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삶의 이야기

"인권위는 제 인생 전부였습니다" 인권위원 퇴임 인터뷰

박찬운 교수 2023. 2. 11.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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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노란봉투법 권고한 박찬운 전 인권위원 “尹정부, 대결적 접근 우려” - 시사저널e - 온

[시사저널e=주재한 기자] “차별금지법, 양심적병역거부, 사형제, 난민, 노란봉투법, 성소수자”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의 결정은 종종 우리 사회에 민감한 화두를 던졌다. 이런 가운데 우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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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했지만 지면사정상 기사화되지 않은 내용이 많다. 그 중에서 주요한 문답을 여기에 올린다.

Q1. 교수님은 지난 30년 이상 인권문제에 천착해 왔습니다. 그 내용을 잠시 회고해 줄 수 있습니까?

A . 처음부터 그렇게 살고자 결심했던 것은 아닌데 살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웃음). 저는 사법시험 26(1984)에 합격하였고 사법연수원 16(1987년 수료)로 법조인의 삶을 살았습니다. 군대를 다녀와 1990년 변호사 개업을 해 15년 동안 변호사를 했고, 2005년 초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으로 들어가면서 실무 법률가의 삶을 정리했습니다. 인권위에서 2년이 채 안 되는 동안 인권정책 수립과 관련된 일을 하다가 2006년 가을 대학(한양대 법과대)으로 옮겨 인권법 교수로 일했고, 2009년 로스쿨이 만들어지자 그때부터는 로스쿨에서 인권법과 법조실무를 연구하고 가르치다가 2020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차관급)으로 임명되었습니다. 이제 3년 임기를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이 기간 동안 저의 삶은 완전히 인권문제에 천착했습니다. 변호사 시절엔 감옥문제, 형사절차에서의 변호인 문제, 국가보안법 문제, 사형문제, 난민문제, 사회보호법 문제, 국제인권문제 등에 관심을 갖고 15년 간 활동을 했고,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정책국장 시절엔 변호사 시절 제가 다루어온 인권문제를 대부분 인권위의 인권 어젠다로 만들어 인권위의 인권정책권고로 연결시켰습니다. 이것 중엔 차별금지법 제정, 1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권고, 사형제 폐지 권고, 양심적 병역거부 및 대체복무제 권고, 난민법 제정 등 권고, 한센인 인권증진 권고 등이 있습니다. 그 뒤 학교에 간 뒤에는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연구와 교육을 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법률가 생활 만 30년이 되는 해에 인권위로 다시 돌아와 3년 이상 인권위의 조사구제 업무를 비롯해 인권위의 주요 결정에 참여했으니 제 인생 전부가 인권위와 관련이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지요. 이제 그 자리를 벗어나니 지난 30년 이상 제가 해 온 일이 머릿속을 스치니 감회가 큽니다.

 

 

Q2. 교수님은 어떻게 해서 법률가 초기부터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까?

A. 제 기억으론 인권문제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군대생활 과정입니다. 저는 부끄럽게도 대학시절엔 학생운동이나 민주화 운동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저 고시공부에 열중했습니다. 다른 친구들이 군부독재에 항거하면서 감옥 갈 때 저는 입신양명하기 위해 책을 읽었습니다. 이것이 제겐 항상 부채였습니다. 그러다가 고시 합격 후 사법연수원을 마친 다음 군대에 들어갔는데(1987) 그 때가 전두환 정권 말기였습니다. 당시 장교 임관 후 훈련을 받는 과정에서 6월 항쟁이 있었고 6.29 선언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을 보고 말할 수 없는 자괴감이 몰려왔지요.

그렇게 군대생활을 시작했는데 저는 어쩌다 보니 3년간 정훈장교로 일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정치장교인데 제가 소속한 사단의 장사병을 상대로 이념교육을 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때가 때인지라 정권수호에 앞장서는 업무가 많았습니다. 저로서는 상급부대에서 하라는 교육내용을 교묘히 바꿔 양심에 어긋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괴로운 나날이었지요. 그러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모순을 많이 발견했습니다. 군대는 저에게 새로운 눈을 갖게 한 교육의 장이기도 했습니다. 그 때 저는 앞으로 사회에 나가면 뭔가 다른 법률가가 되겠다고 다짐했지요. 이런 과정을 거치다 보니 제대 후 자연스럽게 진보적 변호사 그룹을 만나게 되었고 변호사 초년시절부터 인권활동을 하게 된 것이지요. 한마디로 말하면 대학시절과 군대시절의 암울한 삶이 법조인을 걸어가면서 다른 삶을 살아가게 하는 동력이 되었다할 수 있지요.

 

 

Q3. 교수님은 일찍이 국제인권법을 연구했다고 하는데 그 내용은 어떤 것인가요.

