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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도덕심리'와 '성층권 밖 우주 도덕심리'

박찬운 교수 2017. 11. 25. 09:59

'정상 도덕심리'와 '성층권 밖 우주 도덕심리'
-정상사회는 어떻게 가능할까-


지금 우리 사회는 두 개의 도덕심리 모델이 작동한다. 하나는 ‘정상 도덕심리 모델‘(정상모델)이다. 이것은 맹자 말씀하신대로 인의예지를 중시하는 것으로, 약한 자에 대해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잘못에 부끄럼을 알며, 겸손의 미덕을 갖고, 옳고 그름에 민감한 심리를 말한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라 추정되는 인간본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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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우리 사회엔 이것 말고 또 다른 도덕심리 모델이 있다. 이름하여, ‘성층권 밖 우주 도덕심리 모델’(우주모델)이다. 이것은 정상모델과는 사실 양립불가능한 것이지만 묘하게도 공존하고 있다. 이 모델 속에 속한 자들은 약한 자에 대해 잔인하고, 잘못했음에도 부끄럼을 알지 못하며, 매사에 오만하기 그지없고, 옳고 그름엔 눈을 감는다. 이들에게 인의예지는 장식장 속의 전시품에 불과하니, 지구에서 살면서도 사실 성층권 밖 우주에 사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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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선체에서 발견된 뼈 조각 은폐 건과 관련해서 이 두 모델을 적용시켜보자. 문재인 정권이 그 은폐에 어떤 경우든지 책임이 있다면, 관련자들은 ‘측은지심을 모르는 놈‘이며, 정권은 부도덕한 정권이 된다. 그러나 박근혜 정권이 계속되었다면ㅡ세월호 선체조사는커녕 인양조차 되지 않았을 것이지만, 크게 양보를 해서 인양조사 중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가정해 보자ㅡ관련자들은 ’세계관이 다른 사람들‘이라 사과조차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전자의 사람들은 ’정상모델‘ 속에서 평가되고, 후자의 사람들은 ’우주모델‘ 속에서 평가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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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모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세상 살기가 쉽지 않다. 뭘 조금만 잘못해도 같은 모델 내의 사람들과 우주모델 사람들로부터 동시에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우주모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 살기가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우선 문제가 발생해도 정상모델 사람들로부터 공격의 강도가 약하다. 지상에서 떨어져 저 성층권 밖 우주에서 살아가는 우주인들에게 지구인들이 뭐라 말하겠는가. 또한 우주인들끼린 공범의식이 강해 여간해선 서로 간 공격조차 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로 인사청문회에서 위장전입, 표절, 투기 등의 전력이 나타나더라도, 전자의 후보자에겐 치명적이지만, 후자의 후보자에겐 큰 결격사유가 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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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어떻게 해서 ‘우주모델’이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도 상당한 정도의 세를 형성하게 된 것일까? 연구대상인데, 나로선, 이렇게 잠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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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층권 밖 우주 도덕심리’는 신분질서 속에서 나온 지배자의 심리다. 이 모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이 사회의 주인으로 알고 있다. 나는 양반 너는 상놈, 나는 노예주 너는 노예라는 심리가 그들에게 있다는 것이다.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으니 같은 도덕기준이 적용될 수 없다. 이들은 완전히 KO로 눕혀지기 전엔 도통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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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립 불가능한 두 개의 도덕심리가 갈등을 일으키는 사회에선 정의도 평등도 실현하기 힘들다. 어떤 사회든지 발전을 위해선 이 두 개의 도덕심리가 공존토록 해선 안 된다. 우리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성층권 밖 우주 도덕심리’를 추방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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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한 가지 방법이 있다면, 앞으로 30년 정도, 우주모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이 사회의 지배권을 내줘서는 안 된다. 한 세대 정도 정상 도덕심리가 이 사회를 지배하면 대한민국도 정상화의 길로 나아갈 것이다. 오늘 날 누구나 부러워하는 북구라파의 사회복지국가가 그냥 된 게 아니다. 반세기 이상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장기 집권해 그 사회를 완전히 개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