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사법

인간관계를 넘어 사법농단 해결을

박찬운 교수 2018. 9. 18. 06:13

인간관계를 넘어 사법농단 해결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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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른 시간 내에 우리 사법부가 신뢰를 회복해, 이런 글을 더 이상 쓰지 않길 바라면서, 이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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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사태의 원인 중 하나가 인간관계입니다. 이 사태 해결이 어려운 이유도 인간관계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사태를 일으킨 인물들을 잘 보면 특정대학의 선후배이고, 특정보직의 전후임자로, 오랜 기간 끈끈한 관계망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이런 관계에서 매정하게 공적 대의를 추구한다는 게 말처럼 쉽진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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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의 수가 최근 급증한 관계로 법조문화가 격변하고 있지만 아직도 법조인들은 인간관계 망에서 자유롭지 못합니다. 물론 법학교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슨 일이 터져 그 책임을 논하게 되면 대번 그 인간관계가 앞을 가로막습니다. 다른 직역도 이런 문제는 있지만 법조계와 법학계는 유독 심합니다. 주류대학 출신 간에는 말할 것도 없고, 비주류 대학 출신 간에도 뭉치는 것이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에, 끼리끼리 문화가 발달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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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엔 이런 문화는 당분간 바뀌지 않을 겁니다. 적어도 우리 생애에선 모순 덩어리인 이 문화를 안고 가는 수밖에 없을 겁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이 관계를 뛰어넘자고 주장하거나 실천하는 사람들은 고독하게 살 수밖에 없습니다. 주변을 돌아보십시오. 그런 사람이 보일 겁니다. 아무리 우리 사회가 인간관계에 의해 지배되어도 끊임없이 이것을 타파하려고 하는 사람은 과거나 지금이나 있으니까요. 지금 사법농단 사태가 비록 제대로 처리되지 않는다고 비난을 받고 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온 것은, 이 강고한 인간관계를 끊어버리고 공의를 추구하는 사람들 때문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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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은 모르지만 판사들 사이에서도 이 사법농단 사태에 대한 태도가 여러 가지 일겁니다. 고위 법관일수록 이 문제에 모호한 태도를 갖겠지요. 그 이유야 뻔합니다. 기득권을 지킨다는 것도 있겠지만 이 사태의 책임자들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이 사태에 대해 상대적으로 비판적이겠지요. 사태 책임자들과 직접적으로 인적 관계를 형성했을 가능성이 적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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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30년 간 이 문제에 대해 참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설움 아닌 설움도 많이 겪었습니다. 저는 이런 인간관계가 서툽니다. 주류와 비주류와 나누어지는 법조계에서,  비주류인 제가 무언가를 하려면 주류의 동정이라도 받기 위해 의도적 노력을 해야 하는 데, 저는 일찌감치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제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비주류 간이라도 서로 돕고 살자며 앞장서지도 못했습니다. 주변에서 그런 관계를 만들려는 친구들을 볼 때는 측은한 마음이야 들었지만, 알량한 자존심 때문인지, 그 일원이 되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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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스운 말 하나 할까요? 원래 변호사는 무난한 인간관계를 형성해야 먹고 사는 데 도움을 받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쪽박 차기 안성맞춤이지요. 그런데 제가 항상 손해만 본 게 아닙니다. (요즘 부동산 문제가 여간 심각한 게 아니어서 이런 말하면 욕먹을지 모르지만) 제가 그래도 이십 수 년 전에 강남에 집을 장만한 사람입니다. 그 비결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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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으로 이 인간관계에서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제 동기 변호사들이 왕왕 저에게 사건을 소개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습니다. 자기들은 상대방을 너무 잘 알아서 사건처리를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그런 사건엔 딱이라는 것이지요. 생각하면 웃프지만 저는 그런 사건으로 짭짤하게 돈을 벌었습니다. 소개하는 사람도 그리 생각해 주니 뒤를 볼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다른 사건보다 오히려 당당하게 돈을 받았던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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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의 원인과 해결 정말 간단치 않습니다. 양승태 일당이 그런 무도한 짓을 한 뒤엔 철옹성 같은 인간관계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사법부 내에서 넘볼 수 없는 권력을 키웠고, 청와대와 연결해 거래를 했습니다. 과연 이런 넘사벽을 뛰어 넘을 수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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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스런 방법은 없습니다. 이런 관계망을 거부하는 저와 여러분이 쉬지 않고 통렬하게 비판하면서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압니까. 제가 죽지 않고 이렇게 살아온 것처럼 뭔가 이루어질지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