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인생/안데스에 서다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5)-세상의 땅끝마을, 우수아이아-

박찬운 교수 2024. 1. 29. 19:40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15)

-세상의 땅끝마을, 우수아이아-

 
 

세상의 끝 우수아이아

 

 
2024년 1월 3 오전 엘 칼라파테 국제공항에서 우수아이아(Ushuaia) 행 비행기를 탔다. 비행시간은 한 시간 정도. 드디어 우리 일행은 세상의 땅끝마을(Fin del Mundo) 우수아이아의 땅을 밟았다. 특별히 위치를 알고 싶어 지도를 꺼내 보았다. 남위 54도 48분, 서경 68도 18분.
 

우수아이아 항구
우수아이아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잠시 산책을 했다. 이른 시간이라 거리는 텅 비어 있다. 이 거리가 우수아이아의 중심 거리다.

 
사람들은 여기를 땅끝마을(지구의 가장 남단에 있는 마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정확한 말이 아니다. 우선 땅끝마을은 대륙의 일부이어야 하지 섬이 될 수 없다고 하면, 남미의 땅끝마을 곧 세계의 땅끝마을은 칠레의 푼타 아레나스다.

이 도시는 마젤란 해협 상에 있는 도시로서 이 지역 파타고니아의 거점 도시이다. 토레스 델 파이네나 페리토 모레노 빙하가 있는 엘 칼라파테를 갈 때도 이곳에서 버스 등을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수아이아는 대륙의 일부가 아니라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의 남단 도시이니 이 기준으론 아예 처음부터 땅끝마을이 될 수 없다.
 

티에라 델 푸에고는 꽤 큰 섬이다. 7만4천 평방킬로미터니 겅기도와 강원도를 제외한 대한민국의 면적과 비슷하다. 이 섬을 칠레와 아르헨티나가 반반씩 갖고 있다. 우수아이아는 이 섬의 남단 비글 해협에 면해 있다. 푸에르토 윌리암스는 그 건너편 섬 나바리노 섬에 있다. 푼타 아레나스는 칠레 땅으로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의 북단과 대륙 사이의 수로인 마젤란 해협 중간에 있다.

 
만일 땅끝마을을 영토 개념으로 정한다면 섬도 당연히 땅끝마을의 자격이 있으나, 그 경우에도 티에라 델 푸에고의 우수아이아가 아니라 그 앞 바다인 비글 해협 건너편에 있는 칠레령 나바리노 섬의 푸에르토 윌리암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이 지구 최남단 도시를 우수아이아로 알고 연간 수만 명이 이곳을 다녀가는 이유가 무엇일까? 두 가지 이유일 것이라 생각한다.

하나는 아르헨티나의 홍보전의 성과. 인터넷을 검색하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우수아이아를 땅끝마을이라고 하는 것은 넘치지만 푼타 아레나스나 푸에르토 윌리암을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없다.
 

우수아이아 해상박물관. 과거 교도소였으나 지금은 이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알려주는 복합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물관의 바로 옆에는 해군부대가 있다.

 
나머지 하나는 역사성. 우수아이아19세기 후반부터 아르헨티나가 개발한 도시이고 그 뒤 계속 성장해 지금은 8만 명 이상의 인구를 가진 티에라 델 푸에고의 현도이다.

반면 푸에르토 윌리암의 역사는 매우 짧다. 1950년대 이후 만들어진 칠레 해군기지로서 인구는 고작 2천 명 남짓의 작은 도시다. 그러니 지명도에서 우수아이아를 따라가긴 어렵다.
 

비글 해협 중간에 있는 땅끝 등대

 

우수아이가 세상의 땅끝마을로 알려지니 관광지 어딜 가도 죄다 세상의 땅끝(Fin del Mundo)라는 말이 붙어 있다.

기차역은 ‘땅끝 열차’(Tren del Fin del Mundo), 도로의 어느 지점은 ‘땅끝 XX 도로’(Ruta XX del Fin del Mundo), 바다의 등대는 “땅끝 등대‘(Faro del Fin del Mundo)이다. 관광객이 많이 오는 곳엔 조그만 간이 우체국을 만들고 거기에 ’땅끝 우체국‘(Unidad Postal del Fin del Mundo)이라는 간판을 붙여 놓았다.

물론 이웃 나라 칠레도 지지 않고 파타고니아 남단의 여러 지점에 의례 저런 이름을 붙여 놓았다. 바야흐로 양국 간에 ’땅끝 전쟁‘이 한참 중이다.
 

땅끝 등대가 있는 섬은 이 지역 새들의 천국이다. 펭귄처럼 보이는 가마구지의 서식처이다. 펭귄은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섬에서 집단 서식한다.

 
솔직히 말해 우리가 이곳에 간 것은 그 유명세에 이끌려 간 것이지 꼭 땅끝마을이기 때문은 아니다. 파타고니아의 또 다른 절경을 기대한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 놓은 땅끝마을에서 그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함께 즐기는 것도 좋은 여행이 될 거라 생각했다.

우수아이아인들은 한 세기 전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는 이 외진 곳에 와서 도시를 일구었다. 세계의 여행자들이 오늘 이곳을 방문하는 것은 그 노고에 대한 보답이 아닐까.
 

땅끝 등대를 바라보며, 이날 비글 해협은 구름이 많이 끼고 간간이 비가 내렸다. 바람도 세차게 불었다.

