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박찬운 교수 2018. 8. 4. 10:16

어떤 결혼 파티에서 있었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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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저녁 매우 유니크한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한국 남자와 덴마크 여자가 결혼하는 행사였습니다. 결혼식이라기보다는 결혼 파티라고 하는 게 맞겠군요. 신랑 신부가 가까운 친구를 초대해 저녁 식사를 나누면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는 자리였습니다. 두 사람은 나이가 든 상태에서 인연을 맺기에 이미 사회적으론 상당히 알려진 분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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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안지 상당한 시간이 흘러 정식 결혼(법률혼)을 결정했답니다. 아마 오래 동안 어제의 결정을 위해 탐색의 시간을 가진 모양입니다. 한 사람은 런던에서, 또 한 사람은 세계를 무대로 여기저기를 돌아 다니는지라, 다른 사람들과는 매우 다른 환경에서 사랑의 마음을 키워 왔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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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를 매우 흥미롭게 만든 한 가지는 결혼신고와 관련된 에피소드였습니다. 두 사람은 어제 결혼신고를 위해 서울의 한 구청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두 사람만이 간 것이 아닙니다. 덴마크에서 온 신부의 부모님과 일가친척 30여 명이 함께 말입니다. 아마 그 구청이 생긴 이래 이렇게 많은 덴마크 사람들이 온 것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공무원들이 얼마나 놀랐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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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결혼신고는, 그저 신고서 양식에 몇 자 적어 제출하는 것에 불과한 것이고, 더욱 신랑이든 신부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간단한 절차가 아닙니까(제 경우는 결혼식 올리고 일주일 정도 지나 저 혼자 구청에 가서 신고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지난 30년 간 절차가 바뀌지 않았다면 지금도 대리가 가능할 테니 저처럼 일방이 할 수 있을 겁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럽 사람들의 결혼 제도와 관행 때문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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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유럽 사람들은 정식 결혼을 위해선, 관공서에 신랑 신부가 함께 가서, 공무원으로부터 결혼의사를 확인 받는 절차를 밟습니다(나라에 따라서는 종교적 결혼식을 함께 또는 별도로 해야 함). 이 때 증인으로 친구들이나 친척들이 함께 가지요. 신부들은 이 때 면사포를 쓰고 가기도 합니다. 이 절차 전후로 많은 하객이 참석하는 결혼식을 따로 하기도 합니다만 그것은 옵션이지 필수는 아닙니다. 그것은 그들의 환경과 능력에 따라 다릅니다. 성당에서 하기도 하고 때론 부모님 집 정원에서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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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하튼 이들의 결혼 절차에서 중요한 것은, 관공서에 신랑 신부가 함께 가서, 결혼의사를 밝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식적인 결혼식이지요. 사실 우리도 이렇게 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우리 결혼도 두 사람의 혼인 의사가 없이 결혼하면 무효가 되니 법률로 이런 절차를 만들면 되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돈 많이 드는 결혼식 이런 절차로 한 방에 날려 버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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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또 하나 흥미로웠던 것은 신부 아버님의 말씀이었습니다. 80이 넘은 덴마크 노인이 하객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까? 저에겐 꽤 관심거리였습니다. 과연 무슨 말씀으로 젊은 커플을 축하했을까요? 제가 당시 받아 적은 것을 그대로 말씀드리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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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처는 이미 결혼한 지 50년이 넘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의 이 젊은 커플에게 인생은 이것이니 이렇게 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인간은 모두 다른 인생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있는 한 모든 것을 극복하며 잘 살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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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아버님이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할 뿐 너희는 마음 변치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말씀하지 않더군요. 딸이 결혼하는데 사위와 사랑하면서 오래 동안 잘 살기를 바라지 않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그것은 남이 요구한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그들에겐 사랑 없는 결혼생활은 하루도 용서가 안 되는 모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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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중요한 것이 사랑이니 두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가꿔 나가야 할지는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랑은 깨질 수 있고, 그 순간 그 결혼은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생각의 저변엔 북구의 복지제도가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지는 사람을 자유스럽게 만드니까요. 결혼을 유지해야만 살 수 있다면, 울며 겨자 먹기로 사랑 없이도 살아야겠지만, 복지가 있는 한 그렇게 비참하게 살 필요는 없습니다. 사랑이 없는 결혼은 더 이상 계속 할 필요가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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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 신부의 부모님이 50년 이상을 함께 살아왔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두 분의 사랑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알 수 있는 것이지요. 나오면서 꼭 인사를 해야 할 것 같아 신부 아버님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한 마디 이렇게 해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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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의 말씀은 어떤 결혼식장에서도 들을 수 없는 최고의 덕담이었습니다. 신랑 신부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이들의 사랑은 영원할 것입니다.”


(2018. 8.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