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서울 이곳저곳

아련한 추억을 찾아-중부건어물 시장 탐방기-

박찬운 교수 2020. 12. 10. 05:08

 

 

중부건어물시장 을지로 4가역 입구. 1950년대 말 남대문시장과 동대문시장만으로는 시장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시내 중심에 대형시장을 만들었다. 처음엔 일반시장으로 문을 열었지만 곧 건어물시장으로 특화되었다. 지금도 크지만 한 때 전국 최고, 최대의 건어물 시장이었다.

 

점심을 간단히 해결하고 나 혼자만의 산책시간을 가졌다. 오늘 간 곳은 을지로 4가 근처, 중부건어물시장(중부시장). 발걸음을 재촉하면서 아주 먼 옛날 생각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1973년 충청도 벽촌을 떠나 서울로 올라왔다. 말 그대로 서울은 가까운 친척 하나 없는 사고무친한 곳. 아버지는 한국 전쟁 시 장교로 참전했고 전쟁 후엔 시골 면장을 하신 분이다. 나름 자존심이 센 분임에도 피치못할 이유로 식솔을 거느리고 낯선 서울 땅을 밟았다.

 

중부시장 을지로 입구에서 건너편을 보면 또 하나의 시장이 있다. 방산시장. 이 시장엔 종이, 비니루, 벽지 등 전문상회와 각종 인쇄, 판촉물 가게가 즐비하다.

 

먹고 살기 어려워도 아버지 성품으론 감당하기 힘든 일이 장사다. 그런 아버지가 서울에 올라와 처음 손을 댄 일이 도심 한 가운데 건어물 시장에서 마른 멸치를 파는 것이었다.

뒤에 안 사실이지만 군대시절 친구 중 한 분이 멸치로 유명한 통영 출신이었던 모양이다. 그 분의 소개로 아버지는 생전처음 멸치 장사를 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 일터가 바로 중부시장!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중부시장은 엄청난 인파가 몰려 발 디딜 틈조차 없고 왁자지껄한 소리에 옆 사람과 말도 주고 받기 어려운 곳이었다.

 

중부시장 남쪽 출입구 쪽. 상설상가 답지 않게 건물도 낡았고 상품진열도 시골 5일장 수준보다 못하다. 시장 내에서도 가게 간 빈부차가 크다.

 

지금이야 건어물을 사려면 어디로 갈까? 제기동의 경동시장? 거기도 좋다.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이나 노량진수산시장? 물론 거기도 좋다. 하지만 한때 그들 시장과는 비교가 안 되는, 정말 비까번쩍한 영화가 중부시장에 있었다.

장안에 큰 시장이라면 남대문시장동대문 시장인데, 이 두 시장만으론 수요 감당이 안 되니, 두 시장 사이에 또 하나의 큰 시장을 만든 것(50년 대 말), 그게 중부시장의 출발이다. 처음엔 일반시장으로 출범했으나 60년 대 중반쯤부터는 건어물시장으로 특화되었다.

전국에서 밀려오는 사람들과 모든 물산이 서울로 몰리는 덕에, 이곳은 설립 10년도 안 돼 전국 최대 규모의 건어물 시장으로 발돋움한다. 뒤 돌아보니 나의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인 1970년 대 초중반이 이 시장의 전성기였다. 빛이 번쩍번쩍 나는 서울 최고의 번화가였다.

 

중부시장 남쪽 입구 건너편의 오장동함흥냉면. 내 어린 시절 최고의 외식 식당이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함흥냉면을 먹었다. 지금은 건물을 개축했지만 과거엔 장사가 잘 돼도 허름한 식당에 불과했다. 냉면 한 그릇을 먹으려면 항상 30분 이상은 줄을 서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 시절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내 인생 최초로 함흥냉면이란 것을 먹어 본 것. 그 식당이 이 중부시장 남쪽 입구 건너편에 있는 오장동함흥냉면이다.

이 냉면집이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 가는 날마다 입구가 장사진이었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손님들이 문 앞에서 줄을 섰는데, 그 길이가 족히 50미터가 넘을 정도였다. 어머니가 갈 때마다 내게 말씀하시길, “이 집은 밤에 돈을 가마니에 담는다고 하더라.“ 없이 사시는 어머니가 얼마나 부러우셨으면 그런 말씀을 매번 하셨을까....

