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여정 123

일요단상-법률가는 조국사태를 어떻게 써야 하는가-

법률가로 훈련된 사람들의 특징은 매사 신중함이다. 그들은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함부로 판단하지 않는다. 객관적 증거에 의해 사실관계를 확정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린다(법률가들에겐 이쪽 저쪽 이야기 다 듣고 판단하는 게 기본 중의 기본!). 만일 급한 상황에서 의견을 말할 때라도, 자신의 판단근거가 틀릴 것을 예상하여, (단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단서나 조건을 붙인다. 요즘 이 공간에서 글을 쓰는 법률가들에게선 이런 특징이 잘 안 보인다. 조국 사태와 관련해 적잖은 법률가들이 매우 공격적으로 글을 쓴다. 보수든 진보든 가릴 것 없이, 밑도 끝도 없는 기사 하나를 근거랍시고, 단정적이고 선동적인 글을 써댄다. 도대체 그렇게 단정할 수 있는 합리적 이유가 무엇인가. 찌라시 같은 언론보도 외에 그런 판단을 할 ..

새벽 고백

새벽 고백 추석 연휴 나흘을 조용히 보냈다. 그저 집에서 영화나 보다가 하루에 한 번 잠간 산책을 했을 뿐이다. 책상 위엔 읽어야 할 책이 쌓여 있지만 어쩐지 이번 연휴엔 손이 가지 않았다. 머릿속엔 안개가 자욱하다. 뭔가 모호하고 정확하지 않다. 강렬한 욕망의 추억을 재현하고 싶지만 이젠 일어날 것 같지 않다. 날씨도 완연 가을 기분이다. 어제 밤엔 선선하다 못해 한기를 느껴 창문을 닫아버렸다. 새벽 3시 경 눈을 떴다. 조금 더 자야 하지만 그냥 일어나고 말았다. 갑자기 한 가지 잊은 게 생각났다. 생각난 김에 하지 않으면 필시 또 잊을 것 같았다. 남성호르몬이 점점 줄고 여성호르몬이 늘어나는 모양이다. 기분은 자주 다운되고 가끔은 울적하기까지 한다. 미래를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자꾸 고개를 돌려 과거..

나의 페북 십계명, 세계 최고 페부커의 비결-조국 사태를 경험하면서-

무한공유로 페북 공간을 바꿉시다!!!!! 저는 대학교수로서 SNS 공간에서 지난 수년 간 활동해 왔습니다. 보람도 있었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닙니다. 특히 지난 한 달간 조국 사태가 벌어지면서, 전쟁터가 된 이 공간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팠습니다. 과연 제가 언제까지 이곳에 들어와야 할지 고민도 했습니다. 자뻑입니다만, ㅎㅎ 저는 대한민국 아니 세계 최고의 페부커라는 긍지를 갖고 삽니다. 제가 관리하는 담벼락을 둘러보십시오. 이 말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금세 아실 겁니다. 이 공간이 전쟁터라도 제 담벼락은 평화를 유지합니다. 제가 민감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제 공간에서만큼은 큰 소란이 없습니다. 제 페친들은 서로 공감하고, 자신들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때론 생각을 달리할 때라도 조용히 한 마디하고 물러..

감사한 일

저에겐 주말에 큰 일이 있었습니다. 큰 딸이 결혼을 했습니다.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작은 결혼식을 치르려 했지만, 결국 그렇게 되진 못했습니다. 작지도 크지도 않은 아담한 결혼식이 되었습니다. 아름아름 아시고 찾아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올해 저에겐 큰 일이 많았습니다. 아버지와 형의 잇따른 애사 그 뒤를 이은 경사... 2019년 잊을 수 없는 해입니다. 저의 가족들이 SNS에 사진 올리는 것을 극력 반대해 ㅎㅎ 결혼식 사진을 올리지 못합니다. 저희 집에선 공인은 오로지 저 하나로 족한 모양입니다. 여기에 사진 한 장을 올리는데, 이 사진은 제가 하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하는 장면입니다. 하객으로 오신 분이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 왔습니다. 자식이 태어나 30년 넘게 함께 살다가 집을 떠다니 마음 ..

상중 독백

저의 형 박형운이 지난 토요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이었습니다. 저는 3일간 빈소를 지키면서 후미진 복도 의자에 앉아 형을 생각하며 독백하듯 글을 써나갔습니다. 제 마음을 추스리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제 장지를 다녀와 지난 3일을 복기하면서 글을 마무리합니다. 이렇게 사적인 글이 세상에 돌아다니는 것이 좋은 일인지 모르지만 이렇게라도 형을 추모하고 싶습니다. 2019년 8월 10일 새벽 4시 조용히 형을 부릅니다. 이젠 의식 없이 삶과 죽음을 넘나드는 형, 불러도 대답 없는 형. 이제 몇 시간이 지나면 형을 영영 볼 수 없습니다. 고통 속에서 지낸 형을 이제 영원히 안식할 곳으로 보내드리려 합니다. 형,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63년 살면서 사람대접 제대로 못 받았지요. 공부하지 못한 죄, 가난..

