나머지는 허깨비들이오. 나는 이 눈으로 보고 이 귀로 듣고 이 내장으로 삭여 내어요. 나머지야 몽땅 허깨비지. 내가 죽으면 만사가 죽는 것이오. 조르바가 죽으면 세계 전부가 나락으로 떨어질 게요."(82쪽)


그는 자유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른 정열, 보다 고상한 정열에 사로잡히기 위해 쏟아 왔던 정열을 버리는 것, 그러나 그것 역시 일종의 노예근성이 아닐까? 이상이나 종족이나 하느님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는 것은? 따르는 전형이 고상하면 고상할수록 우리가 묶이는 노예의 사슬이 길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건 무엇일까?"(39쪽)


"나는 자유를 원하는 자만이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222쪽)


그는 육체와 영혼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육체에는 영혼이란 게 있습니다. 그걸 가엾게 여겨야지요. 두목, 육체에 먹을 걸 줘요. 뭘 좀 먹이셔야지. 아시겠어요? 육체란 짐을 진 짐승과 같아요. 육체를 먹이지 않으면 언젠가는 길바닥에 영혼을 팽개치고 말거라고요."(52쪽)


조르바에게 있어 춤이란 무엇인가
"내 속에는 소리치는 악마가 한 마리 있어서 나는 그 놈이 시키는 대로 합니다. 감정이 목구멍까지 올라올 때면 이 놈이 소리칩니다. 춤춰! 그러면 나는 춤을 춥니다. 그러면 숨통이 좀 뚫리지요. ... 춤을 추지 않았더라면 정말 미치고 말았을 겁니다."(쪽 수가 지워졌음 ㅜㅜ)


나는 조르바의 춤을 영혼의 언어라 부르고 싶다. 인간이란 영혼을 짊어지고 가는 육체다. 영혼은 말이 없다. 그 영혼이 극도의 슬픔 속에 있을 때, 아니 극한의 기쁨 속에 있을 때 무엇으로 그것을 표현할 수 있을까. 조르바는 춤으로 말한다. 말로 형언할 수 없는 모든 것을 그 광란의 춤으로 이야기한다. 내게도 그런 표현방법이 있으면 좋겠다. 내게 영혼의 극단적 표현방법은 무엇일까?


조르바에게 결혼과 여자란 무엇일까

"몇 번 했느냐고요? 정직하게 말하면 한 번... 한 번이면 되는 거 아니오? 반쯤만 정직하게 말하면 두 번... 비양심적으로 치자면 2천 번, 3천 번쯤 될거요. 몇 번 했는지 그걸 어떻게 계산합니까?"(120쪽)


"여자를 보는 남자는 모두가 여자를 갖고 싶다고 말해야 합니다. 여자란 가엾게도 그걸 원하고 있어요. 그러니까 남자라면 여자에게 그렇게 말하고 여자를 기쁘게 해줘야 하는 겁니다."(70쪽)


"여자는 인간이 아니에요! 여자는 불가사의한 거예요. 법률과 종교가 들고 나서 봐야 여자에겐 해당 사항이 없어요. 여자에 대해서 그런 걸 안 됩니다. ... 내가 법을 만든다면 남자와 여자에게 같은 법을 만들어 적용하지는 않겠어요. 남자에겐 열계명, 백계명, 천계명이 필요합니다. 결국 사내는 사내니까... 계명이 아무리 많아도 지킬 능력이 있어요. 그러나 여자에게 필요한 율법은 하나도 없습니다. ... 여자는 힘이 없는 피조물이오."(131쪽)


"여자란 꽃병 같은 거예요. 아주 조심해서 만지지 않으면 깨져요."(257쪽)


"...여자도 우리 같은 사람입니다. 품질이 좀 떨어질 뿐이지요. 여자란 지갑을 보면 돌아 버립니다. 착 달라붙어 자유고 뭐고, 에라 모르겠다, 모조리 남자에게 주어 버립니다."(258쪽)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서 얻어 내는 것보다 자기가 주는데서 훨씬 더 큰 기쁨을 누리는 법입니다."(391쪽)


사람들이 조르바를 잘못 보면 극단적 남성중심주의에 빠진 수컷으로만 말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변명 좀 해주자. 이 소설이 나온 것은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그리스이다. 여자의 삶이란 우리네나 그들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여자는 남자에게 철저히 종속되었다. 아마 조르바가 요즘의 복지국가 유럽을 경험했다면 이런 말은 하지 않았으리라.


