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왜 판사들은 그렇게 무력했을까

박찬운 교수 2018. 9. 14. 14:20

왜 판사들은 그렇게 무력했을까

-무한경쟁 체재가 만든 귀결-

신임법관 임용식


나는 의문이 든다. 왜 법원행정처 판사들이 양승태의 충견이 되어서 그 말도 안 되는 짓을 했을까. 고작 높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고등부장이 되고, 법원장이 되고 마지막엔 대법관이 되기 위해서? 사람들은 다들 그렇다고 하지만 나로선 믿기지 않는다. 그 출세가 뭐라고, 그 권력이 뭐 대단한 거라고 그것과 자기 인생, 자기 자존심을 바꾼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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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말해 놓으니 그 판사들이 그런 짓을 서슴없이 한 이유가 자명해진다. 그들에겐 사실 자신들이 지켜야 할 자존심이 없었다. 겉은 번드르르한 엘리트 판사였지만 그들에겐 자신이 걸어가야 할 인생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몰랐다. 한마디로 그들은 초라한 인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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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의문이 든다. 왜 그들에겐 그 알량한 자존심도 없었을까? 왜 그들에겐 참다운 자신의 인생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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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의문에 앞서 하나를 점검해 보자. 과거 선배 판사들은 좀 다른 면이 있었을까? 누구는 오십 보 백 보라고 할지 모른다. 물론 박정희나 전두환 시절을 돌아보면 권력과 손을 잡은 판사들이 꽤 있었다. 그들 어용판사들이 권력의 앞잡이가 되어 다른 판사들을 겁박했다. 하지만 그것이 이번 사법농단 사태와 비교될 수 있을까? 권력의 외압을 받아 휘어진 판결을 하긴 했지만 이렇게 법관의 양심을 스스로 내던져 재판을 개판으로 만든 사례와 비교될 수 있을까. 분명 다른 면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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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엘리트 판사들을 보면 특징이 있었다. 비록 이들이 특권의식과 권위주의적 성격이 강해, 지금 눈으로 보면 결코 환영받진 못하겠지만, 한 가지 인정해야 할 것은 이들 판사들 대부분이 엄청 자존심이 셌다는 점이다. 그 서슬 퍼런 권력도 다루기 힘든 엘리트 법관들이 많았다. 70년대 1차 사법파동의 주인공들을 보라. 이범렬, 홍성우, 황인철, 최영도... 이들은 모두 젊은 판사로서 정권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권력에 맞서 일대 저항을 했다. 재야 법조는 말할 것도 없다. 변협 회장을 지낸 이병린 변호사, 천하의 용태영 변호사 모두 기개가 넘쳐서 누르면 누를수록 용수철처럼 튀어 오르는 법조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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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가 폭압적인 정권에 의해 사법이 무시당했다 해도 법조인들은 지켜야 할 자존심 있다고 믿었다. 그 시절 법관들, 특히 엘리트 판사들은 누군가로부터 부탁은 받아도 명령이나 지시는 절대로 받아들이지 않으려 했다. 몇 몇 잘나가는 어용법관들이 있었지만 그들이 법원의 주인일 수는 없었다. 그들은 언젠가 자신들의 실체가 드러나면 법조로부터 부관참시 당할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었다. 이것이 70-80년대의 법조의 분위기였다. 비록 당시 우리 사법부가 권위주의 정부 하에서 욕먹을 짓을 많이 했지만, 적어도 잘 나간다고 하는 판사들이 이번 사법농단처럼 대법원장이나 행정처장의 지시에 따라 충견이 되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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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오늘의 그 젊은 엘리트 법관들에게로 돌아가자. 그럼 왜 그들에겐 선배가 가지고 있었던 그 자존심이 없었는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우리 법조의 펀더멘탈 혹은 주류적 분위기가 바뀐 것으로 보인다. 자존심이 뭐고 다 쓸데없고 출세하는 게 최고라는 생각이 법조 엘리트들의 지배적 가치관이 되었다는 것이다. 참으로 애석하고 원통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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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런 망측한 일이 발생했을까. 자세히 들여다보니 언젠가부터 법조가 완전히 너 죽고 나 살자는 아수라장이 되었다. 이번에 법원행정처에서 충견 노릇을 한 법관(심의관)들은 대체로 나이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인데, 이들이 걸어온 길을 보면 대체로 원인 파악이 된다. 이들은 우리나라에서 법조인이 대량으로 배출되던 시점 이후에 탄생한 법관들이다. 소위 천 명 세대들인데, 이들은 그 이전 세대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쟁 하에서 훈련되었다. 과거 300명 세대 혹은 그 이전 세대가 경험한 것과는 완연히 다른 법원 분위기에서 법관생활을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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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 법관들은 바로 이 경쟁구조 하에서 맨 상층부를 차지하는 친구들이다. 입시 경쟁에서 성공해 일류 대학에 들어갔고, 거기서도 두각을 나타내 일찌감치 사법시험을 합격한 친구들이다. 그 다음도 그들의 인생여정은 마찬가지였다. 이들이 특별히 잘하는 것은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는 것, 남들보다 먼저 승진하고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이다. 이들에겐 그것들이 인생의 목표일뿐 선배들이 추구했던 다른 고상한 가치가 눈에 들어올 리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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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대법원장을 비롯한 정점에 있는 사법 관료들이 이들을 다루기가 얼마나 쉬웠을까? 도대체 이견이 없는 친구들이니, 도대체 갈등이 없는 친구들이니... 지시만 하면 아무 생각 없이 잘 보이기 경쟁을 하는 친구들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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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번 사법농단 사태의 근본적 원인을 여기에서 찾는다. 무한경쟁 체제로서의 대한민국 사회, 그 중에서도 경쟁의 첨단을 걷는 법조사회가 만든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니 이번 사태는 오늘의 문제만이 아니라 내일의 문제이기도 하다. 이런 분위기가 법조를 지배하는 한 또 다시 이런 사태는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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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쿨에서 미래의 법률가를 양성하는 데 책임을 지고 있는 나로선 우울하기 그지없다. 새로운 법학교육을 하겠다며 출발한 로스쿨이 바로 무한경쟁의 살벌한 장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교육 속에서 키워진 친구들의 미래는 무엇일까? 이들도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이기기만 하면 최고라는 경쟁기계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이런 무도한 사법농단 사태가 일어났음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전국의 로스쿨 학생들이 그저 조용히 판례만 외우며 공부하는 이유가 아닐까?

(2018. 9.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