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인생/문학

별이 있는 한 우주는 아름답고, 인간이 있는 한 세상은 아름답다

박찬운 교수 2015. 10. 13. 06:03

별이 있는 한 우주는 아름답고, 인간이 있는 한 세상은 아름답다

--김갑수의 신작 <전쟁과 사랑>을 읽고--

 

스스로 생각해 보아도 지적 호기심은 나를 존재케 하는 원동력이다. 그런 것 때문인지 손에 책이 들려 있지 않으면 불안할 때가 많다. 읽어야 할 책이 너무 많고 아무리 읽어도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부족한 독서 중에서도 가장 취약한 분야는 역시 문학이다. 편견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오랫동안 문학은 내게 지식도 교양도 가져다주는 게 아니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작년부터인가, 부쩍 소설을 많이 읽는다. 아마도 이건 나이 탓일지도 모른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단편적인 것보다는 종합적인 것, 이성적인 것보다는 감성적인 것을 찾는다. 전문적인 것도 좋지만 그것만으론 삶의 본질적인 의문을 풀지 못한다. 이제 내가 읽어야 할 책은 지식과 지혜 그리고 감성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것이 아니면 안 된다. 그것들을 어디에서 찾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소설밖에 없다. 그것이 이 가을 내가 소설책을 넘기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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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것은 우리 현대사의 최대의 비극이자 오늘의 한국을 결정한 사건이다. 분단을 고착화시켰고 서로의 존재를 극단의 반목으로 치닫게 했다. 국가가 자유와 인권을 제한할 땐 전가의 보도로 사용되었다. ‘우리는 지금 전쟁 중이다. 죽느냐 사느냐의 상황에서 너의 자유가 조금 제한된다고 그게 무슨 대수냐.’ 생각해 보면, 시간이 가도, 세대가 바뀌어도, 통일이 되기 전까지 우리는 본질적으로 전쟁세대다.


전쟁은 이런 고아들을 무수히 만들어냈다. 이들의 미래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은 언제나 위대한 소설을 낳는다. 존엄한 인간들이 죽고 죽이고, 공들여 만들어 수백 년을 보존해 온 아름다운 건축물이 하루아침에 한낱 돌과 먼지로 변하는 게 전쟁이다. 전쟁 속의 인간은 살아 있다고 해도 매순간 극한의 상황을 만나야 한다. 내가 살기 위해 타인을 속이고 배신한다. 비열한 인간이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생존의 욕구만이 판을 치는 상황에 들어가면, 누구나 그렇게 되는 법이다.

그러나 그 속에서도 예외는 있는 법, 여전히 순결한 인간들은 살아 있고, 그들 간의 사랑의 노래는 들린다. 이 모든 게 작가의 눈엔 쓰지 않으면 안 될 소재들이다. 전쟁이 있고서도 거기에서 위대한 전쟁문학이 나오지 못한다면 그들은 영원히 버림받은 민족이다,

대한민국에도 당연히 전쟁문학이 있다. 전쟁의 한 가운데를 지나온 어느 문학청년이, 어느 문학소녀가 그 절대적 소재를 놓칠 수 있겠는가. 이범선의 오발탄’, 박완서의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최인훈의 광장’, 조정래의 태백산맥등은 그렇게 탄생한 전쟁문학이다.

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전후세대, 오로지 책과 선배의 전쟁경험을 통해 전쟁을 간접경험한 우리들은, 어떻게 이 전쟁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우리세대가 새로운 전쟁문학을 만들어 낸다면 그것은 선배의 그것과는 어떻게 다를 수 있을까. 그 살벌한 인간말종시대를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나는 종종 그것을 상상했다.


전쟁발발 3일만에 인민군이 서울에 들어오고 있다.

나는 전후세대가 쓴 전쟁문학을 몇 년 전 나보다 어린 정지아가 쓴 <빨치산의 딸>을 통해 처음으로 느껴보았다. 한국전쟁 시절 지리산의 빨치산으로 활동한 부모님의 이야기를 딸이 엮어간 소설이다. 그것은 내게 전쟁세대가 쓴 것과는 또 다른 감동을 주었고 전후세대의 탁월한 지성과 감성을 믿는 계기가 되었다.

