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st Essays/깊은 생각, 단순한 삶

법률가 앞에 놓인 두 가지, 욕망과 정의

박찬운 교수 2018. 12. 6. 16:33

법률가 앞에 놓인 두 가지, 욕망과 정의

 

우리는 욕망과 정의 어느 지점에서 살고 있다. 욕망을 배제하며 정의만을 추구할 수도 없고, 정의를 배제한 채 욕망만을 추구할 수도 없다. 두 가치 사이의 적절한 위치를 찾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매일 매일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우리들의 실존이다. 법률가들은? 그들도 똑 같을까? 
.

김두식 교수가 쓴 <법률가들>이란 책에 이법회(以法會) 이야기가 나온다. 1945년 8월 15일 조선변호사시험을 보기 위해 200여 명의 청년들이 시험장에 모였다. 그런데... 그날 시험장엔 시험 감독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일본이 무조건 항복을 하고 조선이 해방이 되는 날인데 어떤 관헌들이 일을 할 수 있겠는가. 
.

이 상황에서 절반이 넘는 수험생들(이 사람들이 이법회 회원들임)이 대표를 뽑아 시험위원회를 찾아 가 합격증을 달라고 요구했다. 황당한 요구였지만 시험위원회는 이들에게 합격증을 발급한다. 이렇게 해서 합격증을 받은 사람들이 106명. 이들이 해방 후 우리 법조계의 주역 중 하나로 성장한다. 대표적 인물이 전두환 시절 대법원장을 지낸 유태흥이다. 
.

우연하게 목욕탕에 갔다가 사우나 룸에서 두 남자가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들은 변호사들이었다.

 

“너 걔 알지 000변호사, 걔 요즘 대박쳤어. 걔가 M&A전문이잖아. 일하다가 어떤 그룹 회장을 알게 되었다나. 그 회장이 걔 보고 일 잘한다고 자기하고 같이 일하자고 했대. 그래서 걔가 로펌 그만두고 그 회사로 옮겼는데, 연봉이 얼마인지 알아? 00억원(독자가 넘 놀랄 것 같아 구체적 금액은 쓰지 않음), 거기다가 한 달에 수 천만 원 쓸 수 있는 법인카드! 일 할 것도 없어. 일 생기면 전화만 하면 된대. 소송할 것은 로펌에다 맡기면 되고, 자잘한 일은 걔 밑에 있는 젊은 변호사들에게 시키면 되고. 완전 놀고먹는 거야. 매일같이 골프 치러 다니면 돼. 한 가지만 신경 쓰면 되는 거야. 회장 감옥 가지 않도록 사전 주의시키는 일....”
.

“걔 정말 대박이네. 우리는 언제 그런 기회를 잡지? 그런데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 보면 참 한심해. 이놈의 정권은 왜 그렇게 과거에 관심이 많아? 과거 것 들추어내는 것 정말 지겹다. 뉴스 보지도 않나. 조지 부시 죽으니 클린턴이 부시 추모하는 글 썼잖아. 걔들은 격이 달라. 우린 맨날 숙청하느라 날 새는데, 내 동기 000부장판사, 걔 얼마나 잘 나갔니? 걔 요즘 사법농단 때문에 완전 X됐다. 거기에 걸렸거든. 참 세상 어떻게 되려고 하는 지 걱정이야.” 
.

해방 당일 민중은 거리로 나가 태극기를 흔드는데, 초연하게 시험 보러가서 어거지로 합격증을 요구한 법률가나, 사법사상 전무후무한 헌법파괴 행위가 일어났음에도 분노는커녕 과거 발목잡기라고 욕하며, 재벌회장 법률참모 되는 걸 인생의 희망이라고 여기는 법률가.... 둘은 시대를 달리해 살지만 같은 사람들이다. 입신양명과 돈의 욕망이 모든 가치를 뒤엎는 적나라한 삶의 현장에서 사는 법률가들이다. 저들에게 정의란 소설책에서나 어렴풋이 보이는 몽상가들의 환상,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

법률가들 중엔 분명 특별한 존재들이 있고, 그들 손 안에서 정의가 희롱당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2018. 12.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