여성이 경제적으로 독립하여 남성으로부터 자유를 얻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사회에선 여자도 인간이고 남자와 본질적으로 같을 수밖에 없다. 결코 꽃병도 아니고 조악한 품질의 물건도 아니다.


마지막 말, 진짜 여자는 남자에게 얻어 내는 것보다 주는데서 기쁨을 누린다는 말, 그 말은 잊지 말자. 조르바도 그런 여자에게서 경외감을 느낀 것이다.


의존적인 여자가 아니고 독립적이면서 자신의 의지대로 살면서 모든 것을 주는 여자, 그게 조르바가 진짜 원한 여자이었을지도 모른다.


동네 과부와 잠자리를 권하면서 카잔차키스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여자와 잘 수 있는 사내가 자주지 않으면 큰 죄를 짓는 거라네. 여자가 잠자리를 함께 하려고 부르는데 안 가면 자네 영혼은 파멸을 면하지 못해. 여자는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도 한 숨을 쉴거고, 자기가 아무리 잘한 일이 많아도 그 한 숨 하나면 자네는 지옥행이라네!"(153쪽)


"여자가 혼자 잔다면 그건 우리 남정네들의 잘못이에요. 우리는 최후의 심판 날에 우리가 한 짓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해요. ... 하느님은 그 죄만은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여자와 잘 수 있는데도 자지 않은 사내에게 화있을진저! 남자와 잘 수 있는데도 안자는 여자에게 화있을진저!"(158쪽)


조르바에게 조국이란?
"조국 같은 게 있는 한 인간은 짐승, 그것도 앞뒤 헤아릴 줄 모르는 짐승 신세를 벗어나지 못합니다."(328쪽)


조르바는 일에 대하여 이렇게 이야기했다
"낮에는 일을 해야지. 낮은 사내들 시간이야. 밤에는 즐기고. 그러니 밤은 계집들 것이지. 이걸 혼동하면 큰 일 나는 거야!"(263쪽)


"일을 어정쩡하게 하면 끝장나는 겁니다. 말도 어정쩡하게 하고 선행도 어정쩡하게 하는 것,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 다 그 어정쩡한 것 때문입니다. 할 때는 화근하게 하는 겁니다. 못 하나 박을 때마다 우리는 승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느님은 악마 대장보다 반거충이 악마를 더 미워하십니다."(333쪽)


조르바, 남자가 우는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남자들 앞에서 운다면 말이죠. 남자들끼리 통하는 기분이 있지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에요. 그러나 여자 앞에서는 남자는 늘 자기 용맹을 증명해야 합니다. 우리 남자가 여자 앞에서 울음을 떠뜨려 버리면, 이 가엾은 것들은 어쩝니까? 끝나는 거지요."(376쪽)


조르바, 오늘 내게 중요한 것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내게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나는 자신에게 묻지요.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자네 뭐하는가? 잠자고 있네. 그럼 잘 자게. 조르바, 지금 이 순간에 뭐 하는가? 일하고 있네. 그럼 잘 하게. 조르바, 이 순간에 뭐하는가? 여자에게 키스하고 있네. 조르바, 잘해 보게. 키스할 동안 딴 일이랑 잊어버리게. 이 세상에는 아무것도 없네. 자네와 그 여자밖에는. 키스나 실컷 하게."(391쪽)


아! 이것이다. 삶은 이렇게 살아야 한다. 지금, 현재에 집중해야 한다. 지금 일하는가? 그럼 그것을 잘 하라. 지금 누군가를 사랑하는가? 그럼 뜨겁게 사랑하라, 뜨겁게 키스하라, 뜨겁게 안아주라!


조르바는 카잔차키스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아니요.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은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 모릅니다. 그것뿐이오. 두목, 당신은 긴 줄 끝에 있어요. 당신은 오고 가고, 그리고 그걸 자유라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당신은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해요. 그런 줄은 자르지 않으면... 잘라야 제대로 보게 되는데!"(429쪽)


이 부분 이야기는 바로 나의 이야기다. 조르바가 나에게 말한다. 박아무개! 당신은 자유롭지 않아요. 당신이 묶인 줄이 다른 사람들이 묶인 줄과 다를지는 모르지만 그것뿐이오. 박아무개! 당신은 당신의 줄이 자유인 줄 알겠지요. 그러나 그 줄을 잘라 버리지 못하면 결코 당신은 자유롭지 못해요! 바로 그 끈을 끊어 버리세요!


