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과 인생/기타

몰카에 대한 기억

박찬운 교수 2016. 7. 18. 05:16

금지의 유혹, 몰카에 대한 기억


우리에게 자유가 제한될 때 그 때 우리는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 그저 말없이 그 제한에 순응하는가, 아니면 어떻게 해서라도 그 제한에 도전하는가. 나는 그 행동이 특별히 범죄적이거나 다른 사람에게 큰 해를 끼치지 않는다면, 그 제한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은 자유인답지 않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자유가 통제될 때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하나는 순응, 다른 하나는 저항이다. 자유에 대한 통제가 힘과 권위에 의해 비롯되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포기하고 순응한다. 그러나 의외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많다. 그들은 통제자의 눈을 피해 그 자유를 누리기도 하고, 때론 그 통제에 몸으로 저항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보자. 누군가(학교)가 머리 기르는 것을 금지했다고 하자. '모든 학생(남학생)은 3센티미터 이상 머리를 길러서는 안 된다. 그것을 위반하면 교문에서 선생님이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 것이다.'


이럴 때 우리들 중 대다수는 조용히 그 금지명령을 준수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엔 이에 반발하여 신체의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무언가 시도하는 사람들도 있다. 도대체 머리를 기르는 게 무엇이 잘못이라는 말인가! 


이들은 그런 끔직한 금지에도 불구하고 머리를 기른다. 만일 그런  금지가 없었다면 머리에 신경도 쓰지 않았을텐 데, 오히려 그 금지가 있기에 자유를 실험해 보고 싶은 것이다. 교문에서 선생님이 바리깡으로 머리 한 가운데 고속도로를 내도 자유를 막을 수 없다. 어떤 친구는 선생님이 바리깡을 댈 때 순순히 머리를 내놓지 않는다. 머리를 기르는 것은 내 자유라고 하면서 선생님의 말씀에 반항하기도 한다. 


이런 생각의 연장선에서 나는 유사한 (반항 혹은 위반의) 경험을 종종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한다. 세계적인 박물관(미술관) 중엔 여러 곳이 전시품에 대한 사진촬영을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소장품의 훼손을 막는다는 게 이유인데, 난 그것을 선뜻 이해할 수 없다. 사진촬영금지에 합리적 이유가 있다면 나도 그 제한에 당연히 동참할 용의가 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엔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그 단적인 증거가 세계 유명 박물관의 상이한 정책이다. 세계 유수의 미술관 중 하나인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은 사진촬영을 엄격히 금하지만, 오히려 그보다 한 급 위인 파리 루브르는 그렇지 않다. 그 차이가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연유할까. 나는 그 이유를 모르겠다. 


나는 사진촬영을 금지하는 박물관에 가면, 오히려 더 촬영하고 싶은 욕구를 주체하지 못한다. 어떻게 해서라도 내가 본 그 전시품 앞에서 사진기 셔터를 누르고 싶다. 경비원이 와서 통제를 해도 나의 그런 욕망을 누를 순 없다. 금지는 내 자유를 유혹할 뿐이다.


오늘 그렇게 금지된 곳에서 내가 찍은 몇 장의 몰카사진을 감상하자. 감상의 대상은 그 사진으로 보게 되는 예술품이겠지만, 덤으로 그 사진을 찍기까지 체면불구 셔터를 누른 내 작은 반항도 상상하기 바란다.


아, 한 가지 이건 꼭 말하자. 내가 이제껏 촬영금지구역에서 사진을 곧잘 찍었는데, 한 곳은 아무리 보아도 난공불락! 베를린 노이에 국립미술관의 네페르티티상. 내가 보아 온 촬영금지구역 중 최상의 보안을 유지하는 곳이다. 그곳 박물관은 다른 곳에선 사진 찍는 게 자유인데, 그 조각상만은 절대예외. 보안요원 3-4명이 철통같이 그 주변을 감시하면서 관람객의 사진촬영을 금한다. 


언젠가 베를린에 다시 가는 날 또 한 번 시도해 볼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내 방에 있는 고대 이집트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는 네페르티티 조각상 옆에 그 사진까지 놓아 둘 생각이다. 그게 진짜 가능할까? 