새벽을 여는 이야기

지금 시간 새벽 4시 한잠 자고 나니 머리가 맑다. 어젠 하루 종일 우울한 기분으로 보냈더니 밤이 되자 머리까지 아팠다. 어제 아무 일이 없었다면 나는 밤비행기를 타고 지금쯤 필리핀 클락 공항에 도착해 제부가 모는 차로 동생 집을 향하고 있을 것이다. 어제 오전 조카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시내 백화점에 나갔다가 가족 단톡방에 문자 하나가 올라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형수가 올린 것이었다. “형이 위독해요.” 형은 이미 작년부터 몇 번 위기를 넘겼다. 지난 5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도 위급한 상황이 왔다. 고비를 넘기기 힘들 것이라 생각해 가족들은 마음 준비를 했었다. 그런데 용케 그 위기를 넘겼고 그 사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5남매 중 누구도 부모보다 먼저 가지 않았으니 최소한의 효도는 한 ..

시란 무엇인가

(페북에서 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을 보자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도 한 때는 시인이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시를 쓰지 않는다. 시는 아무 때나 쓰는 게 아니다. 시는 써야 할 때가 있는 법이다. 하고 싶은 말이 머릿속을 꽉 채워 더 이상 말하지 않으면 죽을 것 같은 심정에서 시는 나온다. 수많은 단어가 머릿속을 뱅뱅 돌지만 결국 선택되는 것은 극소수 그 상황을 묘사하는 단 하나의 단어, 그것을 찾아야 한다. 그것을 순간적으로 찾아내 배열하는 자만이 시인이다. 시는 어떤 장르의 글보다 힘이 있다. 그냥 실없이 내 뱉는 말이 아니다. 그것은 치열한 언어의 경연장에서 살아남은 승리자들이다. 시를 쓰는 날, 나는 무언가에 충만되어 있다, 사랑으로, 정의감으로. 시는 그것을 표현하는 도구, 시인은 그것을..

아버지의 태극기

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면서 아버지의 손때 묻은 태극기를 발견하고 집으로 가지고 왔다. 우리 아버지는 태극기를 끔찍하게 여기셨다. 국경일엔 아침 일찍 태극기 게양하는 것을 반세기 이상 한 번도 빠짐없이 몸소 실천하셨다. 이제부터 우리 집 국경일 태극기 게양은 아버지의 태극기로 교체될 것이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의 유지라고 생각한다. 지금 생각하면 우습지만 나만큼 태극기를 사랑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 십 수년 전 미국유학 시절 우리 집 거실 벽 한가운데엔 태극기가 붙어 있었다. 한국에서 가지고 간 천 태극기를 그렇게 붙여 두고, 매일같이 태극기를 바라보면서, 대한민국을 잊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당시 내 머릿속엔 태극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은 김구 선생과 윤봉길 의사가 있었다. 태극기를 끼고 산다고 해서 애..

뜻깊은 날

오늘은 스승의 날입니다. 그리고 오늘은 저희 학교(한양대) 개교 80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아침에 나오면서 마음이 조금 무거웠습니다. 학생들이 저를 만나면 부담이 될 텐데... 요즘 김영란법이다 뭐다 해서 학생들은 꽃 한 다발도 선생에게 주지 못합니다. 그러니 이런 날은 서로 보지 않는 게 상책이지요. 연구실에 앉아 있으니 멘티들과 함께 하는 단톡방을 통해 연락이 왔습니다. 멘티들이 찾아오겠다는 겁니다. 저는 이렇게 답변했지요. “오늘은 오지 말고 다른 날 오지 ㅎㅎ” 아 그런데 이 친구들이 부득불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고 하네요. 할 수 없이 점심 먹고 오라고 했습니다. 잠시 전 멘티 몇 명이 제 방을 다녀갔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가지고 왔는지 아십니까? 저는 그것을 보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

묘한 시기, 나는 잘 관리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묘한 시기인 것 같다. ‘묘하다’는 표현이 다소 우습지만 더 이상 그럴듯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위기인 것도 같고, 난관에 봉착한 것도 같고, 두렵지만 담담하기도 하고... 그런 중에도 뭔가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고,.. 하나로 표현하기가 어려워 묘하다고 한 것이다. 페북에서 이런 말을 쓰려니 주저하는 바가 많다.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를 1만 명 이상의 페친앞에서 까발리는 것이 과연 적절한 일인가.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쓴다. 이 글쓰기마저 없다면 내가 나를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이해할지 모르지만 내게 있어 글쓰기는 공기요 물이며 한 가닥 지푸라기다. 누구한테 하소연하기 위함이 아니다. 그저 글을 씀으로써 마음을 정화하고 안정시키는 것이다. 혼..