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 123

가을 남자

가을 남자 어느새 가을이 무르익었다. 어딜 가도 울긋불긋 세상이 온통 화려한 정원이다. 이 좋은 날, 근교에 나가 사진을 찍었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신념으로 나를 찍었다. 찬란한 단풍도 오늘만은 참아다오, 오늘 주인공은 너희들이 아니고 '내'니라. 가을 남자 한 남자가푸르른 하늘 우러러 보기 부끄러운 날노-란 나뭇잎 눈발처럼 휘날려 포도를 덮는 날힘빠진 햇살 마지막 안간힘으로 대지를 덥힌 날소슬바람 맞으며가을 속으로 걸어간다서울 남부순환로 2015년 10월 24일 서울 하늘 도봉산의 가을(경희대 정형근 교수님 촬영)

지식인의 글쓰기

지식인의 글쓰기 오늘이 한글날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저는 한국인으로 태어나 자긍심을 갖고 산 적이 별로 없습니다. 해외에 나가 공부를 하거나 여행을 할 때, 한국역사와 문화를 자주 생각해 보았지만, 외국인들에게 딱히 자랑할 만한 게 별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저로 하여금 한국인, 한국문화에 대해 무한 긍지를 가져다주는 게 있습니다. 바로 한글입니다. 인류역사상, 모든 사람들이 알기 쉽게 자신의 언어를 표기할 수 있는 문자를, 인위적으로 만든 예가 한글 외에 또 어디에 있습니까. 그 목적성과 그 과학적 수준을 어느 문자 체계가 따라올 수 있습니까. 그런 이유로 저는 오늘이 5천 년 민족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날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국경일로 대대손손 경축하는 것은 우리들의 의무입니..

두 가지 슬프고도 감사할 일

두 가지 슬프고도 감사할 일 나는 하루 대부분을 학교에서 보낸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저녁까지. 그렇다보니 보통 점심, 저녁 두 끼를 학교에서 해결하는 일이 많다. 그런 내게, 최근, 아주 슬픈 일이 발생했다. 아마 나만이 아니고 우리 학교에 다니는 많은 학생과 교직원들도 내 마음과 그리 다르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슬픈 일은 모두 내가 자주 다니는 식당에서 일어났다. 하나는 학교 뒤에 있는 동네 밥집이다. 이 밥집은 2년 전 개업을 한 테이블 대여섯 개의 조그만 식당이다. 이곳에서 내가 자주 먹는 음식은 된장찌개 백반. 이 집 된장찌개는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손맛을 느낄 수 있어 하루에 두 끼를 먹을 정도였다. 주인 아주머니 올케가 충청도 태안에서 보내오는 된장으로 끓인다는 이 찌개를 먹다보면, 솔직..

무덤 앞에서

작년 이맘 때 나는 스웨덴 룬드라는 작은 도시를 배회하였다. 이국 땅에서 혼자 지내는 것은 생각보단 쉽지 않았다. 나의 일과 중 즐거움은 도시 산책---그것은 지금도 그렇지만---.산책 길에서 꼭 들렀던 곳은 공원 묘지였다. 200여 년이 넘은 공원묘지는 내게 안식을 주었다. 나는 그곳 벤치에 앉아 책도 읽고 일기도 썼다. 그리운 사람 하나하나를 기억해 내기도 했다. 묘소마다 사연이 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 쓰여진 조그만 비석 하나하나를 보면서 그 사연을 알아보고자 했다. 그 중에는 이런 묘소도 있었다. 아주 작은 비문이 있고, 꽃이 놓여져 있고, 그리고 벤치 하나가 놓여져 있는 것이다. 저 벤치는 무엇일까?생각할 것도 없이 그것은 가족이 묘소를 둘러보면서 죽은 이를 회상할 때 잠시 앉는 곳이리라. 나..

진보와 보수에 대하여 그리고 나의 희망에 대하여

일요일 아침이다. 하늘을 보니 오늘도 무척 더울 모양이다. 며칠 전부터 머리를 떠나지 않는 문제가 있다. 진보란 무엇인가, 보수란 무엇인가? 오늘 아침 이에 대해 생각을 정리해 본다.문자 그대로 진보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보수는 ‘현재를 지키는 것’이다. 한 사회에는 분명히 이 두 가지 성향을 갖는 사람들이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이것은 보편적 현상이다. 우리 사회도 그렇다. 아니 어느 사회보다 이 성향간의 마찰이 심한 사회다. 진보주의자는 현재에 불만을 갖고 그것을 개혁해 새로운 현재를 만들려고 한다. 이에 대해 보수주의자는 현재의 질서를 존중하면서 내일도 가급적 오늘이기를 바란다. 보수주의자에게는 현재에 문제가 있어도 그 원형을 버릴 수는 없다. 약간의 보수를 가하는 정도에서 현재를 고수하고자..