1. 일본 나라 호류사의 백제관음상


이 사진은 며칠 전 백제관음상 이야기를 하면서 풀어 놓은 것이다. 꼭 10년 전 나라 호류사에 갔을 때 그곳 백제관음전에서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촬영에 성공한 것이다.


2. 이태리 피렌체 피티궁 미술관의 마키아벨리 초상화


이 사진은 2012년 1월 피렌체 피티궁 미술관에서 찍은 마키아벨리 초상화(산티 디 티토 작)다. 이 그림은 일명 마키아벨리 공식 초상화로, 우리가 그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다면 바로 이 그림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작품이 피티궁에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것을 보는 순간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내 기록에 남겨야겠다는 의지가 불탔다.


이른 아침이라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방안엔 경비원이 한 사람 왔다갔다 한다. 이 일을 어쩌나. 그래도 나는 시치미를 떼고 방을 떠나지 않았다. 드디어 때가 왔다! 경비원이 다른 방으로 가지 않는가. 다른 근무자가 출근을 하지 않았는지, 아니면 옆방까지 경비를 서야 하는지 한동안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품 속에 숨긴 핸폰을 꺼냈다. 그리고 마침내 저것을 찍었다. 가슴 뿌듯한 순간이었다. ㅎㅎ


3. 이태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토마스 모어 초상화



이 사진 또한 위 마키아벨리 초상화를 찍은 날 인 2012년 1월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서 찍은 것이다. 유토피아를 지은 토마스모어의 초상화다. 언뜻 보아도 모어의 젊은 시절을 그린 초상화임이 틀림없다. 이 초상화는 유리 액자에 넣어 전시되고 있어 사진을 찍을 때 내 모습까지 반사되어 찍혔다. 거기에다 급히 찍는 바람에 화질마저 별로다. 하지만 나로선 토마스모어에 대한 매우 귀중한 자료다. 


4. 이태리 피렌체 아카데미아의 다비드상


이것은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다비드상이다. 이것 또한 2012년 1월 피렌체를 방문했을 때 그곳 아카데미아에서 찍은 것이다. 원래 이 조각상은 피렌체 시뇨리아 광장의 베키오궁 앞에 서있던 것인데, 1873년 마모가 심해지자, 그 보존을 위해 현재의 아카데미아의 실내로 옮겼다. 원래 서 있던 자리엔 똑 같은 크기의 모조 다비드가 설치(1910년)되었다.


내가 이날 피곤한 몸을 이끌고 아카데미아에 간 것은 오로지 이 한 점을 보기 위한것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이냐. 경비원 몇 명이 관광객 사이사이에 배치되어 사진 찍는 것을 엄격하게 통제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참,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루브르에 가면 이 다비드보다 무려 1천 수 백 년이나 더 먹은 밀로의 비너스를 자유롭게 감상하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데, 왜 여기에선 그렇지 못할까? 갑자기 부화가 났다. 그래서 경비원들이 관광객을 감시할 수 없으면서도 그런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각공간을 찾았다


마침내 한 곳을 발견했다. 그런데 문제는 핸드폰의 셔터 소리. 몰카 방지를 위해 셔터 소리를 넣었다고 하지만 이럴 때는 불편하기 짝이 없다. 다른 나라 친구들은 소리 없이 사진을 찍고 있는데(사실 이곳저곳에서 경비원의 눈을 비해 사진 찍는 친구들이 많았다!), 내가 찍으면 그들마저 사진 찍는 게 어려울 터. 멀리까지 와서 민폐를 끼칠 것 같아마음이 조마조마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 와서 저것을 찍지 않는다면 어떻게 하나. 들키면 뭐 쿨하게 한마디하자. 아엠 소리! 


그렇게 해서 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과연 경비원들이 셔터 소리에 화들짝 놀라면서 늑달같이 달려왔다. 나는 웃으면서 "아엠 소리!"를 외쳤다. 그러자 이태리어로 무슨 말을 지꺼리는 데, 알아들을 수가 있나. 그냥 웃고 말았다. 내가 이태리어를 못하는 게 순간적으론 얼마나 고마운지.ㅎㅎ

(2016. 7. 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