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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쾌락주의자

박찬운 교수 2018. 11. 10. 13:20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는 쾌락주의자

 

요즘 방송국 섭외가 심심치 않게 들어온다. 여러 현안에 대해 목소리를 내니 그 관련 방송토론에 나를 초대하고 싶단다. 지금도 모 방송국 작가가 문자를 보내 왔는데 아무래도 그런 요청일 것 같다. 나는 이런 요청이 올 때마다 대부분 거절한다. 얼굴 팔고 다닐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얼굴 내밀지 않아도 언론엔 이미 내 이름이 꽤 많이 나갔다. 페북 영향력이 대단해 이곳에 글 쓰는 것만으로도 내 입장은 충분히 언론에 전달된다. 포탈에 내 이름을 쳐보시라, 내 이름 들어간 기사가 셀 수 없이 많다.

 

사실 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지금쯤 대중적으로 상당히 유명한 사람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십 수 년 전 모 방송국에서 토론 프로를 만들면서 사회자로 나를 섭외했다. 그 요청을 받고 며칠 고민했다. 방송에 나가서 나도 한번 유명인사가 되어볼까? “얼굴 되지 ㅎㅎ 목소리 좋지 ㅎㅎ 당신은 방송에 딱이야 그런데 왜 안 나가?” 이렇게 옆에서 부추기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변호사 몇 년 하고 뭐 잘 났다고, 뭘 안다고 방송에 나가 얼굴을 파나... 더 공부하자. 충분히 공부한 다음 내가 꼭 필요할 때 나가자. 뭐 이런 생각이었다. 결국 그 프로 사회는 내 동기 변호사가 맡게 되었고, 그는 그 프로로 일약 스타가 되었다. 지금 야당의 어느 거물 정치인이 바로 그 사람이다.

 

나는 그 후에도 몇 차례 방송에 나갈 수 있었고, 마음만 먹었으면, 유명인사가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그러나 나는 항상 공부가 덜 되었다, 조금 더 내공을 쌓은 다음 대중 앞에 서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방송국의 요청을 거부했고... 세월이 흘러 여기까지 왔다.

 

솔직히 요즘 마음이 흔들린다. 마음 한 구석에서 이런 마음이 조금씩 올라오기 때문이다. 한 번 나가 볼까. 내공이야 이 정도면 되는 것 아니야... 완벽한 내공 만들려고 기다리다가는 세월 다 가는 것 아니야? 이제 조금만 지나면 불러주지 않을 텐데...

 

친구들은 이런 맘을 이해할런 지 모르겠다. 나는 솔직히 누구 말처럼 저녁이 있는 삶? 소소한 즐거움? 이런 것들을 무척이나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어쩜 그 무엇보다, 세상에서 중요하다고 하는 그 어떤 법, 제도, 이념보다도, 나는 그 하잘 것 없는 그 무엇이 중요하다. 내가 방송에 나갈지 말지를 고민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실 거기에 있다. 마음의 심연에 매일같이 즐기는 소소한 일상이 방해받을 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나는 칼국수 혹은 국밥 한 그릇을 먹기 위해 한 시간 두 시간 헤매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누구한테서 맛집 이야기를 들으면 꼭 찾아간다. 같은 값이라도 미묘한 맛의 차이를 내는 그 집을 찾아 가 내 입을 즐겁게 하는 것은 내게서 뺏을 수 없는 자유다.

 

나는 매일같이 단골 카페에 가서 카페라테를 못 마시면 하루가 뒤숭숭하다. 라테를 만들어 주는 여주인이 나 같은 손님을 처음 본다고 말한다. 정말 그 집 라테에 대한 충성심은 대단하다. 멀리서 점심을 먹고 나면 바로 옆 카페에 가서 한 잔 해도 될텐데, 혼밥을 한 경우라면, 거의 예외 없이 그 단골집 카페에 가서, 나만을 위해 만들어 주는 그 라테를 마신다.

 

나는 목욕을 좋아해 거의 매일같이 목욕탕에 가는 데, 옷을 홀라당 벗고, 탕 속에 잠겨 하루의 피곤을 푸는 그 순간을 너무 좋아한다. 그런 연후 사우나 도크에 두 번 들어가 땀을 낸다. 그 때의 그 시원함을 즐기지 못하면, 하루가 무의미하다.

 

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보통 점심 먹고 학교 주변을 도는 데 이것을 안 하면 몸에 무슨 이상이 온 것처럼 찝찝하다. 사람은 누구나 걸어야 한다. 두 발이 튼튼하다면 반드시 하루에 일정 시간을 걸어주어야 한다. 이 시간 나는 몸과 마음이 평온함을 느낀다. 나는 이 과정을 통해 다시 생각하는 사람으로 탄생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이런 것들이다. 나는 이런 것들을 방해받고 싶지 않다. 사실 누구로부터 근사한 초대를 받아도, 거기가면 내 인생에서 좋은 인연을 맺을 지도 모를 일이지만, 나는 그것보다 저 사소한 것들 아니 (나로서는 하루도 빠트릴 수 없는) 저 즐거운 것들을 소흘하게 대할 수가 없다. 나는 본질적으로 쾌락주의자다. 내 고민의 답은 여기서 찾아야 할까. 그게 팔자라면 어쩔 수 없다.(2018. 11.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