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주장/복지

문재인 케어, 논란의 배경

박찬운 교수 2017. 12. 13. 06:00

문재인 케어, 논란의 배경

-복지국가로 나아가기 위해 무엇을 정비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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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의사들이 난리다. 곧 대규모 데모를 하겠다고 한다. 새 정부의 이른바 문재인 케어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문재인 케어의 골자는 건강보험의 비급여 항목(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MRI, 초음파 검사료, 로봇 수술료 등)을 급여화해 국민들의 의료비 부담을 줄인다는 것이다.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높이는 것이니 국민들로선 환영할 일이다. 그런데 왜 이걸 의사들이 반대한다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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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은 정부가 재원확보 대책도 없이 막대한 돈(30조)이 들어가는 일을 하니 반대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속내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되면 의사들에겐 실질적으로 수입이 줄어들 것 같기 때문이다. 입장 바꾸어 보면 이해 못할 바가 아니지만, 국민 입장에선, 중병을 앓게 되면 기둥뿌리 뽑혀져 집안이 풍비박산 나는 현실을 그대로 놓아둘 순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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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문제는 우리 건강보험이 안고 있는 근원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이다. 즉, 우리의 의료구조와 건강보험이 애초부터 조화되기 어려운 데서 나온 필연적 결과다. 앞으로도 의사들은 수입이 준다면서 정부를 원망할 것이고 국민은 제대로 된 건강보험 만들라고 소리를 높일 수밖에 없다. 오늘 그 내막을 좀 점검해 보고 입장을 정리해 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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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우리나라 의료는 공공의료가 아닌 개인병원 중심의 각자도생 방식이다.

우리나라에 현대의학이 상륙한 일제강점기 이래 의사는 귀할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서양의학을 배우는 것 자체가 특권이었으며 그런 환경에서 양성된 의사는 특권층일 수밖에 없었다. 의사는 잘 사는 것이 보장된 직업이었다. 그런 의사가 되는 과정은 모두 개인에게 맡겨졌기에 대부분 잘 사는 집안의 자식이 의사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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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우리나라의 공공의료는 전혀 발전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국의 병원 90% 이상이 개인병원이다. 의료를 완전히 개인에게 맡긴 거나 마찬가지다(병상수 기준으로 공공의료 비중은 영국은 100%, 호주 69.5%, 프랑스 62.5%, 독일 40.6%, 일본 26.4%에 달함, 민간의료보험 중심의 의료공급시스템인 미국도 공공의료 비중이 24.9%임, 그에 비해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은 9.2%(2015년 기준)에 불과함). 의사가 되는 것도 개인의 힘이요, 병원을 운영하는 것도 개인이 할 일이었다. 병원은 기본적으로 각자도생의 방법으로 운영되었으니 의료의 공공적 가치는 안중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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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건강보험이란 맞지 않는 옷이 입혀지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정부는 80년대 이후 건강보험을 들여와 국민 개보험으로 정착시켰다. 건강보험은 국민들에겐 엄청난 의료 서비스 혁명이지만 의사들에겐 양면성이 있는 제도다. 수가 많아져 가는 의사를 먹여 살리기 위해선 건강보험이 필수적이다. 환자가 병원을 가기 어려운 환경에선 의사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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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건강보험의 운영주체는 의사에 대해 항상 적대적일 수밖에 없다. 한정된 건강보험 재원으로 전 국민에게 의료혜택을 주기 위해선 의사에게 지급하는 돈을 엄격하게 심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것을 위해 만든 게 심평원이다. 병원과 심평원은 항상 숨바꼭질하는 관계다. 병원은 좀 더 많은 돈을 받아내기 위해 과잉진료로 부풀리고 심평원은 그것을 깎지 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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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상황에서 의사들이 수입을 늘릴 수 있는 출구가 있는데 그게 바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이다. 건강보험 적용대상이 아닌 검사나 시술이라도 환자로선 치료를 위해 안할 수가 없다. 이것은 병원이 얼마든지 국가의 통제를 받지 않고 환자로부터 돈을 받아낼 수 있는 영역이다. 의사들은 바로 이 부분을 통해서 병원 수입을 조절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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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민간중심의 의료체계가 건강보험의 장애물이다.

이렇듯 우리의 건강보험 체제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여기에서 여러 문제가 파생한다. 그 하나가 관리비용이다. 의료비의 적정한 배분을 위해 만들어진 심평원 하나만 보라. 그것 운영하는 데 얼마나 많은 비용이 들어 가겠는가(2017년 지출 예산 4,300억, 임직원 수 2,800여 명). 또 하나. 건강보험을 확대하거나 변경하는 데 국민은 뒷전이고 의사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에겐 건강보험을 확대(보장성 확대)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좋은 일임에도 의사들은 반발한다. 그런데 이 두 가지 장애물은 똑 같은 원인에서 온 일란성 쌍둥이에 불과하다. 우리 의료기관이 민영중심이기 때문에 나온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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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 보라. 우리 의료기관이 기본적으로 국가나 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공의료기관이라면 위와 같은 문제는 일어나기 어렵다. 의사를 의심해서 의료비를 깎을 필요가 없고 건강보험을 확대한다고 해서 의사들이 반발할 이유도 없다. 공공의료기관 중심의 의료서비스 하에선 의사는 기본적으로 월급쟁이 근로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경영에 아무런 책임이 없고 부담도 없다. 그저 일만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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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곳에선 의료재원을 둘러싼 문제가 있다면 국가가 직접 의료 서비스 자체를 통제한다. 쉽게 말해 의료비를 감축하기 위해 웬만한 병으론 의사를 만나기 어렵게 의료 서비스 제도를 만들어 통제한다는 것이다(이것이 공공의료가 기본인 유럽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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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사회보장제도로서의 건강보험이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선 공공의료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의료 환경이 우리와 비슷한 미국이 사회보험인 건강보험 제도를 갖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간이 운영하는 의료기관은 공공의료를 보충하는 정도에서 기능해야 하는 데, 우리는 해방 이후 오늘까지, 그것을 만들지 못한 채 건강보험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오늘의 문제를 만든 근본원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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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해결책은 없는가

문재인 케어는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 우리가 지향하는 복지국가의 초석은 최소한 사회가 건강을 책임지는 사회다. 한국의 의료기관이 민영의료기관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어 건강보험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이 어렵다고 해도 이는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이것은 타협할 수 없는 우리의 목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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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시도하는 문재인 케어는 단시간 내에 의료비 100%를 건강보험으로 충당하겠다는 게 아니다. 현재 보장률 63% 수준에서 향후 5년 내로 70% 정도로 높이겠다는 것에 불과하다. 병원들이 감내할 수 없는 수준은 아니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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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케어를 제대로 하기 위해선 병원의 경영방법이 비용절감형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과도한 비용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개인병원의 대형화를 지양해야 한다. 무분별하게 시설투자를 해 호화병원을 만들어선 더욱 안 된다. 군살을 과감하게 도려내고 적정치료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심평원의 운영방법이 적정한지도 점검해야 한다. 불가피한 조직이지만 운영이 방만하고 고압적이란 비판에 대해선 새겨들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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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정부는 공공의료 비율을 높여가는 확고한 비전을 보여줘야 한다. 전국 곳곳에 공공병원으로서의 거점병원을 만들어 의료서비스의 중추적 역할을 맡겨야 한다. 그렇게 해서 궁극적으론 의사들의 주된 고용주가 국가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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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의료가 본질적으로 공공재임을 인정하지 않고선 이 문제가 풀리지가 않을 것이다. 의료서비스가 결코 돈 버는 수단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전제로 제도 개혁을 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