 

중부시장에서 2-3분 거리에 중구청이 있다. 이 일대가 지금 곳곳에서 재개발이나 도시재생사업이 진행 중인데 낡은 중구청을 철거하고 이렇게 멋진 현대식 청사를 만들었다. 한 가지 흠은 청사외벽을 유리로 만든 것. 저것이 보기는 좋아도 탄소사회에서 녹색사회로 나가는데 걸림돌이다.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춥다. 자연스레 전기를 많이 쓸 수 밖에 없는 건물구조다.

 

역시 아버지는 장사와는 거리가 먼 분이었다. 젊은 시절부터 서울에 올라와 장사로 잔뼈가 굵어진 사람들과 경쟁할 수가 없었다. 시골에서 가지고 온 얼마 안 되는 돈마저 순식간에 날리고 멸치 장사를 접고 말았다. 그 뒤로 가족의 궁핍함이 운명처럼 다가왔다.

중학교 시절 일곱 정거장이 되는 길을 거의 뛰다시피 통학한 것은 부모님께 차비 달라는 말을 차마 못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누구보다 걸음이 빠른데 그 이유가 중학교 시절 그 다리 훈련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는지...

 

중부시장의 핵심 중앙거리. 시장은 이런 상설가게 거리가 열 십자 모양으로 되어 있다. 점심 때인데도 손님이 한산하다. 과거 같으면 인산인해였을텐데... 코로나의 여파가 크다.

 

거의 50년 만에 시장 곳곳을 살펴보았다. 시장 한 가운데 점포들은 제법 현대화된 상설시장의 면모를 갖추었지만 후미진 골목 가게는 수십 년 동안 전혀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당장이라도 철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점포들이 수두룩하다. 언제 재개발이 될지 모르니 점포주들이 투자를 하지 않는 모양이다.

마음이 짠하다. 더욱 코로나 태풍이 시장 전체를 쓸고 가 손님 구경하기가 어렵다. 가겟집 상인들의 한 숨 소리가 지나가는 나를 붙잡는다. 그냥 지나치기 어려워 계획 없는 쇼핑을 했다. 신안 앞바다에서 왔다는 곱창 김을 샀다.

 

대한민국의 모든 건어물이 다 있다고 보면 된다. 그 중에서도 멸치와 김 등이 유명한데, 왼쪽 가게에서 김 쇼핑을 했다. 내가 곱창김을 좋아하는 데 백화점이나 대형마트에 가서 사는 것보다 이곳에서 사면 반값에 살 수 있다.
중부시장은 뭐니뭐니해도 멸치시장이다. 대한민국 최고의 멸치를 여기서 볼 수 있다.
김가게. 올해는 곱창김이 좋다. 신안에서 왔다고 하는데, 이 집에서 산 곱창김으로 저녁을 먹어보니, 대형마트에 산 기존의 곱창김과는 두께와 맛에 있어 레벨이 달랐다. 강추!
중부시장이 건어물만 파는 게 아니다. 각종 젓갈류도 많다.
각종 포가 즐비하다. 내가 좋아하는 아구포가 한 아름을 사도 단돈 1만원이다. 저런 것 하나를 사가지고 가서 맥주안주로 마시면 최고!
굴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곳에 가면 질좋은 굴비를 싸게 살 수 있다. 백화점에서 굴비를 사보았자 건조가 제대로 안 돼 비린내가 많이 난다. 이곳은 파는 동안 계속 자연건조를 하니 비린내도 덜하고 맛도 좋다. 이게 재래시장의 장점이다.
경동시장과 비교할 수 없지만 시장 이곳저곳에 수삼가게도 있다.
건어물만 있는 게 아니다. 각종 과일을 말린 건과도 많다.

 

과거의 영화는 지나갔지만 중부시장이 위엄을 완전히 잃은 것은 아니다. 아직도 점포수는 셀 수 없이 많고 전국 각처에서 온 건어물은 눈을 휘둥그레 할 정도다.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의 건어물보다 품질도 좋고 가격도 착하다.

이런 시장을 자주 오면 생활비를 대폭 줄일 수 있을 거다. 직장이 근처에 있으니 앞으로 종종 들러 좋아하는 건어물을 사야겠다. 시장도 살리고 내 추억도 살리고... 장사에 실패했지만 가족들 먹여 살리겠다고 체면 몰수하고 멸치장사를 하던 아버지... 그 모습이 또렷이 기억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