변호사의 두 가지 문제

변호사의 두 가지 문제 내 페친 중 상당수가 변호사들일 것이다. 이 분들의 고충을 잘 알고 있기에 오늘은 그에 관해 한 마디 하자. 제대로 변호사 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변호사는 항상 두 가지를 고민한다. 하나는 사무실 유지다. 요즘은 돈을 많이 받는 고용변호사들도 적지 않지만 아직도 많은 수는 기본적으로 사무실을 유지 운영해야 하는 개업 변호사들이다. 이들은 사실상 기업의 경영자나 다름 없다. 때문에 다른 사업 경영인처럼 적절한 비즈니스를 해서 수입을 얻어 그것으로 직원들 월급, 건물 임대료, 세금 등을 내야 한다. 변호사의 순수입은 그 나머지다. 그런데 이런 사무실 운영이 해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옛날 변호사들은 그저 사무실에서 의뢰인을 기다리기만 하면 되었다. 변호사 수가 적으니 사건 수임에는 큰 어..

박 조르바를 꿈꾸며

박조르바! 터키 마르마라 해협을 건너는 선상에서, 멀리 트로이를 바라다 보는 나를, 누군가가 찍었다. 나는 예전부터 지중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 내 몸을 던지고 싶었다.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으면서 자유인 조르바를 동경했다.나도 그처럼 자유를 얻어 하늘 높이 훨훨 날고 싶었다.카잔차키스가 말하는 조르바는 이런 인물이었다. "조르바는 내가 오랫동안 찾아다녔으나 만날 수 없었던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살아 있는 가슴과 커다랗고 푸짐한 언어를 쏟아 내는 입과 위대한 야성의 영혼을 가진 사나이, 아직 모태인 대지에서 탯줄이 떨어지지 않은 사나이였다."(그리스인 조르바, 이윤기 역, 22쪽) "지금 세상이 아닌, 좀 더 원시적이고 창조적인 시대였다면 조르바는 한 종족의 추장쯤은 넉넉히 했으리라. 그는 앞장서서 도끼를 ..

아름답고 따뜻하고 용감한 벗, 내툰나잉, 우리 곁을 떠나다

아름답고 따뜻하고 용감한 벗, 내툰나잉, 우리 곁을 떠나다 오늘 저녁 부천 석왕사에서는 한 외국인의 추모행사가 있었습니다. 그의 이름 내툰나잉. 난민이자 버마의 민주투사입니다. 그는 아웅산 수지 여사가 이끄는 NLD 한국 지부를 이끌었습니다. 2000년대 초 그는 NLD 친구들과 함께 난민신청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엔 난민으로 인정받은 외국인이 10명도 채 안 되었을 때입니다. 저는 당시 민변에서 난민지원활동을 하면서 그와 그의 친구들을 도왔습니다. 이들은 민변의 지원 아래 난민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불법체류자의 지위를 벗어났습니다. 그와 그의 친구들은 지난 십 수년간 한국에서 조국 버마의 민주화를 위해, 아시아 각국의 민주운동가들과 연대하며, 싸웠습니다. 이제 버마가 민주화되어 가면서 곧 귀국을 앞두고 있..

골프에 대한 단상

골프에 대한 단상 그림 같은 초원에서 운동하는 사람들... 아무리 보아도 신선놀음이다. 골프는 참 좋은 운동이다. 그런 골프를 왜 안할까? 대통령이 갑자기 골프 해금령(?)을 내렸다. 공직사회가 살판났다. 그동안 대통령 눈치 보느라 그 좋은 골프를 마음대로 치지 못했으니 얼마나 불편했을까. 대통령이 골프를 안 하니까-나는 그렇게 안다-고위 공직자들이 골프채를 잡으면 좌불안석이었던 모양이다. 근무시간 외에 자기 돈 내고 치면 대통령인들 뭐라 할 수 있겠는가. 그게 죄도 아니고... 그게 문제라면 전국 5백 개가 넘는 골프장은 뭐란 말인가. 그런데 그게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공직자들의 골프가 대부분 갑을관계에서 친다니 그 부담은 고스란히 을이 부담할 터이다. 그게 바로 향응이고 뇌물이렷다. 공직자들이여, ..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읽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한국적 민주주의’를 읽다 88올림픽도로를 타고 여의도를 지나다 보면 우람하게 서 있는 대한민국 국회의사당이 보입니다. 여러분은 그 건물을 보면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그럴 때마다 한 마디를 합니다. “저 국적 없는 의사당 건물을 보라.” 국회의사당이 준공된 것은 1975년. 당시 몇 몇 건축가들이 이 의사당 건축에 참여하여 설계안을 제출했습니다. 결국 최종안은 몇 작품이 절충되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그 어떤 응모작품에도 돔 설계는 들어가 있지 않았습니다. 돔이 들어간 것은 건축가들의 아이디어가 아니라 권력자들의 아이디어였습니다. 당시 건축에 참여했던 건축가들은 원 설계가 평지붕인데 어떻게 거기에 돔을 올리냐면서 극력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칼자루를 쥐고 있는 권력자들의 귀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