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뿌리를 찾아서

박찬운 교수 2023. 3. 2. 16:58

 

 
 
저는 항상 말하길, "인간은 뿌리를 잊어선 안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습니다. 보여주기 싫은 과거라도 그것을 부정해선 안됩니다. 그것을 부정하는 순간 인생은 더 보잘것 없는 것이 됩니다.

저는 시골에서 태어났지만 그 기억은 가물가물하니, 제 인생의 뿌리는 아마도 이곳 사근동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지금도 매일같이 점심을 먹으며 차 한 잔을 하는 곳, 바로 이곳입니다.

1973년 이곳에 왔으니 꼬박 5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이곳을 잠시 떠나 있었고, 직업을 갖고 나선 강남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저는 이곳으로 돌아왔습니다. 2006년 교수로 말입니다.
 
오늘 3년 만에 사근동에 가서 혼밥을 하고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특히 제가 50년 전 전학 온 초등학교를 가보았지요. 73년에도 서울에선 작은 학교였지만 학생 수가 3천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170여 명 밖에 안된답니다. 격세지감이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렵군요. 저출산 문제의 심각성이 이렇습니다.
 
교문 앞에서 한동안 학교를 바라 보았습니다. 50년 전 이곳에 처음 오던 날이 기억나는군요. 연구실로 돌아와 변호사 시절(거의 20년이 흘렀군요! 2004년에 썼으니) 옛날 생각이 나 썼던 시 아닌 시를 꺼내 보았습니다. 읽어보니 눈에 이슬이 맺히는군요.
 
 
 
 
 
 
나의 사근동 시절
-소년의 눈물-

 

1973년 10월 10일
어머니 손에 끌려
사근초등학교 5학년 1반
문턱을 넘었다

 

이OO 선생님
굵은 검은 뿔테 안경 너머
번뜩이는 눈매에서 서울 선생님의
모습을 보았다

 

첫날, 배우지도 않은 산수시험
형편없는 점수
짝꿍 김OO의 냉소 짓는 얼굴
30년이 지난 지금도 눈에 선하다
선생님 왈, 너 오늘 처음 왔지
그래 오늘은 봐 주마
60점 아래 다른 친구들
손바닥 얼얼토록 맞는 모습에서
앞으로 닥칠 비정한 서울이 보였다

 

셋방살이 좁은 방
밤 10시 일일 연속극이 끝나면
가족들은 일찍 잠이 들었다
집안의 희망 그 때서야 책장을 넘겼다

 

소년의 눈가에는
항상 우수가 넘쳤다
80명이 넘는 동급생들
그 중에는 소년보다 훨씬 우울한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 동급생들과
쌀 1말, 라면 2박스 어깨에 메고
청계천 변 사람 살 곳 아닌 곳에
살고 있는 친구를 찾았다
돌아오는 길 우리 모두는 울었다

 

내가 어른이 되면, 우리가 어른이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까
생일 날 케이크 한 쪽 먹어볼 신세는 되겠지

 

꼬박 30년이 지난 오늘
아련한 추억의 한 가닥을 잡아당기니
오랜 세월 고였던 소년의 눈물은
메말라 있던 나의 가슴을 타고 한 없이
흘러만 간다
 
(2004. 11. 29. 사무실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옛 추억을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