오늘 나는 또 다른 소설가의 전쟁소설을 읽었다. 역사소설가 김갑수종편 티브이에 자주 나오는 그 장발에 안경 쓴 이를 말하는 게 아니라, ‘민은 갑이다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는 5척 단구에 형형한 눈빛을 가진 이를 말한다가 올 여름 광복 70년 아니 분단 70년을 맞이해 내 놓은 <전쟁과 사랑>이 바로 그것이다. 이 소설 또한 전후세대가 쓴 또 하나의 문제적 전쟁문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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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조상은 지구를 탄생시킨 모체로서 태양을 극진히 섬겼습니다. 그런데 지구가 태양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태양은 우리의 조상별이 아닙니다. 태양은 우리에게 지구라는 이름의 집을 지어 준 목수에 불과합니다. 수 십억 년 전 우주 어딘가에서 수명을 다하고 사라진 초신성이 있었습니다. 이 초신성의 잔해는 지구뿐 아니라 인근 성운에 골고루 뿌려졌습니다. 우리 인류는 이 초신성에서 뿌려진 잔해로부터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별의 후손입니다.”(8)

리석주, 그는 북한이 내놓은 세계적 이론물리학자다. 저 평화의 나라 스웨덴 스톡홀름 시립콘서트 홀에서 열린 세계 이론물리학자대회에서 발표한 그의 초공간이론은 세계 물리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동족 간에 죽고 죽이는 게 전쟁이었다. 주검 앞에서 통곡하는 여인들

리석주는 자신의 아버지를 모른다. 자신이 어떻게 태어났는지 모른 채 오랜 세월을 살아왔다. 스톡홀름에서 세계 물리학자들을 놀라게 한 논문을 발표하고 있을 때 어머니 조수현은 눈을 감는다. 팔십을 넘긴 나이지만 언제나 음악을 듣고 붓을 잡으면서 말년을 살아온 어머니다. 그 어머니는 별과 우주에 관심에 많았다. 석주가 우주에서 가장 오래된 별, 우주의 최 변방 별을 찾는다고 말할 때는 흥분하기까지 했다. 어머니는 저 나이에 어떻게 저런 것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석주는 의아했다.

그 어머니는 아들 석주가 어릴 땐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어머니의 이야기는 석주 자신을 통해 아들에게도 전달되었다.

“...수학이 없다면 우리는 자연이라는 무대에 활동적으로 참여하지 못하고 피동적인 관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의 말대로 수학은 논리적인 생각을 표현하는 한편의 시이다. 일찍이 갈릴레오는 이런 말을 했다. ‘우주를 이해하려면 그에 적절한 언어를 반드시 익혀야 한다. 그 언어란 수와 도형들이 알파벳으로 사용되는 수학이다. 수학 없이 우주를 논리적으로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다’ ”(288)

어머니는 도대체 이런 것을 어디에서 들었을까? 석주는 의아했다.

그런 어머니였다. 석주는 이제 어머니가 자신에게 남긴 편지와 오랜 기간 비밀스럽게 간직해 온 두꺼운 일기장을 펴든다. 그 속에서 석주는 전쟁 속에서 피어난 한 남녀의 풋풋하면서도 아련한 사랑 그리고 그 결정체로서의 한 생명의 탄생 이야기를 발견한다.

석주야, 모두 알다시피 우리 민족은 불과 60년 전 말할 수 없이 참혹한 전쟁을 치렀다. 아직도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상대에 대해 불신과 증오를 감추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오히려 그 불행을 과장하는 사람도 있으며, 심지어는 그 불행을 팔아 일신의 영달과 출세 수단으로 삼는 사람도 있다. 물론 그 때의 우리는 참혹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아름다운 꽃들은 여기저기에서 피고 있었다. 별이 있는 한 우주가 아름답듯이, 인간이 있는 한 세상은 아름다울 수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15)

전쟁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좌우로 갈려, 죽고 죽이는 비정을 저지르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도, 한 남자와 한 여자는, 별을 보고 사랑에 빠졌던 것이다.


폐허가 된 중앙청 부근

1950년 한국 전쟁 발발 3일 만에 서울은 북쪽 세상이 된다. 그러나 인공치하는 오래가지 못했다.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서울은 다시 유엔군 수중으로 들어갔고, 세상은 다시 바뀐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다시 세 달이 지나자 중국인민군이 개입하고 1.4 후퇴, 서울은 또 다시 인민군 수중에 들어간다. 그리고 다시 두어 달 후 재탈환...

불과 8-9개월 사이에 주인이 몇 번이나 바뀌는 상황에서 피난가지 못하고 서울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인공시절엔 북을 선택하지 않으면 반동이었다. 국군이 들어온 후엔 북을 선택한 이들은 부역자로서 처단되었다. 다시 인공이 되고, 또 다시 국군이 들어오고... 사람들은 그 선택에 따라 풍전등화 같은 삶을 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폐허가 된 남대문 일대

역사학과 교수 김성식은 그 와중에서도 섣불리 한 편에 서지 않았다. 세상이 바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렇게 처신한 건 아니다. 해방 이후 좌우의 극심한 대립 속에서도 그런 선택을 했고, 전쟁 중에도 그것을 견지했다. 좌우의 시각에서 보면 회색분자로서의 삶이지만, 그것은 당시로선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역사학자로서 그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무도한 시기를 기록하고 미래에 증언하는 것이었다.