A. 제가 국제인권법에 처음으로 관심을 갖게 된 것은 90년 대 초입니다. 당시 민변 변호사들은 시국사건 변호에 열심히 참여했습니다. 저도 그 중 한 명이었습니다. 다만 저는 그런 활동을 하는 중에도 법정을 무대로 하는 활동보다는 뭔가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데 관심이 많았습니다. 즉 제도 자체를 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었지요. 그런 시각으로 문제를 보니 우리나라의 법률제도 특히 인권과 관련 있는 제도가 보통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였어요. 무릇 문제가 있다는 것은 어떤 기준이 있어야 하는데 저는 국제사회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법제도를 평가해 보고 문제를 발견했지요. 그러다보니 이 국제적 기준에 관한 공부를 본격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변호사 생활 6년을 마치고 가족을 데리고 미국으로 가서 공부를 했지요. 노틀담 대학에서 국제인권법(LL.M)을 공부했고 헤이그의 구유고슬라비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인턴쉽을 했는데, 당시 변호사 중에서 이런 경험은 저 외에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결국 귀국 후 제 변호사 생활을 완전히 달리 만들었고 계속적인 공부로 이끌어 국제법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지요. 제게 있어서 국제인권법은 단순히 학술적 탐구욕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우리 현실을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의미가 강합니다. 저는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 사회의 인권문제 대부분을 국제인권원칙에 따라 바꾸어 나갈 것을 강조해 왔지요.

 

 

Q4. 이제까지 인권문제를 직접 실무자로서 담당하고 연구자로서 연구해왔는데, 가장 보람스러웠던 것 몇 가지를 소개하면 어떤 것이 있습니까?

A. 우선 1993년 서울지방변호사회에 당직변호사제도를 제안해 그것이 채택되어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형사절차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는 게 매우 중요하다는 국제인권원칙에 따른 것인데 체포 즉시 변호사들이 피의자를 만나 조언을 해주거나 변호를 해주는 제도입니다.

두 번째는 국제인권활동입니다. 저는 90년대부터 30여 년간 유엔을 중심으로 논의되는 인권 프로세스에 직접 참여해 왔습니다. 유엔의 인권기구에선 정기적으로 각국의 인권상황을 보고 받고 심의하는 데 저는 이 과정에서 NGO 대표로 참여해 정부 보고의 문제점을 지적해 왔고 이를 토대로 국제인권기구가 대한민국 정부에 정확한 권고를 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이와 함께 국제인권법의 국내적 이행이라는 과제를 평생의 과제로 삼고 실무와 연구에서 제 역할을 찾아 왔습니다.

세 번째는 난민문제입니다. 저는 1999년부터 난민문제에 관심을 갖고 지원활동을 해왔습니다. 민변의 난민지원위원회를 만들어 수년간 위원장을 했고, 법무부의 난민인정협의회의 위원으로 직접 난민인정에 기여했습니다. 인권위에서 난민법 제정을 권고했는데 그 과정에서 저는 실무책임을 맡았습니다. 나아가 한센인 인권문제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저는 2004년 일본 변호사들과 연대해 처음으로 한센인 인권문제를 공론화시켰습니다. 대한변협에 한센인권소위를 만들어 그 위원장을 맡았고 일본 변호사들과 함께 일본에서 소록도 한센인을 위한 소송을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변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네 번째는 인권위에서의 활동인데 두 번의 인권위 생활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권 어젠다를 만들어 내는 데 기여했습니다. 차별금지법은 아직 제정에 이르지 못했지만 두 번에 걸쳐 인권위가 법안을 만들어 제안했는데 그 과정에 제가 깊이 관여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나라에 인권 청사진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인권위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을 매 5년마다 정부에 권고하는데 이제까지 4번을 했습니다. 저는 그 중에서 첫 번째와 네 번째를 담당했습니다. 첫 번째는 실무책임자로 네 번째는 추진단장으로 참여했습니다. 또한 인권위에서 지난 3년간 수 천 건의 진정사건을 담당해 그중에서 500여 건에서 인권침해를 인정하는 인용결정을 했습니다. 원 없이 인용결정문을 썼습니다. 마지막으로 저는 초대 군인권보호관으로 일했습니다. 2021년 말 인권위법 개정으로 군인권보호관 제도가 도입되었는데 저는 초대 보호관으로서 임기말 7개월 동안 전국의 각부대를 돌아다니며 보호관으로서의 존재감을 보여주면서 군에서의 인권침해에 적극 대응해 왔습니다.