 
나는 우수아이아에 도착하자마자 호텔을 나와 한 곳으로 향했다. 오기 전에 이곳을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한 곳이다. 우수아이아 해상박물관(Museo Maritimo de Ushuaia).

이곳은 도심 외곽에 자리잡고 있는데 1947년까지 교도소였던 곳이다. 우수아이아는 이 교도소의 역사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수아이아는 19세기 후반까지 원주민 외에는 거의 사람이 살지 않은 곳이었다.
 

비글 해협 내에 있는 섬에서 찍은 야생꽃. 언뜻 보아도 이 꽃들은 비글 해협의 세찬 바람을 이기며 자라나는 강인한 생명력의 꽃들이다.

 
이곳이 도시로 발전하고 티에라 델 푸에고 섬의 현도가 된 것은 19세기 말 아르헨티나 정부의 교정정책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아르헨티타 정부는 중범죄인을 수용할 수 있는 교도소를 구상하고 있었는데 영화 빠삐용을 연상하는 그런 장소를 찾고 있었다.

그 때 후보지 중의 하나가 이곳이었다. 이곳은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무려 3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곳이고 당시의 파타고니아 상황(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 곳)으로 보면 탈옥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곳이었다. 세계의 행형정책이 응보주의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할 시절의 구상이었다.

이렇게 해서 교도소가 만들어지고 그 교도소를 위한 도시가 바로 우수아이아였던 것이다. 교도소는 1947년 문을 닫고 해군기지의 일부로 사용되다가 최근에는 우수아이아의 역사와 예술을 볼 수 있는 복합 전시관으로 재탄생했다.

나는 이곳에 들어가 교도소로 사용되던 당시 모습과 우수아이아의 변천사를 눈으로 확인했다.
 

바이하 라파타이아의 해변에서 본 비글 해협
땅끝 우체국
땅끝 우체국에서  이 엽서를 사서 가족에게 보냈다. 거의 한 달이 되었는데 아직도 안 오는 것을 보니 진짜 땅끝마을이 맞는 모양이다.

 

우수아이아 투어는 비교적 가벼운 것이었다. 두 개의 투어에 참여했는데 하나는 비글해협 투어 또 하나는 우수아아이 근처의 국립공원인 티에라 델 푸에고 바이하 라파타이아 트레킹.

이곳이 사람들로부터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다윈이 타고온 비글호(1933)의 탐험 때문이다. 당시 비글호는 마젤란 해협보다 더 아래에 있는 이곳 좁은 수로로 들어와 새로운 뱃길을 연다. 그것이 후일 비글 해협으로 명명되고 우수아이아의 오늘을 만들었다.

따라서 비글 해협은 그 역사성만으로도 한번 쯤 돌아볼 가치가 있다. 여행객을 태운 배는 비글 해협 한 가운데로 나아가 그곳의 작은 섬들을 돌아보고 거기에서 서식하는 조류와 펭귄 그리고 자생하는 식물 등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등대섬을 지날 때는 사람들이 ’세상의 끝 등대‘라고 하면서 환호성을 지른다. 순간이지만 진짜 세상의 끝에 왔다는 느낌이 드는 장소다.

 

이정표를 보니 이곳에서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무려 3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가 여기서 끝나는데 그 길이는 무려 1만 7천 킬로미터가 넘는다.
바이하 라파타이아는 호젓한 공원이다. 만일 직전의 파타고니아를 여행하지 않고 이곳에 갔더라면 절경이라고 탄성을 질렀을지 모른다.

 
바이하 라파타이아 트레킹은 우수아이아 인근의 호젓한 국립공원에서 그곳의 숲과 호수를 보면서 산책을 하는 것이다. 이미 절경은 이곳에 오기 전에 원 없이 보았으니 그런 것을 기대하진 않았다. 그러나 이곳도 파타고니아 이름값을 하는 곳이다. 호숫가에서 세찬 바람을 맞으며 바다를 바라다 보니 이 또한 절경이다.

공원에 나와 피크닉을 하는 가족을 만났다. 잠시 이야기를 하니 이들은 가지고 온 빵과 고기를 내주며 먹어보라고 권한다. 세상 끝이라고 하는 이곳도 역시 사람들의 삶은 우리네와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의 삶에 결코 끝은 없다.
 

우수아이아는 킹크랩 요리로 유명하다. 도착한 날 저녁에 먹은 킹그랩. 거의 내 얼굴만한 크기다.
우수아이아 둘째날 저녁에 먹은 양고기 바비큐. 와인 한 병도 함께 시켜 먹었는데 1인당 5만원을 넘지 않았다.

 
우수아이아에선 조금 쉰다는 생각으로 식도락에 참여했다. 도착하는 날 저녁에 일행 모두가 킹크랩으로 유명하다는 음식점으로 가 즐거운 한 때를 보냈다. 한국에서 보기 힘든 대형 킹크랩을 원 없이 먹었는데도 우리 물가와는 비교할 수 없이 싸다.

다음 날 저녁엔 양고기 음식점을 찾아 와인을 마시며 양고기 바비큐를 배불리 먹었다. 20일 넘게 여행을 하면서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식사를 한 것 같다.

아, 생각해보니 우수아이아 땅끝 우체국에서 부친 가족들에게 보낸 엽서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 곧 한 달이 다되어가는데.... 진짜 땅끝 마을이 맞는 모양이다.

이제 이 여행의 종점(fin del viaje)이 점점 다가온다. 파타고니아여 안녕!  (희망의 땅 안데스에 서다 15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