피난가지 못한 사람 중엔 천재 과학도 이두오도 있었다. 그는 김성식의 도움 아래 전쟁 상황에서도 밤하늘의 별을 관찰하고 수학을 푸는 청년이었다. 이 청년 앞에 인민군 장교 조수현이 나타난다. 이두오의 순수함에 반한 조수현, 그녀는 이두오가 숨어 있는 정릉 숲에서 별을 함께 보면서 두오로부터 현대물리학과 우주의 기원 그리고 그것을 읽는 수학에 대해 듣는다. 전쟁 중에도 순수함은 있는 법, 죽고 죽이는 현장에서도 사랑은 싹트는 법. 바로 이 둘이 그것을 증명한다.

9.28 수복 후 조수현이 북으로 후퇴를 하면서 이 둘은 헤어지나 그것이 마지막은 아니었다. 1.4 후퇴 당시 조수현은 서울에 다시 오고, 서울을 떠나 있던 이두오는 조수현을 만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서울로 돌아온다. 이 둘을 맴도는 신()의 뜻인지는 모르지만 두 사람은 다시 정릉 숲에서 만나 짧은 시간 속에서도 사랑을 완성한다. 인민군이 다시 후퇴하면서 조수현은 이두오를 북으로 데려갈까 망설이지만 포기한다. 이두오를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것으로 지상에서의 두 사람의 만남은 끝났다. 그건 그들 앞에 놓인 피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평양으로 돌아간 조수현의 몸엔 이미 이두오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마침내 그 아이가 세상에 나와 리석주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 채 자랐지만, 아버지의 피를 이어받아, 북을 대표하는 천재 물리학자가 된다.


전쟁 중 피난민 대열

이 소설은 결코 이데올로기 소설이 아니다. 독자들은 작가 김갑수에게서 이데올로기가 강조된 참여문학을 기대했다면 실망할런 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데올로기를 최소화하는 대신 몇 번에 걸쳐 변하는 체제 속에서 생존을 위해 타인과 자신을 배반한 사람들, 그 속에서 인간의 존엄을 지키고자 번민했던 사람들의 고통을 그리는 데 심혈을 기우렸고 전화 속에서도 영롱하게 피어난 사랑의 이야기를 완성해 냈다.

작가는 천체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을 소설 속에서 녹여냈다. 소설 곳곳에서 이두오 부자는 빅뱅이론, 초신성, 우주팽창,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실성의 원리, 기타 양자역학 등 천체물리학과 이론물리학의 현대적 조류를 이야기한다. 본격적인 공상과학소설에서나 나옴직한 과학 이야기를, 전쟁소설 그것도 60년 전의 한국전쟁을 다룬 소설, 이곳저곳에 뿌려 놓는다.

과거의 소설이라면 밤하늘의 별은 별자리에 얽힌 그리스 신화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족하리라. 그러나 이 소설의 작가는 그런 묘사를 피하고 21세기 최첨단 물리학 이론을 동원해 밤하늘의 별을 설명한다. 전후세대 작가의 글이 전쟁세대의 그것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 지를 여실히 보여준 증거다. 작가의 그 노력과 그 역량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다 

소설을 다 읽고 나니 내 머릿속엔 나 자신이 작가가 되어 이 소설의 제2권을 써나간다. 이야기의 시작은 80이 넘은 이두오가 어느 날 금강산에서 아들 석주를 만나는 장면이다. 이두오는 어떻게 지난 60년을 살아왔을까? 대한민국 사회는 이 천재 과학도를 어떻게 만들었을까? 내 머릿속에서 이두오의 지난했던 삶이 떠오른다.

그런데 한 사람, 박미애는 어떻게 되었을까. 전쟁 중 이두오를 짝사랑한 처녀다. 아버지는 좌익으로 동네 사람 여럿을 죽인 비열한 자 박광태다. 조수현도 자칫 그로 인해 위험에 빠질 뻔 했다. 이념을 넘어 아버지를 버리고 이두오와 조수현을 살린 이, 바로 그가 박미애다. 그녀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의 실마리를 찾는다. 조수현이 죽기 전 남북이산가족상봉을 위해 신청을 했는데, 상봉희망자 중엔 이두오 외에 박미애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 여인의 직감으로 자기의 연인이 결국 박미애의 구애를 받아들였을 거라 생각한 것은 아닌가? 책장을 덮으면서... 나는 그리 상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