아, 이것이 조르바의 유언이었다!
"최후의 순간까지 정신이 말짱했고 그 사람을 생각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그리고 나는 무슨 짓을 했건 후회는 않더라고 해주시오. 그 사람이 건투를 빌고 이제 좀 철이 들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더라고 전해 주시오. ...내 평생 별짓을 다 해보았지만 아직 못한 게 있소. 아, 나 같은 사람은 천년을 살아야 하는 건데..."(443쪽)




3. 카잔차키스 또한 어록을 남겼다


소설에서 작가 카잔자키스는 조르바와의 만남에서 많은 것을 깨닫는다. 그는 그 깨달음을 그만의 철학에 담아 담담한 이야기로 전한다.


“인간본질은 야만스럽고 거칠며 불순한 것이다. 인간의 본질은 사랑과 육체와 불만의 호소로 이루어진 것이다.”(196쪽)


“나는 인간의 고통에 따뜻하게, 그리고 가까이 밀착해 있는 이들을 존경했다. 오르탕스 부인이 그랬고, 과부가 그랬고, 슬픔을 씻으려고 바다에 용감하게 몸을 던진 창백한 파블리가 그랬고... 남들 앞에서는 울지도 말도 하지 않던 마브란도니가 그랬다. 나 혼자만 발기 불능의 이성을 갖춘 인간이었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238쪽)


이 말 나도 그렇다! 내 피는 끓어오르지도, 정열적으로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못했다. 내 인생이 그렇다. 나는 뜨뜨미지근한 사람의 전형이다!


“나는 인간이 성취할 수 있는 최상의 것은 지식도, 미덕도, 선도, 승리도 아닌 보다 위대하고 보다 영웅적이며 보다 절망적인 것, 즉 신성한 경외감이라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386쪽)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지식을 위해 오늘도 책을 읽는가? 선함을 위해 신을 찬미하는가? 승리를 위해 불철주야 땀을 흘리는가? 그러나 그 모든 것보다 위대한 것이 있느니 그것은 신성한 경외감이다. 무엇이 당신을 그토록 떨리도록 만드는가? 사랑인가? 그렇다면 사랑하라!


“모든 것을 잃은 뒤에 그렇다. 내가 뜻밖의 해방감을 맛 본 것은 정확하게 모든 것이 끝난 순간이었다. 엄청나게 복잡한 필연의 미궁에 들어 있다가 자유가 구석에서 놀고 있는 걸 발견한 것이었다. 나는 자유의 여신과 함께 놀았다. 모든 것이 어긋났을 때, 자신의 영혼을 시험대 위에 올려놓고 그 인내와 용기를 시험해 보는 것은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보이지 않는 강력한 적(하느님 혹은 악마)이 우리를 쳐부수려고 달려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우리는 부서지지 않았다.

외부적으로 참패했으면서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 인간은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끼는 법이다. 외부적인 파멸은 지고의 행복으로 바뀌는 것이었다.“(417쪽)


이 부분은 카잔차키스가 크레타에서의 광산 사업이 파산을 맞는 순간 맛본 생각이다. 의욕적으로 광산사업을 하면서 산 정상으로 올라가는 케이블카 공사를 감행했다. 이것만 성공하면 떼돈을 버는 것이었다.


하지만 준공식 날 케이블카는 작동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었다. 삽시간에 케이블카는 고철더미가 되었다. 알거지가 된 것이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서 조르바와 카잔차키스는 해변에 앉았다.


조르바는 춤을 추기 시작했다. 광기어린 춤, 그것은 그의 영혼이 결코 패배하지 않았음을 알려주는 격정적 언어였다. 신도, 악마도 그를 패배시키지 못했다. 카잔차키스도 이것을 통해 인간으로서 더할 나위 없는 긍지와 환희를 느꼈다.


나를 돌아보자. 나에게도 이런 때가 올지 모른다. 그럴 때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신에게, 악마에게 구원을 요청할 것인가.


아니다! 춤을 추자. 그래서 밖으로는 참패했어도 속으로는 정복자가 되자!


“우리의 이별은 칼로 벤 듯이 깨끗했다.”(433쪽)


우리의 삶, 언젠가는 이렇게 칼로 벤 듯이 깨끗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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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나는 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
나는 아무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나는 자유다.



(2014. 12.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