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지혜

신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다는 것, 그것은 어쩜 기적이다

박찬운 교수 2018. 11. 19. 09:48

신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한다는 것, 그것은 어쩜 기적이다


(위) 1990년 변호사 1년 차 시절. 서초동 정곡빌딩 사무실에서. (아래) 1990년 가을 개인 사무실을 내고 작은 개업식을 하는 장면


로스쿨을 졸업한 변호사 제자들이 법률사무소를 내고 있다. 아마 그들 대부분이 사무실 운영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고객이 찾아와 사건을 상담하고, 적정 수임료를 책정한 다음, 사건의뢰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잘 생각하면 신참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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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건이든 당사자에겐 중요하지 않은 사건이 없다. 그 사건은 당사자에겐 생명과 재산 그리고 명예와 관련이 있다. 일생일대 가장 큰 시련일지 모른다. 그래서 자기를 도와 줄 변호사를 찾아, 있는 돈 없는 돈 끌어 모아 갖다 바치는 것이다. 그런 일에서 아무 변호사에게 돈을 갖다 줄 당사자는 없다. 나부터도 그렇게 안 할 것이다. 괜찮은 변호사를 찾고 또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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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경험 많고 실력 있는 전관 변호사가 문전성시를 이루는 것은 당연하다. 전관 변호사는 법원과 검찰에서도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니, 그것을 잘 선전하면 수임료는 부르는 게 값이다. 그런 변호사는 사건을 져도 의뢰인으로부터 불평을 덜 듣는다(물론 돈을 너무 받고도 일이 잘 안 되면 수모라는 대가를 치러야 함). (경험 많고 실력 있는) 변호사도 어쩔 수 없이 질 수밖에 없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팔자소관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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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변호사 일을 처음 시작한 것은 29년 전. 나는 잘 나가는 전관 변호사가 아니었다. 그저 사법연수원 수료하고 군대를 다녀온 무명의 변호사였다. 물론 법조상황은 지금과는 사뭇 달랐다. 전국에 변호사가 2천명도 채 안 되던 시절이었으니. 90% 이상 변호사가 기사가 운전하는 승용차를 타고 다녔다. 한마디로 변호사들은 특권계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그 상황에서도 사무실 운영이 힘들었다. 때때로 몇 달 간 사건수임이 안 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는 남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고정적으로 나가는 사무원 월급과 임대료는 어찌나 빨리 다가오는지 월말이 되면 초조와 긴장의 우울모드로 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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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연도, 지연도, 혈연도 없이 변호사 업을 시작했기 때문에 더욱 어려웠다. 이런 사람에겐 방법이 있다면 사건 사무장을 쓰는 것이었다. 사건을 물어오는 사무장을 쓰면 당시엔(아마 지금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다. 이들은 법원과 검찰청 그리고 경찰 혹은 병원 등과 거래하면서 사건 당사자를 연결시켜 주면서 수임료 중 일정비율을 소개료로 챙겼다. 법조 ‘쁘로커’라고 일컫는 사람들이다. 이들과 연결되면 돈 버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데, 문제는 이게 변호사법 위반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잘 판단해야 한다. 변호사법 위반으로 언제든지 감옥 갈 생각을 하고 이런 쁘로커를 쓸지, 아니면 손가락을 빨더라도 그냥 어떻게든 버티든지... 어떻게 했을까? 나는 후자를 택했다. 간이 작아서 그랬던가? 아니다, 그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죽으면 죽었지 ‘쁘로커’와 손을 잡고 일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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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산 입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고 한 건 두 건 사건을 수임했다. 변호사 수가 희소하다보니, 가끔 가난한 고객이 사무실을 전전하다가 내 사무실에 들르는 일이 생겼고, 나는 그들의 사건을 수임했다. 그 뒤엔 그 고객들이 주변 사람들을 소개했다. 이렇게 한 해가 가고 두 해가 가니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었다. 물론 그런 중에도 가끔 한두 달 사건을 구경하지 못하는 일은 왕왕 찾아왔고,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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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내가 경험한 개인 변호사로서의 삶이다. 요즘 내 제자들은 어떻게 버티고 있을까? 내 시절보다 변호사 수는 10배 이상 늘었는데, 경험 없이 사무실을 낸 그 친구들은 어떻게 사무실을 유지할까? 가끔 제자 중에서 매우 성공적으로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친구도 만난다. 연구대상이다. 저 친구는 어떻게 해서 저렇게 빨리 자리를 잡았을까? 특별히 부정한 방법을 쓰지 않고 변호사 사무실을 운영할 것이라고 믿는 바이니, 그 비결을 알고 싶다. 많은 후배들도 그것이 궁금할 것이다.(2018.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