 

 

Q5. 교수님은 인권문제만이 아니라 독서가로, 여행가로도 유명한데, 살아가면서 전공과 업무 외에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A. 저는 평소 건강한 몸을 위한 운동, 지적 근육을 기르는 독서 그리고 세상이라는 거대한 책을 읽는 여행 이 세 가지가 자유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수적으로 힘써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운동해서 건강하자! 몸은 정신의 물적 기초입니다. 몸과 정신은 분리되어 있지 않습니다. 몸이 부실하면 결국 정신도 부실합니다. 그러니 강건한 정신을 유지하려면 몸 또한 부단히 강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꼭 몸짱이 될 필요는 없습니다. 그저 팔다리 튼튼하고 허구한 날 잔병으로 병원 신세 지는 것에선 해방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건강도 노력하지 않으면 쉽게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음식은 절제하고 많이 걸어야 합니다. 젊어서부터 팔 굽히기, 윗몸 앞으로 일으키기 등을 열심히 해서 몸에 근육을 붙여야 합니다. 돈들이면서 운동할 필요도 없습니다. 이건 순전히 습관의 문제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간단히 스트레칭하고 근육운동을 해보십시오. 출퇴근 시간과 점심시간을 이용해 걸어보십시오. 제 경험으론 이런 것만 열심히 해도 충분히 건강히 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읽자! 독서는 정신을 기르는 데 있어서 필수적 양식입니다. 이것 없이는 어떤 정신도 기를 수 없습니다. 안중근 의사가 말했다 해서 회자하는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서 가시가 돋는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라는 말을 항상 가슴에 품고 살아야 합니다. 품격 있는 삶을 살고자 하면 반드시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은 습관이기 때문에 나이 들어 갑자기 읽으려면 어렵습니다. 어릴 때부터 꾸준히 책을 읽어 버릇을 키워야 합니다. 바로 이때 부모와 선생님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영어, 수학 아무리 잘해도 소용없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남는 것은 독서밖에는 없습니다.

여행을 하자!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 여행은 걸어 다니는 독서입니다. 세상과 자연은 어쩜 거대한 책입니다. 그 책을 읽는 게 여행입니다. 이것은 독서를 통해 머리에 입력된 것을 현실 속에서 내 눈으로, 내 가슴으로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여행을 많이 하면 할수록 앉아서 했던 독서는 내 살과 피가 됩니다. 여행을 하라는 것은 현실을 직시하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독서가 아무리 중요해도 삶 그 자체를 놓치면 공허합니다. 현실과 이상을 일치시키려는 노력이 바로 여행이란 움직이는 독서입니다. 도시에 사는 사람이라면 우선 집을 나가 동네를 돌아다녀 보십시오, 도시 이곳저곳을 돌아보십시오. 의외로 새롭게 발견하는 것이 많을 것입니다. 국내여행을 떠나보십시오, 대한민국이 비록 좁은 땅이지만 여러분이 가본 데가 도대체 몇 곳이나 됩니까. 대한민국도 보면 볼수록, 가면 갈수록 새로운 곳이 많습니다. 기회가 되면 세계로 나가보십시오. 넓은 세계로 나가 보편적 존재로서의 나를 경험해 보십시오. ‘란 존재와 다른 세계에서 만나는 는 결코 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지구라는 공간에 사는 형제요 자매입니다.

저에게 어떻게 하면 인간은 자유로울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운동해서 몸을 튼튼히 하고, 그것을 기초로 책을 읽어 지식을 쌓고, 몸을 움직여 세상을 주유하는 삶이라고요.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좀 더 완성된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평생 해야 할 공부의 과정이자 바로 제가 누구에게나 권면하는 생각은 깊게, 생활은 단순하게의 삶을 실천하는 방법입니다. 이 단순한 것을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식 그리고 이 땅의 모든 이들이 익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진정한 자유인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Q6. 독서의 중요성을 말씀하셨는데 평소 교양서를 쓰시는 분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그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A. 저의 독서는 군대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시절엔 그저 고시공부에 열중하다보니 변변한 책 한권 읽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군대 3년 정훈장교를 하면서 수많은 사회과학도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늦깎기 독서이지요. 그러나 제대 후 15년간은 생업과 새로운 공부에 매달리다 보니 깊은 독서를 하기 어려웠습니다. 2006년 학교로 옮기고 나서야 본격적인 독서를 하기 시작했지요. 매년 100권씩 읽는다는 목표로 독서를 해왔는데 그게 벌써 15년이 넘었군요. 그러다 보니 거기에서 얻은 새로운 인식이 많습니다. 인권이란 것도 그저 육법전서나 법률서적으로만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인지를 물으면서 그 속에서 인간의 권리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교양서를 쓰는 것은 이런 저의 깨달음을 일반시민들에게 나누는 작업입니다. 독서와 여행을 통해 얻은 새로운 지식을 정리하고 이를 책으로 엮는 것이지요. 2010년부터 그렇게 해왔는데 지금까지 7권의 교양서를 썼습니다. 독서에 관한 책으론 책으로 세상을 말하다’(2010), ‘자유란 무엇인가’(2016), ‘궁극의 독서’(2020), 여행 및 역사에 관한 책으로 문명과의 대화’(2013), ‘로마문명 한국에 오다’(2014), 예술에 관한 책으로 빈센트 반 고흐 새벽을 깨우다’(2015) ‘에세이 모음집으로 경계인을 넘어’(2016)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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